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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업계 수장에게 듣는다] 김인호 호상사 사장

김영인 2010. 4. 29. 09:44

 

“캠핑장비 시장은 미래 등산업계의 블루오션”

“까다로운 용품에 주력하다 보니 미처 마땅한 브랜드를 못 찾은 거죠.
하지만 언젠가는 할 겁니다. 수입해서 라이센스 생산을 하더라도 기존시장 패턴과는 좀 다르게, 용품을 했듯 철저한 소비자 기호나 기능 위주로 할 겁니다.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스스로 찾을 만큼 뛰어난 기능을 갖춘 그런 의류를 만들어 보는 것, 그게 장차의 꿈입니다. ”

등산의류 이외의 등산장비들을 등산용품이라고 정의한다면, 호상사(대표 김인호ㆍ56)는 현존하는 등산용품 수입업체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됐다. 78년 창업했으니 올해로 만 30년이다. 그간 호상사가 수입 소개한 브랜드는 약 40여 가지, 물건 종류로 따지면 약 3,000종이 넘는다. 현재 다루고 있는 브랜드만 20가지에 물품 종류는 2,000종에 달한다.


내로라하는 경력의 전문등산꾼 치고 호상사가 수입한 물건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호상사가 수입한 등산용품 종류가 그렇듯 많다는 뜻이자 호상사가 수입한 용품은 그만큼 등산ㆍ등반에 요긴한 것들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콜맨 피크원 버너, MSR 버너, 날진 용기, 빅토리녹스 칼, 에델바이스 자일, 잼벌란 등산화, 캠프 프렌드, 버나드 술병 등 호상사의 수입물품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요긴하여 등산꾼이면 누구든 탐을 낼 야무진 것들이다. 이러한 물품을 전문으로 수입하며 이제 호상사는 업체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화되었다. ‘호상사가 수입하는 물건이면 뭔가 쓸만할 것’이란 인식까지도 등산꾼들이 갖게 됐다는 말이다.



30여 년간 40여 브랜드 3,000여 종 수입


▲ 용산 호상사 본사에서 스노피크 캠핑용품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는 호상사 김인호 사장(오른쪽 끝)과 직원들.

호상사를 창업하고 이제껏 키워온 김인호(金仁浩) 사장은 자신을 “요모조모 신기한 기능과 모양을 가진 물품에 대한 호기심이 유난히 강하고 그런 데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고교시절부터 암벽등반을 했던 꾼 출신이다. 이러한 천성적 호기심과 오랜 암벽꾼의 노하우로 그는 수입 물품을 골랐고, 때문에 호상사가 수입하는 물건은 사두면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일 장비라는 인식까지 퍼지게 된 것이다.


김인호 사장은 현 서울산업대의 전신으로 5년제 전문학교였던 경기공전 산악부에 가입하며 암벽과 산을 익혔다. 군용 자일에 워커 군화 차림으로 인수봉과 선인봉을 올랐다. 제대 후 그는 거의 모든 바위꾼들이 꿈꾸던 생활-등산장비업을 하면서 산도 가는 삶을 살고자 장비수입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창업 후 10년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며 김 사장은 이렇게 돌이킨다.


“창업이라니, 쑥스럽네요. 제 이름 끝 자를 따서 호상사라 하고, 그저 조그만 구멍가게 수준으로 시작한 게 78년이 맞긴 맞지요. 하여튼 한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70년대 말 전화회선이 부족했던 그 때, 사용권한을 남에게 넘길 수 있는 백색전화라는 게 있었어요. 자금이 아쉬워서 그걸 팔아서 충당하기도 했고-.”


70년대 말은 플라스틱 제품 등 일부 품목에 한해서나마 수입자유화가 시작됐던 시기다. 때문에 당시 양우상사, 대인상사, 삼보상사 등 등산장비 수입업체가 여럿 생겨났다. 그들에 비해 자본 규모도 보잘 것 없던 김 사장은 스위스의 스키부츠 라이클을 우선 수입해 팔았다. 당시 스키장이라곤 용평스키장 하나뿐이었지만 그런대로 재미를 본 그는 독일제 MSR 버너를 500대 수입했으나 뜻밖에 인기가 없어 3년간에 걸쳐 겨우 처분했다.


“그외에 품목마다 희비가 갈렸죠. 어떤 건 괜찮았고, 어떤 것은 쳐다보지도 않아 쩔쩔매고-. 하여간 그때는 들여올 수 있는 품목도 한정됐고 관세도 무려 60%나 됐어요. 같은 품목도 어떤 해는 수입이 풀렸다가 이듬해엔 다시 묶이기도 했다가 했고요. 그러니 뭐, 장사하기가 아주 어려웠죠.”


