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정보

[등산업계 수장에게 듣는다] 동진레저 강태선 사장

김영인 2010. 4. 29. 09:40

 

“산과 기업경영은 닮은꼴입니다”
      중국에서 블랙야크로 인기몰이…북경올림픽 에베레스트 봉화 주자 후원

토종 브랜드 블랙야크로 중국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동진레저 강태선 사장(58)은 우리나라 등산장비업계의 산 증인이다. 그는 한눈팔지 않고 35년을 한 분야에 매진해 성공을 거둔 사업가이자 산악인이다. 종로5가의 자그마한 등산장비점에서 시작해 국내는 물론 중국까지 진출한 중견기업을 키워낸 그의 뚝심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그는 스스럼없이 ‘산이 모든 힘의 원천’이라 말한다.

“산과 기업경영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남을 앞지르려하면 몇 배로 힘들고, 잠시 쉬다보면 쉽게 따라잡힙니다. 경영도 산과 마찬가지로 한발 한발 체력 안배를 해가면서 나아가야 멀리 높이 오를 수 있는 겁니다. 산에서 바람과 눈보라, 절벽을 극복해야 하는 것처럼, 기업도 자금 조달, 생산성 향상 등 넘어야할 장애물이 참 많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해야한다는 점에서 산과 경영은 너무나 닮았습니다.”

산을 오르는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그는 기업경영에서도 남들 보다 한발 앞서 고지를 오르는 행보를 보여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진레저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블랙야크를 런칭하며 등산의류사업에 뛰어든 것. 90년 대 초반 국내 등산업계는 큰 위기를 맞았다. 92년 취사야영금지제로 버너, 코펠, 텐트 등의 용품 수요가 사라지며 매출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정말 고통스런 시기였습니다. 등산용품에 대한 수요가 사라졌으니 눈앞이 깜깜했지요. 이대로 있다가는 무너지겠다 싶어서 등산용 의류사업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게 적중했습니다. 그 때 의류에 손을 댄 업체들은 거의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이 시기를 잘 넘긴 등산장비업계는 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과 때를 같이해 또 한번 도약하게 된다. 금강산 관광은 초창기에는 이북 실향민들 위주의 효도관광 성격이 짙었다. 아무리 관광이라지만 산을 오르는 일이다 보니 등산화의 필요성이 컸다.

“등산화처럼 생기기만 해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현대에서 금강산 가는 분들을 모아 놓고 교육할 때, 다른 것은 몰라도 등산화는 꼭 준비하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산에 다니지 않던 분들은 새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죠. 그 1~2년 사이에 등산화 업체들은 재고까지 모두 동이 날 정도로 큰 재미를 봤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 직전에 터진 IMF 사태도 기회가 됐다. 대량 해직사태로 갈 곳을 잃은 가장들이 가까운 산으로 향하며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저렴한 비용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등산의 장점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도시 근교 산 입구에서 등산복을 빌려주는 곳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단순한 등산인구 증가가 곧바로 매출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IMF가 기회가 된 것은 여성용 제품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실직한 남편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 함께 산에 다니기 시작했던 아줌마들이 등산객으로 하나의 큰 그룹을 이룬 겁니다. 게다가 경제권까지 이들에게 넘어가며 강력한 구매세력으로 등장한 것이지요.”

이전까지만 해도 여성용 등산복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성용 제품 가운데 사이즈가 작은 것을 입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게다가 구매 주체가 거의 남편이라 부인들은 사다주는 등산복을 입고 다녀도 별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IMF 이후에는 여성들이 패션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등장했습니다. 요구하는 색상과 디자인도 대단한 수준에 올랐습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면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라 해도 팔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정주부들이 평상복으로 이용하면서 등산복이 캐주얼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남성용에서 여성용으로, 또 전문의류에서 평상복으로 등산시장이 팽창하며 큰 특수를 맞은 것이지요.”

중국 제1호 아웃도어 브랜드의 프리미엄

90년대 말 아웃도어 시장이 호황을 맞았을 때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했다. 캐주얼 분야를 흡수하며 등산의류 시장이 커졌지만, 머지않아 우리나라 시장은 한계를 맞을 것으로 본 것이다. 대기업 등 여러 업체들이 경쟁에 뛰어들며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때 그가 던진 승부수는 중국 진출이었다. 강 사장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1998년 중국 북경에 아웃도어 전문매장을 개설한다. 당시 중국은 아웃도어에 대한 개념 자체가 희박한 상태였다. 하지만 강 사장은 우리나라의 중산층에 해당하는 인구가 4천만이 넘는 중국을 선점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했다.

