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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업계 首將에게 듣는다] 김철주 골드윈코리아 전무

김영인 2010. 4. 29. 09:46

 

노스페이스 런칭 10년만에 업계 1위의 3,000억 신화 창조

한국 시장에서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브랜드의 성장 역사는 경이적이라 할 만하다. (주)골드윈코리아(회장 성기학)가 97년 수입 판매를 시작한 이래 10년 뒤인 올해의 노스페이스 매출은 소비자가 기준으로 3,00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단연 업계 1위이며, 2위인 모 브랜드의 예상 매출액을 1,000억 원 이상 상회한다는 점에서 또한 놀랍다. 때문에 업계에선 당분간 1, 2위간의 반전은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97년 당시 한국의 아웃도어의류 브랜드는 이미 수십 가지를 헤아렸고, 그 뒤로도 여러 유명 브랜드가 더 수입됐다. 그 많은 경쟁 브랜드를 모두 제치고 노스페이스는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당분간 추월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단독 선두로 나선 것이다.


노스페이스가 등산의류 시장을 휩쓸고 있다는 사실은 명산 등산로 입구에 가보면 피부로 느껴진다. 등산객의 절반 이상이 노스페이스 의류를 한 가지씩은 입고 있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노스페이스 브랜드인 사람도 드물지 않다.


한국에서의 노스페이스 매출액은 세계 시장 전체를 두고 보아도 대단해 1조 원인 미국 다음으로 2위다. 단일 브랜드가 3,000억 원 매출을 기록한 사례는 한국에선 아마도 노스페이스가 최초일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테크니컬 웨어’ 개념 강조로 대성공


골드윈코리아는 영원무역(회장 성기학)이 노스페이스 브랜드의 아시아지역 총판권 소유업체인 일본의 골드윈과 합작해 92년 설립한 회사다. 이 회사 설립 당시부터 관여해왔으며, 성기학 회장을 필두로 정상욱 상무와 더불어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지금처럼 키워낸 핵심 인물인 김철주(52) 골드윈코리아 전무는 런칭 첫해인 97년 당시 상황을 이렇게 밝힌다.


▲ 성북구 하월곡동 골드윈코리아 빌딩 내 노스페이스 매장에서 영업팀 직원들과 상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김철주 전무(오른쪽에서 세번째).

“그때는 시장 자체가 작았습니다. 당시 최대 매출업체인 K사의 연간 매출이 200억 원이 채 안 됐으니까요. 등산 브랜드로만 이미지를 한정시키면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정도를 넘어서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키워보자고 했지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지를 캐주얼화하자, 그렇게 결정했지만 ‘어떻게’가 또한 문제였지요.”


그 방편으로 선택한 것이 ‘테크니컬 웨어의 개념’이라고 김 전무는 말한다. ‘노스페이스 의류가 가진 기능을 강조, 이 옷은 일상생활도 한결 편리하게 해주는 옷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자’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노스페이스는 68년 탄생한 등반전문 의류죠. 의류 자체가 이미 기능성을 갖출만큼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제품의 소재부터 디자인까지 산에서의 악조건을 가상하여 기능을 부여한 제품인만큼 일상생활도 그만큼 편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로 한 겁니다.”


김 전무는 차분한 선비 타입의 외모와는 달리 적극적이었다. 광고팀 직원에게 대표적 의류 몇 가지를 가져오게 한 뒤 김 전무는 우선 재킷을 직접 입고 팔을 들어올리거나 고개를 돌리며 어떠한 기능을 가졌는지를 열심히 설명한다.


“이렇게 손목 벨크로 테이프를 채우고 팔을 위로 들어올려도 재킷 옆부분이 딸려 올라가지 않습니다. 등을 이렇게 한껏 굽혀도 등부위가 위로 당겨지지도 않지요. 그리고 후드, 이걸 머리에 쓰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 같이 딸려 돌아가므로 눈앞이 가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겉에서 뵈지는 않지만, 배낭이 닿는 어깨 부분에는 좀더 질긴 고어텍스 원단을 사용했고, 안감은 피부의 습기를 빨아들여서 쾌적한 상태로 유지해주는 흡습기능을 가진 액티브 센서라는 원단을 썼습니다. 이런 기능과 소재가 꼭 산에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도 매우 편하게 해준다는 점을 특히 일선 매장의 점주들이 적극 홍보하게 했죠. 일단 입혀 봐라, 그럼 고객들이 스스로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노스페이스 제품 중 등반전문가와 일반 등산객을 통틀어 단연 최고의 인기를 끌어온 스테디 셀러라면 눕시 다운재킷이다. 필파워, 즉 복원력이 700으로 매우 뛰어난 우모를 쓴 이 눕시 재킷은 지난 10년 간 디자인이나 기능이 거의 그대로임에도 여전히 인기가 좋다.


