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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업계 수장에게 듣는다] 김형섭 네파 사장

김영인 2010. 4. 30. 10:52

 

“평안섬유 60년 노하우로 미국 이어 유럽도 석권할 것”
“우리나라의 현 인구 감소 추세로 보아 2030년쯤 가면 아마 수많은 내수 기업들이 도산할 겁니다. 살아남으려면 글로벌라이즈, 곧 브랜드의 세계화밖에 없죠. 하지만  한국 브랜드로 유럽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0%입니다. 일본 브랜드 중에도 유럽서 자리 잡은 것 찾아보기 어려워요.

그래서 이탈리아 브랜드 네파를 잡은 것인데, 유럽 브랜드는 또 미국시장에는 발을 못 붙이더군요. 반면에 미국 브랜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 여럿 있죠.

그래서 네파를 일단 미국 시장에 안착시켜 보려 합니다.”


▲ [위]부친인 김세훈 회장과 네파 자켓을 이모저모 살펴보고 있는 김형섭 사장. [아래]김형섭 사장이 디자인팀과 네파 여성 자켓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네파(NEPA)는 요즈음 급부상하고 있는 아웃도어의류 브랜드다. 단순하고도 세련된 디자인과 색상이 고운 티셔츠로 특히 올 여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네파는 현재 티셔츠 40종을 비롯해 재킷, 바지 등 의류를 중심으로 등산화, 배낭, 스틱 등 용품도 여러 가지 내고 있다.


네파측은“고급 아웃도어 의류 중 아마도 마진이 가장 박한 브랜드일 것”이라고 말한다. 원단 선택에서 디자인, 염색, 봉제 등 전 공정을 까다롭게 진행하므로 제조 원가가 유난히 높다는 뜻이다. 때문인지 몰라도, 런칭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뿐인데 이미 산에서 심심찮게 네파 브랜드 의류를 볼 수 있다.


아직 매출을 따질 단계는 아니라면서 네파측이 밝히는 올 1년 매출 예상액은 150억 원. 고어텍스를 쓰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전이다. 네파측은 “장차 고어텍스, 혹은 유럽에서 대유행중인 이벤트와 같은 방수투습 원단을 사용한 제품을 본격 생산할 경우는 매출이 급신장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 네파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업체는 한국인에겐 매우 친숙한  옛 독립문표 메리야스, 현 PAT 브랜드의 평안섬유공업(주)이다. 이 평안섬유의 3세 경영인인 김형섭 사장(47)이 네파의 이와 같은 약진을 이끌고 있다. “김 사장은 늘 미니멀리즘(minimalism:최소 표현주의)과 고기능을 강조해왔고, 이것이 등산의류시장에서도 먹히는 것 같다”는 김종선 이사의 말이다.


평안섬유는 원사와 원단에서 모두 두 번 염색해 광택이 마치 실크와 같은 느낌이 나도록 가공하는 기술인 머서라이징 기술을 1984년에, 한 올의 실에 여러 가지 색상을 내는 스페이스 다잉 기술은 1990년에 이탈리아보다 앞서 개발해 업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이 두 기술 또한 네파 의류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평안섬유 18년 법정 관리 탈출’ 이끌어

▲ 금강산 구룡대 암벽등반 후 하강하고 있는 김형섭 사장.

‘3대 부자 없다’는 옛말이 있지만, 김형섭 사장은 외려 3대째에 이르러 기업을 크게 부흥시키고 있는 기업인이다. 법정 관리에 들어갔던 평안섬유를 흑자로 전환시키며 법정 관리에서 벗어나게 했고, 최근 연간 매출도 평안섬유 사상 최고인 1,300억 원대로 끌어올렸다. 그것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올해 평안섬유 창업 60주년 행사는 전례 없이 크게 치르기도 했다.


