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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부터 여러 해 동안 예솔스포츠의‘하이(High) 8848’은 등산꾼이면 누구나 한 장씩은 가지고 있던, 혹은 입어보고 싶어한 등산용 바지다. 당시 하이 8848 바지는“예솔 바지 입어봤느냐”고 서로 물어볼 정도로 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한 가지 모델이 연간 5만 장이나 팔려나가기도 했다. 예솔스포츠 이화석 사장은 이렇게 돌이킨다.
“당시 면 20수로 사방 스판, 다시 말해 네 방향으로 늘어나는 원단을 짜면 너무 무거웠어요. 그래서 그보다 한결 가벼운 40수 사방 스판 개발을 의뢰해 그걸로 바지를 만들었더니 반응이 좋더군요. 당시 원단회사인 다운텍스 사장과 등산의류업계에선 우리 예솔에만 원단을 제공키로 약속했기 때문에 거의 독점적이었죠.”
이 사장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겉은 나일론, 안쪽은 면 소재인 이중직 원단을 의뢰해 제품에 쓰며 하이 8848 바지의 인기는 날로 더해갔다. 97년에 맞은 IMF는 졸지에 직장을 잃은 많은 이들로 때 아닌 등산붐을 일으켰다. 그 덕에 등산의류 시장은 괜찮았던 데다 품질이 좋았기에 하이 8848 바지는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제가 에베레스트 원정을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그 접어버린 흰 산의 꿈 대신 등산 브랜드로는 세계 최고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브랜드 명은 하이 8848이라고 정했던 거죠.”
바지 공장 따로 차렸을 정도로 ‘high 8848’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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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 소문 없이 매진을 기록한 클라이밍 바지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화석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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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장은 2000년대 들어 피부가 닿는 안쪽을 시원한 촉감의 쿨맥스, 바깥은 질기고 습기에도 강한 탁텔 원사를 쓴 ‘하일라이트 2000’이라 명명한 원단을 개발해 사용하는 한편 디자인도 대폭 개선했다.
“스판 바지는 앞부분에 세로로 주름을 잡아줄 이유가 전혀 없죠. 그래서 그 주름을 없애고 몸에 착 붙게 했어요. 그러자 특히 사오십 대 중년 고객들이 처음엔 작다, 불편하다 말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바지 허리 뒤쪽은 고무를 넣은 주름 방식으로 하고 허리벨트는 벨트 대로 끼워 쓰는 구조라서, 실제 산행에서 입어보니까 맵시가 나고 편하거든요. 그러면서 그만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바지만 만드는 공장을 따로 차려야 할 정도로 말이죠.”
이 사장은 “당시 돈 벌겠다는 생각은 둘째였고 일 자체가 재미있어서 일에 미쳤던 때였다”고 돌이킨다. 소재와 디자인이 딱 맞아 떨어진, 자신이 원하던 대로의 바지 견본을 만들어놓고 나서 방에서 감격에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그런 열정과 정성으로 작으나마 탄탄한 업체 예솔스포츠를 일구었다.
이화석 사장은 경북 문경 태생으로, 거기서 중학교까지 나왔다. 평생 농사꾼으로 살 생각에 결혼식도 일부러 문경에서 했다. 80년까지 5년간 복사기 사업을 하다가 접고 낙향해 4H클럽 문경군 회장까지 하며 2년여 동안 열심히 농사도 지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농어민 후계자 자금을 받으려던 시도가 무산되며 그는 농사 꿈을 접고 다시 도회로 나갔다. 한성FRP공업 영업사원으로 뛰었고, 오래지 않아 영업부장까지 맡았으나 회사가 부도 났다.
“그러고 나니 산 관련 일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제가 광운고 산악부 출신으로 암빙벽에도 한때 푹 빠졌었고, 장비도 좀 알고 또 영업도 익혔으니 한번 해볼만하겠다 싶었던 거죠. 그래서 당시 어느 등산장비 수입업체 영업직으로 들어갔는데, 판매량을 6개월만에 4배로 늘여놓으니까 두 배로 보수를 올려주더군요. 아무튼 과거 한성공업에 비해선 규모가 작아서 뭐, 일도 아니었죠.”
그의 영업능력을 본 어느 등산장비업자가 지분 50%를 보장하겠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그러나 ‘동업자로서 대접을 해주지 않아’ 2년 뒤 결별하고, 93년 이 사장은 예솔무역을 시작했다. 결혼해서 7년만에야 얻은 귀한 딸의, 예쁜 소나무란 뜻에서 예솔이라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자신이 직원이자 사장인 예솔무역은 그러나 자본금이 거의 없었기에 수입을 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그는 스노프렌드 제품을 전국 매장에 공급하는 일을 맡아 했다. 그러다가 등산바지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창업 당시 슬로건은 보다 편하게, 보다 가볍게로 정했고, 거기에 철저하려고 혼신을 다했습니다. 여기에다 지금은 보다 강하게까지 보태었죠. 이 슬로건에만 충실하면 반드시 성장한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창업 후 2000년까지 그는 원단 선정에서 디자인까지 직접 했다고 한다. 워낙 집안이 이쪽으로 소질이 있는 편이다. 부친인 고 이거부씨는 조계사 종각 보수공사를 비롯해 여러 절을 직접 설계까지 해서 짓는 대목수였고, 남동생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고, 여동생은 화가다. 자신은 중학생 때 이미 재봉으로 직접 반바지를 만들어 입기도 했고, 광운공고 시절 전자 도면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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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남 본사에서 직원들과 내년 봄 신상품에 대해 토의 중인 이화석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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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명브랜드 쉐펠 라이센스 생산
등산바지로 일어선 뒤 예솔은 종합 등산의류업체로 변신하는 한편 2001년부터는 독일의 유명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인 쉐펠(Scho¨ffel)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그간 예솔과 쉐펠이 총 매출의 6:4정도였으나 올해 4:6으로 역전되었고, 오래지 않아 3:7 정도로 쉐펠의 매출 비중이 늘게 될 것이라 한다. 마니아층은 하이 8848을 알아주지만, 대중적 인기면에서는 소비자들이 아무래도 쉐펠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 오리지널 제품의 문제는 우리와 소매나 후드 길이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간 이 문제로 고민하던 이 사장은 쉐펠 본사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작년 봄부터 고어텍스 제품을 제외한 전 품목을 한국인 체형에 맞게끔 디자인을 수정, 생산하고 있다. “내년 봄부터는 고어 재킷 종류도 우리가 직접 디자인해서 본사에 보내면 본사가 제품을 만들어 우리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내게 될 것”이라고 이 사장은 밝힌다.