“그것은 더 이상 손댈 데가 없다고 고객들이 평가를 내렸다는 뜻이죠. 눕시 재킷은 그간 10만 벌 정도 팔렸는데, 가격은 97년 22만 원이었고, 지금도 겨우 2만 원 올린 24만 원입니다. 고품질의 대량생산에 성공해서 단가를 낮출 수 있었던 덕분이죠. 미국에서 사도 그 정도 가격이랍니다. 가격과 품질에서 경쟁 상대가 없는 우모 재킷이라고 자신합니다.”


박영석 등 산악인 모델로 첨단기능 이미지 강화


노스페이스 상표는 70~80년대 한국 산악인들 간에는 일종의 등반전문가 표지(標識)로 기능했다. 산중에서는 물론 시중에서도 노스페이스 파커나 재킷을 입은 이는 일단 전문꾼으로 보아 틀림없었다. 이는 전문꾼들 세계에서 노스페이스가 이미 기능성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김 전무는 이들 등반전문가 그룹을 통해 노스페이스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 노스페이스 고어텍스 재킷을 입고 각 부분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는 김철주 전무. “노스페이스 의류가 고기능성 의류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그는 말한다.

“박영석 대장 원정 때 별도로 등반용으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시중에 판매되는 의류를 그냥 주었는데도 ‘좋다’고 하더군요. 고산등반은 50~60일 악조건에서 견디어야 하는 일인데, 이런 악조건에서도 괜찮은 옷이라면 평상시에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죠.”


김 전무는 고기능성 의류라는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연예인 모델은 극구 배제했다. 노스페이스가 상승세를 타며 광고 모델을 자청한 유명 연예인도 있었지만, 오로지 산악인들만 모델로 채택하는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일반인으로 고객층을 확대하기로 했을망정 테크니컬 웨어라는 이미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마침 2000년대 들어 박영석, 엄홍길 두 사람이 8,000m급 14거봉 완등 레이스를 벌였잖습니까. 두 사람 등반 모습이 수시로 방영되면서 ‘저런 악천후 속에서도 견디어내는 고기능 의류라면 가벼운 야외활동이나 일상생활 중에도 좋을 것’이라는 홍보 효과는 그간 테크니컬 웨어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저희 노스페이스가 주로 본 겁니다. 매출이 그야말로 급상승했죠.”


▲ 노스페이스 의류의 상징적 모델인 눕시 다운재킷을 광고팀 황우순씨가 입어보이고 있다. 10년째 인기가 시들지 않는 모델이라고 한다.

애초엔 미국 노스페이스 본사가 기획하고 제조한 제품을 직수입해서 주로 팔다가 곧 한국인 체형에 맞추어 소매 길이, 어깨 넓이 등을 조절한 제품으로 모두 바꾸었다. 또한 용도별로 디자인을 세분화했다. 고산등반용은 서미트 시리즈, 당일 국내 산행용으로는 가볍고 절제된 기능을 강조한 플라이트(flight·fast+light) 시리즈, 그리고 다운타운용 웨더시스템으로 구분해 제조, 소비자들에게 용도에 따라 입도록 권유했다. 한국 노스페이스의 이러한 제품 개발 노하우는 이제 미국 본사에서도 높이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학생층에 노스페이스 배낭과 티셔츠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면서 김 전무는 이렇게 말한다.


“2002년 들어서부터 갑자기 학생들이 배낭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산 것이 대학 가서도 말짱하고, 여전히 편하더라는 소문이 나면서부터죠. 두터운 원서를 많이 봐야 하는 공대생들 사이에서 우선 유행하기 시작했답니다.”


르콘 타입의 30리터들이 노스페이스 배낭은 바닥을 뒤로 경사지게 만들어서 책을 넣으면 등쪽으로 붙으며, 크고 작은 주머니가 여러 개인 한편 펜과 메모장 등을 보관하는 작은 주머니도 다양하게 내장돼 있다. 등판 가운데 위쪽엔 MP3 이어폰 선을 빼낼 수 있는 작은 구멍도 냈으며, 멜빵엔 핸드폰 보관주머니도 달았다. 또한 멜빵 장식 중 하나는 비상시 사용할 수 있게 호각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구석구석 신경을 써서 만든 배낭임을 학생층에서 먼저 알아준 것이다.


외국 브랜드는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일정액씩 본사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부분을 단순히 배 아파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김 전무는 이렇게 말한다.


“스위스 쉘러 원단은 신축성이나 원단복원력이 좋아서 오래 입어도 무릎이 튀어나오지 않고, 엔간한 빗방울은 그냥 굴러 떨어지게 하는 발수기능도 좋습니다. 저희가 국내 최초로 이 원단 의류를 도입한 이후 대유행을 하니까 국내 원단사들이 기술 개발을 시작하더니 이제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추게 됐습니다. 쿨맥스도 그랬죠.”