평안섬유의 고 김항복 창업주는 고당 조만식 선생의 제자로서, 3.1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일본 동경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의 주역이다. 김항복 선생은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다가 해방 후 월남, 평안섬유를 창업하며 독립문이란 상표명을 썼다.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거나 석방될 때마다 깊은 감회로 바라보던 독립문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이 독립문표 메리야스는 2세 경영인 김세훈 사장(78ㆍ현 회장) 대로 넘어온 이후 국내 내의류 시장의 70%까지 차지하는 한편 국내 매출의 4배에 달하는 연간 1천만 달러 수출 기록을 달성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70년 말 유류 파동으로 수출길이 막히며 채산성이 크게 악화돼 결국 8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 후 18년이나 지난 뒤인 98년 비로소 법정관리에서 벗어나기까지의 과정을 김형섭 사장은 이렇게 밝힌다.


“제가 89년 회사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무역수지는 괜찮았어요. 문제는 내수 적자였습니다. 그래서 무역부장직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내수에 붙어 들여다보니 백화점과 총판의 마진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모두 철수시키고 경쟁 우위 품목인 골프 티셔츠를 실크보다 비싼 60~70수 실켓(silket) 원사로 만들어냈죠. 판매량이 연간 4만 장에서 나중엔 120만 장까지 늘어나더군요. 더불어 바지, 재킷류 매출도 덩달아 치솟았고-. 그러면서 법정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역으로 말하면, 법정 관리가 있었기에 3세 경영인 김 사장은 오히려 경영자로서 실력을 보일 수 있었던 셈이다. 매출이 급신장한 이유 중 하나로 김 사장은 부친이 다져놓은 평안섬유만의 뛰어난 염색기술을 꼽는다.


“아버지께서 70년대 초 일본 염색 기술자 60명을 초청, 당시 섬유공학과 출신 직원 60명과 1대1 합숙을 시키며 기술 전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뒤 원단 염색에서 독보적 기술을 갖출 수 있었죠. 염색공장은 법정관리 이후 별도 회사로 독립해 나갔지만, 거의 같은 회사나 다름없이 밀착돼 있습니다. 네파 의류 염색도 물론 모두 이 공장에 맡기고 있죠.”


伊 네파사 지분 51% 확보, 사실상 인수

▲ [위]서울산악조난구조대 자문위원으로서 구조대팀의 탈레이사가르 원정 격려단으로 나섰던 김형섭 사장. [아래]김남일 서울산악구조대장으로부터 설상 등반법을 배우고 있는 김형섭 사장.

PAT(평안텍스타일의 약자) 매출 1,300억 원에 비해 네파는 150억 원으로 아직 비교할 바가 못 돼지만 김 사장은 평안섬유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단으로 네파를 주목하고 있다. 네파는 ‘Natural Ecologe Protection Area(자연생태보호구)’의 약자로 이탈리아 브랜드다. 암벽화 기술이 특히 뛰어나 현재 유럽 암벽화 시장에서 4위이며 곧 2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네파사를 김 사장은 사실상 인수했다. 이탈리아 본사 경영진에 10년간 유럽지역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네파 지분 51%를 매입했다. 적잖은 액수를 들여 이 네파를 인수한 이유를 김 사장은 이렇게 밝힌다.


“우리나라의 현 인구 감소 추세로 보아 2030년쯤 가면 아마 수많은 내수 기업들이 도산할 겁니다. 살아남으려면 글로벌라이즈, 곧 브랜드의 세계화밖에 없죠. 하지만  한국 브랜드로 유럽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0%입니다. 일본 브랜드 중에도 유럽서 자리 잡은 것 찾아보기 어려워요. 그래서 이탈리아 브랜드 네파를 잡은 것인데, 유럽 브랜드는 또 미국시장에는 발을 못 붙이더군요. 반면에 미국 브랜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 여럿 있죠. 그래서 네파를 일단 미국 시장에 안착시켜 보려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김 사장은 10월3일 미국 최초의 네파 매장을 LA에 개설했다.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그대로 가져다 판매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잘 되고 있다고 한다. 이 매장에서의 경험을 발판으로 미국 전체로 일단 시장을 넓힌 다음 역으로 유럽까지 진출하리라는 것이 김 사장의 계획이다.


