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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업계 수장에게 듣는다] 한국팬트랜드 신동배 대표

김영인 2010. 4. 29. 09:42

 

“늦게 시작했지만 정말 산이 좋아졌습니다”
      버그하우스, 산악인과 친근한 브랜드로 만들겠다
“섬유분야도 첨단화 고급화만이 생존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부터 국제적으로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의 위치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섬유분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문제가 현실화됐습니다. 저가시장은 이미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빼앗겼고, 고가는 이탈리아 등 선진국에 밀려 힘을 못 쓰지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퀄리티를 높인 명품 수준의 제품을 내놓아야 합니다.”

서울시산악연맹이 주최하는 설제가 지난 2월 말 파주 감악산에서 열렸다. 이 날 행사의 공식 후원사인 한국팬트랜드 신동배(申東培·49)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산행에 참가했다. 많은 등산객에 섞여 산을 오르는 그는 일반 등산 동호인과 구별되지 않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는 산행 후에 열린 설제에도 참석해 산악인들의 무사산행을 기원했다.

신 대표가 등산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영국의 아웃도어브랜드 버그하우스(Berghaus)를 국내에 도입하면서부터다. 사실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만해도 산을 오르는 일은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등산과 밀접한 비즈니스를 진행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등산 경력으로 치면 2년 반을 조금 넘을까요. 아직은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매주 서울 근교 산들 위주로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산에 대한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곧 중국 황산도 가고요. 히말라야에 욕심을 내볼까 고민하는 단계입니다.”

등산을 시작하는 계기는 각양각색이지만 산행에 입문하는 코스는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 가까운 산을 오르는 것으로 등산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산행에 익숙해지면 차츰 멀고 어려운 산을 찾는 것이 수순이다. 신 대표도 이제 먼 산과
높은 산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비즈니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에 가야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인들과 함께하는 산행이 더 좋습니다. 특히 초등학교나 고교 동문들과 같이 등산할 때가 가장 즐겁고 편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산이 좋다고 해도 일로 하는 등산은 확실히 스트레스더군요.”

그는 버그하우스를 통해 등산이라는 좋은 취미를 가지게 된 것만 해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동안 산에 대한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도대체 저 미친 짓을 왜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산악인들의 그런 순수한 도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기회가 된다면 직접 바위타기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단다.

“버그하우스를 시작한 뒤로 등산 예찬론자가 됐습니다. 우선 충분한 운동량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등산의 강점입니다. 그리고 골프와 비교하자면, 경제적으로 큰 부담도 없고, 계절이나 인원의 제한도 받지 않습니다. 또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훨씬 쉽게 친해집니다. 등산을 통해 만난 친구들이 오히려 예전에 알던 이들보다 더 친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다양한 레저 즐기는 정통 섬유인


▲ 청계산을 오르다 나무에 기대 잠시 쉬고 있는 신동배 대표.

등산 분야는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테니스와 스키를 즐기고 있는 스포츠 애호가다. 이 역시 이탈리아의 엘레쎄(Ellesse) 브랜드를 진행하며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자신이 취급하는 브랜드의 주력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렇듯 그가 스포츠와 접하는 경로는 일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스포츠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는 사회에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지금껏 철저히 섬유인의 삶을 살아왔다. 대학 졸업 후 당시 굴지의 기업으로 평가받던 국제상사에 입사해 섬유분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직장생활 초기, 그는 직장 상사들에게 충격적인 소리를 듣게 된다. ‘이제 섬유는 한 5년이면 끝나고 전기 전자 조선 등이 주류가 된다’는 말이었다. 이제 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신입사원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말은 일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첨단 기술의 발전과 IT산업의 활황이 섬유산업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섬유산업은 높은 임금과 외환위기 사태를 거치며 많은 부침과 변화를 겪어왔다. 하지만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는 결코 도태되지 않았다.

신 대표는 이러한 일련의 산업 변화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며 지금껏 섬유 산업에 몸담고 있다. 그는 국제상사와 한주통상을 거치며 주로 수출 업무를 맡아 현장에서 뛰었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IMF 당시 회사 부도위기를 수출을 통해 극복하기도 했다.