예솔의 매출은 3년 전 130억 원에서 올해 100억 원대로 떨어졌다. 비록 이 사장이 일신상 문제로 잠시 사업에 몰두하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동안 너무도 많은 강력한 브랜드들이 시장에 나선 한편 무엇보다 유통망에서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예전에 예솔 바지를 취급하던 멀티샵, 그러니까 이 브랜드 저 브랜드 모두 취급하던 종합점 방식의 가게들이 유명 브랜드 대리점으로 바뀌면서 저희 제품을 팔기가 어려워진 거죠. 그래서 유통망 확충이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랍니다. 물건만 잘 만들어야 소용없다는 걸 요즈음 실감하고 있어요.”
현재 예솔은 규모도 큰 편인 5개 직영점을 가지고 있다. 매출 규모가 100억 원 대인 업체로 이렇듯 직영점을 5개라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아마 예솔이 유일할 것이다. 이 사장은 몇 해 내로 전국 지점망을 30개 정도로 늘일 예정이다. 이렇게 자체 유통망을 갖추고 제품력만 유지하면 대기업들의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설마 40명 직원들 먹고 살 정도야 못하겠느냐”고 이 사장은 말한다.
예솔 매장은 예솔과 쉐펠 의류 외에 세계 각국의 유명 브랜드 용품들을 다양하게 들여와 취급한다. 어차피 예솔과 쉐펠은 의류 전문 브랜드이므로 신발, 버너 등 기타 용품들은 골고루 다 구색을 갖춘 멀티샵으로서 꾸며졌다. 때문에 일부러 예솔 매장을 찾는 고객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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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솔스포츠 필드테스트팀 ‘클럽 8848’ 발족식. 제품을 내기 전 이 팀을 통한 사전 테스트를 반드시 거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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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테스트 위한 클럽 8848팀도 운영
쉐펠 브랜드는 일본 시장 전개에서는 실패했지만, 한국에선 예솔이 맡으며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쉐펠 본사의 신뢰가 두터워 장차는 중국 대륙의 판매권까지도 예솔이 따낼 수 있을 것으로 이 사장은 말한다. 대개 매출 100억 원대 안팎의 업체는 외국 브랜드 제품을 단순 수입 판매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현실임을 감안하면 예솔은 보기 드물게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사장은 국내 생산을 언제나 90% 이상 유지하려 애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국내 봉제기술이 낫고 현장 직접 관리가 가능해 제품 완성도도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장은 올해 성남시 상대원동의 2ㆍ3공단 금강펜테리움 빌딩 내에 500평 규모로 큼직하게 새 사무실과 창고를 마련, 이전을 마쳤다.
“제2의 창업을 한다는 마음으로 여기서 심기일전, 매출을 300억 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재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실은 한때는 이 사업 접으려고도 했어요. 하지만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웃도어 관련업계에서 뛰고 있는 산꾼 출신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어보자, 그런 마음도 먹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한때 산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제품들을 꾸준히 낼 작정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정상이듯이, 그러다 보면 제가 원하는 수준의 정점에 올라설 수 있겠지요."
이 사장은 3년 전부터 필드테스트를 위한 클럽 8848팀을 만들어 운용해오고 있다. 기술등반팀 10명, 일반등산팀 10명을 매년 새로이 선정, 계절마다 예솔 의류를 지급, 실제 산행시의 장단점을 연중 체크하고 있다.
올초 출시한 클라이밍바지가 별 소문도 나지 않았는데 이미 만드는 족족 팔려나가고 있는 것은 이 테스트팀의 조언 덕이 적지 않다. 엉덩이 부분은 우븐(woven·직물) 스트레치 원단, 종아리 부분은 감촉 좋고 잘 늘어나는 티셔츠 소재, 무릎 뒤쪽은 통기성이 좋은 메시로 처리하는 등 정성을 들인 바지다. 올 가을 신상품은 무릎 부분을 봉제 대신 웰딩(가열접착)으로 처리하는 등 한층 더 개선했다. 무겁고 오래지 않아 신축성이 떨어지는 우레탄사(가는 고무원사)를 쓰지 않고 직조 기술로 신축성을 준 고기능 원단을 써서 가볍고 내구성도 뛰어난 바지라고 한다. 이 사장의 열성으로 보아 하이 8848의 명성을 되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