김 사장은 “네파를 인수한 의도가 이러한 것인 만큼 국내 시장은 현재 정도의 규모로 꾸준히 끌고 나갈 수만 있어도 만족하는데, 국내도 생각보다 잘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상승 운을 탄 것인지 네파가 지원한 여러 산악관련 행사가 뜻밖의 홍보 효과를 나타내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산악조난구조대의 2006년 탈레이사가르 북벽 원정 후원이다. 탈레이사가르 북벽은 그간 한국 산악인들이 10차례나 도전했으나 완결짓지 못했던, 한국 산악계의 가장 큰 난제로 남아 있던 난벽이다. 이 벽 원정에 김 사장은 4천만 원을 쾌척했고, 등정 후 네파 탈레이사가르 원정대는 한국산악대상을 받으며 다시 한 번 산악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올 봄 서울시산악연맹이 주관하고 네파가 후원한 네파 익스트림대회 또한 네파를 다시 한번 산악 전문 브랜드로 크게 각인시켰다. 그간 국내 산악관련 경기는 산악마라톤류가 거의 모두였고, 상위 입상자들도 대부분 산악인이 아닌 마라토너들이었다. 이에 진정 산악행사다운 행사를 해보자는 뜻에서 시작한 익스트림대회는 큰 인기와 관심을 끌었다. 이 대회로 네파는 각 지역 산악계에서 사실상 등산패션을 주도하는 산악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 사장은 “하지만 홍보효과를 따져서 지원한 것은 절대 아니었고, 내가 좋아하는 암벽등반 관련 행사이기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구조대원들의 원정이기에 지원했을 뿐”이라며 웃는다.


“익스트림라인 의류, 기대해주세요”

▲ 곧 출시될 80리터들이 네파 대형 배낭을 메어보고 있는 김형섭 사장과 김종선 이사.

김 사장은 암벽등반의 재미에 흠뻑 젖어 있는 사람이다. 5년 전 자신은 어려워서 쩔쩔 매는 암벽을 한국등산학교를 나온 친구는 가볍게 올라가는 모습이 부러워 그도 한국등산학교 정규반을 수료했고, 그후 친구, 회사의 암벽꾼 직원들과 종종 암벽등반을 즐겨왔다. 이제는 서울산악조난구조대(대장 김남일) 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암벽꾼들과 관계가 밀접해졌다.


그는 암벽등반을 통해 ‘아침에 손톱을 깎으면 하루 종일 재수 없다’는 그만의 고약한 징크스도 깼다. 올 가을 구조대 자문위원 합동등반 때 일부러 아침에 손톱을 깎고 선인봉 표범 루트 등반을 시작, 아무 부상 없이 하산을 마쳤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아무 때나 손톱 깎습니다”하면서 김 사장은 웃는다.


올 여름 서울산악조난구조대의 금강산 암벽루트 개척등반 때는 구룡폭포 옆 구룡대 암벽도 올라보았다. 한 피치 오를 때마다 점점 더 넓어져가던 금강산 조망과 침봉들 사이로 뵈던 동해 풍경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김 사장은 돌이킨다.


올 가을 들어 김 사장은 네파 직원들에 최첨단 등반을 하는 산악인들이 입어보고 최고라 할 수 있는 전문가용 ‘익스트림 라인’ 의류를 주문, 곧 시장에 선뵈게 된다. 코뿔소 마크의 PAT 의류는 워낙 오랫동안 노하우가 축적돼 봉제시 좌우 편차가 1mm도 나지 않는다는 김 사장의 말이다. 이 PAT 의류기술 파트에서 네파 브랜드 의류의 작업공정을 일일이 점검해주고 있다고 한다.


독립 유공자의 후손답게, 김 사장은 “일본시장에 내 상표의 제품을 널리 파는 것이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보인 역량과 운을 감안하면 김 사장은 그리 오래지 않아, 그리 어렵잖게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년 봄 서울산악구조대원들과 히말라야 원정등반을 함께 하고자 김 사장은 10월21일 아침에도 북한산 노적봉을 향해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