“중국 최초의 아웃도어 매장이었습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모든 브랜드까지 통틀어 중국에 간판을 내건 것은 블랙야크가 처음이었습니다.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중국 아웃도어 시장은 전 세계 아웃도어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었다. 중국 자체 브랜드도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블랙야크는 시장선점 전략 덕분에 중국인들의 인식에 프리미엄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중국의 등산전문지 설문조사에서 블랙야크는 ‘중국 등산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로 꼽혔을 정도다.

 

“중국 진출 당시만 해도 당장 큰 매출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체 시장을 개발한다는 생각으로 훗날을 보고 투자한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시장이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 중점을 뒀는데, 올해부터는 판매량을 늘리는 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중국 등산시장 제1호 브랜드의 프리미엄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고급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백화점 등 고급매장의 매출이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것. 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첫 이벤트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성화를 올리는 마지막 남녀 주자를 동진레저가 후원하게 됐다. 중국 브랜드가 후원업체를 맡을 것이라던 예상을 깬 쾌거였다. 작년 12월1일 강 사장은 중국등산협회와 이에 관한 계약을 마쳤다. 에베레스트 구간의 다른 성화 봉송 주자들의 의류와 장비도 모두 협찬하기로 했다.

올해 그는 국내보다는 중국쪽 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시장은 변혁기에 있기 때문에 당분간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시장의 외변이 커지기는 했지만, 이제 경쟁이 치열하고 경기도 나빠 당분간 어려움이 많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 아웃도어 업계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88올림픽 이후 많은 스포츠업체가 도산한 것처럼 등산업계도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캐주얼 시장이 아웃도어에 밀린 것처럼 유행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겁니다. 2010년이면 중국의 아웃도어 시장이 우리 돈으로 2조원이 넘는 규모로 커집니다. 우리나라보다 큰 시장이 생기는 거지요. 등산업체들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만들어내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당분간은 규모에 집착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가야할 겁니다.”

그의 우려대로 우리나라 아웃도어 시장은 양적 팽창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향후 큰 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수도 있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도 높다. 강 사장은 이미 10년 전 이러한 상황을 예상했다. 그리고 한발 앞서 준비했고, 이제 그 결실을 거두고 있다. 강 사장은 등산업체들이 현명한 선택을 통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블랙야크 광고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강태선 사장.

“도전할 가치가 있어야 전의가 생긴다”

그는 뭔가 고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산을 오르며 해답을 찾는다. 피치 못할 경우만 아니면 주말마다 산을 오른다. 그러나 취미로 가볍게 유유자적 다니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에게 산은 사람을 만나는 또 다른 통로이기도 하다.

“주말에 산에 가면서 사람 만나는 일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는 편입니다. 서울시연맹 임원들과 산행을 시작했다가도, 점심은 동문산우회팀과 먹는 식이지요. 집사람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다보니 정신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산행도 이렇게 하는 것이 편합니다.”

그는 이처럼 산과 경영을 공존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동진레저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블랙야크도 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낸 것이다.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사는 야크는 히말라야 산악지대 사람들에겐 자식보다 귀한 존재다. 털과 고기, 젖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짐을 나르는 운송수단 역할도 한다. 강 사장은 히말라야 등반 때 본 야크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가 회사를 대표할 브랜드로 만들어낸 것이다. 블랙야크는 그만큼 그에게 있어 의미 있고 소중한 브랜드다.

“이제 야크 박사가 다 됐습니다. 한눈에 순종인지 잡종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니까요. 머리의 형태와 뿔을 보면 야크의 특성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뿔이 머리 옆에서 나와 뒤로 휘어지는 것이 야크의 특성입니다. 소는 야크에 비해 이마 부위가 좁고 뿔도 앞으로 휩니다. 네팔에서는 야크를 신비의 설인 예티와 함께 신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다.”

강 사장의 야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각별하다. 가산디지털단지의 동진레저 본사 사무실과 복도 곳곳에 야크 그림이 걸려 있다. 강당 한쪽 벽에는 그가 찍은 야크 사진이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야크와 관련된 책을 수집하고 네팔에서 강의까지 들었을 정도다. 또한 그는 자신이 찍은 야크 사진으로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서울시산악연맹 회장이기도 한 그는 2003년 서울-티베트 합동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시샤팡마(8,027m), 안나푸르나(8,091m), 캉첸중가(8,586m) 등 히말라야 고봉을 여러 차례 등반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수도 없이 다녀왔다.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를 끝으로 이제 고산등반은 그만할까 합니다. 매킨리는 히말라야의 거봉 보다 낮지만 난이도가 있어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곳입니다. 셰르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올라야 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지요. 사업도 마찬가지지만, 산은 역시 도전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야 전의가 생긴다니까요.”

환갑을 목전에 앞둔 나이지만, 강 사장의 등반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가 장기 등반까지 다니며 어떻게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 이는 산이 곧 경영이라는 그의 철학을 충실히 실천한 덕분일 것이다. 강 사장은 산과 사업 모두에서 성공을 거둬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