이제 노년층에 접어든 산악인 중에는 일제 타니 아이젠을 옛 추억을 되살리는 장비로 소중히 간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타니 아이젠을 본격 수입했던 업체가 호상사다. 박영배씨가 토왕폭 초등반 때 썼던 아이젠이 바로 타니 아이젠이다. 호상사가 산악인들과 밀접하게 호흡을 같이하며 성장해온 용품 수입업체라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김 사장은 타니 아이젠을 수입은 했으되 자신이 직접 팔지는 못했다. 당시 세관에서 수입 금지된 등산장비 품목이라면서 통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 뒤 공매에 들어갔지만 그는 공매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결국 다른 업자에게 넘어가고 말았다고 한다. 캐나다 아레나 수영모자를 수입할 때는 엉뚱하게도 태극기가 아닌 인공기가 인쇄돼 들어오는 바람에 수사기관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콜맨 피크원으로 일어서다


▲ 전국오토캠핑대회에서 인삿말을 하고 있는 김인호 사장. 김인호 사장 자신이 오토캠핑 마니아다.

김 사장은 87년 비로소 우뚝 일어섰다. 효자 상품은 미제 콜맨 버너 5종, 그 중에도 피크원이다.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그는 돌이킨다. 많을 때는 연간 15,000여 대도 팔렸다. 그러면서 그는 비로소 제법 큰 규모의 사업자금을 만들 수 있었다.


피크원 버너는 꾼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인기 최고다. 93년 국립공원 내 취사ㆍ야영이 전면 금지된 이후 매출이 급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 해 3,000대 정도로 꾸준히 팔리고 있다고 한다. 피크원의 인기 비결을 김 사장은 이렇게 밝힌다.


“일단은 화력이죠. 가스나 석유버너로는 겨우 물이 막 끓으려 할 시점이면 콜맨은 벌써 라면이 다 익어서 먹어도 될 정도로 막강하죠. 추운 겨울엔 특히 돋보입니다. 그런 콜맨 버너 중에도 왜 피크원이 인기냐 하면 우선 연료통 크기가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 밥까지 하기에 딱 알맞은 정돕니다. 연소부와 연료통의 지름이 거의 같아서 휴대도 편하고, 불꽃까지의 높이도 들여다보며 조절하기에 괜찮은 정도이고, 뭐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우리나라 꾼들 기호에 딱 알맞았던가 봐요.”


▲ 용산 호상사 본사 1층의 호상사 전문매장인 ‘시에라’ 앞에 선 김인호 사장.

그때까지 한창 인기였던 석유버너는 연소 때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 독한 연기가 나는 알콜로 예열해야 하고, 분해했다가 쓸 때 조립해야 하며, 노즐이 툭하면 막혀 버너핀으로 구멍을 뚫어주곤 해야 했다. 그러나 피크원은 예열도, 버너핀도 필요 없는 구조이며, 석유버너에 비해 한결 가볍다. 연소부에 부착한 십자형 간이바람막이 덕분에 거추장스런 접이식 바람막이도 필요 없으며, 소음도 거의 없다. 미세 불꽃 조절이 가능해 밥 뜸들이기에도 좋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피크원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해외 고산에서도 피크원은 위력을 발휘, 여전히 인기 최고의 버너다.


그는 실은 80년에도 콜맨 버너를 100여 대 들여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전혀 팔리지 않았다. 휘발유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콜맨 피크원을 팔면서 김 사장은 장비 장사도 때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피크원은 총 20만 대 정도 팔렸을 것이라고 김 사장은 말한다.


80년대 중반 시작된 수입자유화가 또한 호상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돼 주었다. 가죽화 수입이 가능해지자 그는 이탈리아의 정통 등산화 잠발란을 들여왔고, 또한 히트를 쳤다. “품질이 고급스럽고 한국인 족형에 잘 맞는다는 점이 어필한 것 같다”고 김 사장은 말한다. 고가품이라 많이는 나가지 않지만, 1년에 1만여 족은 팔리고 있다고 한다.
잠발란은 한국에 최초로 소개된 외국 등산화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외 그가 최초로 소개한 품목은 많다. 여전히 그는 국내 소비자들이 반할 만한 제품들을 찾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장비전을 빠짐없이 참관하고 있다.

 

“꾼들 목말라하는 고기능 제품 골라내는 안목 중요”

▲ 호상사 부설 서울등산학교 리지교실에서 사용한 에델바이스 자일을 손보고 있는 김인호 사장. “에델바이스 로프는 호상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제품”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 사장이 80년대 초부터 수입 판매를 시작한 프랑스의 에델바이스 로프는 그 후 한국 산악사와 역사를 같이 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클라이머들에겐 친밀하다. 김 사장은 “매출은 미미하고, 간혹 절단사고 등으로 골머리를 앓지만, 우리 호상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제품”이라고 에델바이스 자일을 말한다.