▲ 디자인실 직원들과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섬유분야도 첨단화 고급화만이 생존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부터 국제적으로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의 위치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섬유분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문제가 현실화됐습니다. 저가시장은 이미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빼앗겼고, 고가는 이탈리아 등 선진국에 밀려 힘을 못 쓰지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퀄리티를 높인 명품 수준의 제품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가 CEO로 일하고 있는 한국팬트랜드는 영국의 패션 대기업인 팬트랜드그룹이 97년 한국에 세운 합작회사다. 영국 본사는 현재 국내에서 전개 중인 엘레쎄와 버그하우스 브랜드 외에도 라피도, 라코스테, 키커스 등의 다국적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버그하우스, 한국 통해 아시아 시장 진출

버그하우스는 영국 북동부 출신의 산악인 피터 로키(Peter Lockey)와 고든 데이빗슨(Gordon Davidson)이 만든 브랜드로 1966년 뉴캐슬 지방에서 처음 시작됐다. 초창기에는 주로 배낭 생산에 주력했는데, 최초로 내부 프레임을 넣은 배낭을 만들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버그하우스는 고어텍스 원단을 등산의류에 처음으로 채택한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또한 세계 최초로 여성 전용 제품을 개발하는 등 오랫동안 아웃도어 업계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버그하우스는 유럽에서 아웃도어 분야의 버버리로 불릴 정도로 인지도 높은 명품 브랜드다. 정통 산악인이라면 버그하우스를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대중적 인지도는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2004년도에 신 사장은 한국팬트랜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만한 브랜드를 고르며 버그하우스를 알게 된다. 그런데 이 브랜드가 팬트랜드 본사가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며 국내 런칭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한국을 선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영국 특유의 강한 자존심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버그하우스는 상당히 보수적인 기업입니다. 지금껏 영국과 유럽 시장 외에는 크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버그하우스가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2004년 당시 버그하우스 사장이던 토니 우드씨가 방한한 뒤 전격적으로 한국 진출이 결정됐다. 그 후 조심스레 아시아 시장의 가능성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고, 올해 일본지사 설립이 결정됐다. 또한 거대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에 대한 접근도 곧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버그하우스의 해외시장 진출에 한국팬트랜드가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 2월 말 감악산 산행 후 한데 모인 한국팬트랜드 직원들
“의미 있는 해외원정 후원 계속할 터”

“올 연말이면 버그하우스가 국내에 진출한 지 만 3년이 됩니다. 하지만 크게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갈 작정입니다. 아웃도어 분야는 일반적인 스포츠의류 시장과 달리 브랜드 충성도가 높습니다. 소비자가 한 번 선택한 브랜드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브랜드가 자리 잡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올 매출은 200억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신 사장은 당분간 버그하우스 본연의 정체성을 국내에 전파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애초에 전문등반을 위해 태어난 브랜드로 스페셜리스트를 위한 라인이 최대 강점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컨셉을 유지하면서 추후에 대중적인 분야로 확대하는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각오다.
“전문 산악인들은 예전부터 버그하우스 인지도가 상당히 높더군요. ‘베르그하우스’라고 불리던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영국 본사에 ‘베르그하우스’를 쓰겠다고 주장했는데 절대로 안 된다고 하더군요. 비록 산장을 뜻하는 독일어지만, 영국 브랜드니 영국식 발음을 써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립니다.”

신 사장이 버그하우스를 알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산악인과 친근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2005년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양정고교 100주년 기념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지원한 것을 비롯해 올해 한국산악회와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 실버원정대의 공식 후원사로도 참가했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원정에는 가능한 많이 후원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산악연맹 설제 등 각종 산악행사 후원에도 앞장서고 있다.

▲ (좌) 신동배 대표가 매장에서 버그하우스 제품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우) 영국 산악계의 대표적인 인물 크리스 보닝턴과 함께 신 대표.
현재 버그하우스의 명예회장은 대표적인 리더형 등반가 크리스 보닝턴(73)이다. 그는 영국인 최초로 드류 남서필라를 등정(1957)했고, 아이거 북벽(1966)도 오른 영국 산악계의 자존심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975년에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 대장으로 팀을 이끌고 루트초등에 성공하기도 했다.

버그하우스와 보닝턴은 1980년대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신 사장은 기회가 된다면 가능한 빠른 시기에 보닝턴을 국내에 초청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워낙 일정이 빡빡한 인물이라 정확한 날짜는 잡지 못하고 있다고. 신 사장은 그의 방한이 한국에 버그하우스를 알리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