 

매년 지리산 종주해야 직성 풀리는 등산꾼


늘 가볍게 이를 드러내는 미소로 직원들을 대하는 김철주 전무는 부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86년 영원무역에 입사했다. 장충동 동국대학교 바로 건너편에 사옥이 있었는데, 학생들 데모로 연일 최루가스를 마시게 되며 걸린 비염이 사내 등산동호회를 따라 매주 등산을 몇 주 반복하는 사이 깨끗이 나아버렸다. 그때부터 업무와 관계없이 등산에 취미를 들였다.


▲ 노스페이스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장에서의 김철주 전무.

아무리 업무가 바빠도 지리산 종주 또한 거르지 않는 연례 등반이다. 성삼재에서 출발해 벽소령과 장터목에서 각각 1박 하는 2박3일 여름 종주를 즐겨왔고, 올해도 8월 말 백화점 직원들과 더불어 성하의 지리 능선을 걸을 계획이다. 작년 겨울엔 덕유산 설릉 종주를 하며 설산에도 재미를 붙였고, 스포츠클라이밍도 시작했다.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소속의 유명 산악인인 정승권씨에게서 배웠는데, 뜻밖에도 “5.11급은 역시 어렵더라”는 말이 나온다. 고난도인 5.11급 루트를 시도해볼 정도이면 50대이자 쉴틈없이 바쁜 김 전무의 일상을 감안할 때 놀라운 실력이다.


“등산의 맛을 알게 되면서 점주들에게도 강조했죠. 옷만 팔아서는 안 되고 산행의 즐거움도 함께 팔아야 한다고 말이죠. 그러자면 점주들도 산행의 재미를 잘 알아야겠죠. 그래서 4년 전부터는 점주들을 회사에서 비용을 대서 매년 10~12명씩 네팔로 7~8일간 트레킹을 보낸답니다. 장사가 잘 안 되면 일주일에 세 번, 네 번 산에 가라고 했지요.”


노스페이스 매장은 백화점 49개, 로드샵이 90개, 영원플라자 16개, 그리고 면세점 4개 등 총 159개다. 로드샵은 소도시의 경우 한 군데만 매장을 내주는 등 매장별로 일정 권역을 지켜주어 매장 간 경쟁이 붙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덕에 매장들 수익은 다른 어느 브랜드보다 높은 편이며, 때문에 점주들의 본사에 대한 충성도도 매우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무는 근래 들어 ‘엑스라지(X-large) 스토어’라는 330㎡(100여 평) 규모의 대형 매장으로 속속 탈바꿈시키고 있는데, 덕분에 매출이 또한 크게 늘어나는 등 성공적이라고 한다.



고 오희준ㆍ이현조 부모에 매달 100만 원 보조


골드윈코리아는 현재 직원 수 180명으로서, 노스페이스 외에 골드윈과 에이글 두 가지 브랜드를 더 다루고 있다. 골드윈은 일본에서 92년부터 시작한 스키복 브랜드이며, 에이글은 유럽에선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다. 그러나 노스페이스에 비하면 한국내 매출은 미미한 정도다.


노스페이스의 성장은 이제 정점에 다다른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에 김 전무는 “기슭까지의 트레킹이 끝나고 이제 만년설 지대의 입구에 들어선 것일뿐이라 생각한다”며 한결 더 가파른 성장세를 자신한다. 그렇게 자신하는 배경을 김 전무는 이렇게 밝힌다.


“소재나 기능이 단순한 기존 의류에서 기능성 의류로 소비자들이 관심이 돌아가고 있어요. 거대한 캐주얼 의류 소비시장의 문이 우리 등산의류업체쪽으로 열린 겁니다. 그래서 우리 노스페이스도, 다른 브랜드들도 당분간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골드윈코리아는 그간 박영석을 비롯해 정승권, 박정헌, 오희준, 이현조 등 여러 동량급 산악인들에게 매년 후원금을 지급하는 한편 원정시엔 각종 지원을 해왔다. 이들 산악인은 생계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마음껏 고산을 오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노스페이스는 그들이 고봉을 오르며 사회적 관심을 끌 때마다 의도적 광고는 비교도 되지 않은 고효율의 홍보 효과를 보았다는 점에서 산악계와 업체가 함께 득을 보는 뛰어난 선택이었다고 할 것이다.


두 달 전 박영석팀의 오희준, 이현조 두 산악인이 불운을 당하자 노스페이스는 두 산악인의 부모들이 사망시까지 매달 100만 원씩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김 전무는 이런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노스페이스가 산악인들과 더불어 가야 한다는 것은 브랜드 성격으로 보나 그간 맺어온 관계로 보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