콜맨 버너나 잠발란 등산화는 수입 후 광고하기도 전에 크게 붐을 탔다. 이 점에서 김 사장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떳떳하다고 말한다.


“산에 다니는 분들이 목말라 하던 기능의 제품들을 저희가 골라서 소개했다는 것은 일종의 서비스를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물량 광고 공세로 브랜드를 세뇌시킨 뒤 브랜드 위주로 판 것이 아니라 기능으로 팔았습니다. 등반이나 야외생활에서 꼭 필요하겠다 싶은 것들을 세계 각지의 장비시장을 살펴 찾아내서 소비자들께 제공하는 일은 재미와 보람도 있답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암빙벽 전문장비들은 국산은 거의가 없어지고 외국 유명 제품들만 유통될 것으로 본다. 일본이 그렇다. 과거 일본에는 헬밋, 카라비너, 로프 등을 만드는 업체들이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없어졌다. 일본처럼 우리 국내 시장규모가 국내 브랜드가 장기 존속할 수 있을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품 업그레이드 속도에서 외국의 유명기업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 그가 그렇게 진단하는 주된 이유다.


요즈음 들어 그가 주력하고 있는 제품군은 오토캠핑 장비다. 콜맨과 스노피크 브랜드 제품을 그는 다량 수입하고 있다. 이 오토캠핑에 대해서 그는 열정에 가까운 확신에 차 있다.



“오토캠핑 대회는 소비자 서비스이자 시장확대 수단”


▲ 서울등산학교 암벽반 참관 후 하강하고 있는 김인호 사장. 젊어 한 때 김 사장은 인수봉과 선인봉에 푹 빠져 지내던 암벽꾼이었다.

“경제적, 교육적 측면 모두에서 너무도 건전하고 좋은 야외생활 패턴이 바로 오토캠핑이에요. 고개를 맞대고 불 피우고 음식 마련하고, 텐트 안에서 꼭 붙어 자는 캠핑은 가족간에 전에 없던 유대감을 형성시켜 줍니다. 마침 주 5일제가 되면서 일주일에 이틀은 여유가 생겼잖습니까. 어디로든 가기는 가야 할 텐데, 펜션이나 콘도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아파트 생활을 고스란히 옮겨간 것 같은 콘도는 금방 지루해집니다. 오토캠핑이 답이죠. 전국 각지에 캠핑이 가능한 자연휴양림들도 많습니다. 대한민국 가장들 모두에게 오토캠핑을 가자고 권합니다.”


등산에서 야영은 산행 도중의 한 과정이지만, 오토캠핑은 캠핑 그 자체가 목적인 야외생활이다. 김 사장 자신이 이 오토캠핑의 재미에 푹 빠진 마니아로서, 그는 “숲내를 품은 바람과 햇볕을, 장대 같은 빗줄기를 바로 앞에서 대하며 지내게 되는 캠핑은 두터운 콘크리트로 막힌 틀 내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신선한 멋이 있다”고 오토캠핑의 매력을 말한다.


그가 매년 봄가을로 오토캠핑대회를 여는 것은 마니아로서 여러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욕망과 더불어 사업적으로도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호상사의 연간 매출 200억 원에서 캠핑장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매년 급신장하고 있기도 하다. “캠핑장비는 등산장비업계의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김 사장은 말한다.


김 사장은 작년 9월부터 호상사 부설 서울등산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첫째는 산꾼 본능으로, 둘째는 등산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나중에 대개 충실한 고객이 되어줄 확률이 높다는 사실 때문에 이 학교를 시작했다”고 김 사장은 밝힌다. 1년여 전부터는 그간 고기능 암벽화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파이브텐 등산화도 호상사가 수입 판매하고 있는데, 김 사장은 등산학교 운영이 활성화될 경우 콜맨, 잠발란, 스노피크에 이은 제4의 효자 브랜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 사장은 그간 의류는 특수 내의종류만 몇 가지 수입해왔을 뿐, 종합 브랜드엔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안 했다기 보다 못했을 뿐”이라며 김 사장은 이렇게 밝힌다.


“까다로운 용품에 주력하다 보니 미처 마땅한 브랜드를 못 찾은 거죠. 하지만 언젠가는 할 겁니다. 수입해서 라이센스 생산을 하더라도 기존시장 패턴과는 좀 다르게, 용품을 했듯 철저한 소비자 기호나 기능 위주로 할 겁니다.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스스로 찾을 만큼 뛰어난 기능을 갖춘 그런 의류를 만들어 보는 것, 그게 장차의 꿈입니다.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하는 안목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므로, 앞으로 거기에 부응 못하는 브랜드는 사멸할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