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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업계 수장에게 듣는다] 정영훈 케이투코리아 사장

김영인 2010. 4. 30. 10:53

 

“1조 원 매출 달성 후 세계적 패션 & 아웃도어업체로 발돋움할 것”

케이투코리아 정영훈(鄭暎薰) 사장은 한국의 대형 아웃도어용품 전문업체 사장 중 가장 젊다. 아직 불혹(不惑)의 나이도 넘기지 않은 39세다. 그러나 정 사장은 발 빠르고도 과감한 운영 체제 전환으로 현재 케이투코리아를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아웃도어용품 업체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노스페이스, 코오롱에 이어 작년 2007년도 케이투의 아웃도어 부문 매출은 약 1,400억 원으로 업계 3위. “산업화 부문까지 합하면 2위가 될 것”이라고 케이투측은 밝힌다.

2003년 5월 청계산점을 시작으로 브랜드매장 체제로 전환한 일은 이를테면 되건너올 수 없는 루비콘강이었다고 정 사장은 말한다.

“한국 고유 브랜드로 브랜드매장 시스템을 채택한 아웃도어 기업은 역사가 오래된 코오롱 이후 우리 케이투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적자가 나기 시작하면 그만 끝장인 결정이었지만, 성공적이었어요. 그 덕에 지금 앞서 나아간다고 봅니다.”

케이투(K2) 제품만을 취급하는 매장을 전국적으로 늘여가면서 케이투의 매출과 수익은 급신장했고, ‘젊은 2세 경영인의 즉흥적이고도 무모한 시도’라던 혹평은 곧 감탄으로 바뀌었다. 현재 케이투 브랜드매장은 로드샵이 121개, 백화점 내 매장이 56개이며, 현재 3개인 100평 이상 규모의 메가샵을 올해 내에 30개로 늘일 것이라 한다.


▲ 성수동 본사 엘리베이터 내에 부착된 ‘K2 유사상표 주의’안내판을 보며 정용재 브랜드마케팅 팀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정영훈 사장.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사장은 90년대 중반 대우에 입사했으나 ‘일을 제대로 배우려면 5년 넘게 걸릴 것 같아’ 7개월만에 그만두고, 97년 당시 부친(고 정동남 사장)이 운영 중이던 케이투코리아의 아웃도어 부문 영업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직후인 97년 말 IMF 사태가 터졌다. “꼭 전 국민이 짜고 등산화를 사지 말자고 한 것 같았다”고 정 사장은 돌이킨다.

그나마 충격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95년부터 ‘곁가지’로 만들던 안전화 덕분이었다. 안전화는 처음부터 안전화를 만들자고 한 것이 아니라 케이투 등산화를 여러 공사 현장에서 안전화 대용으로 쓰는 것을 알고나서였다. K2 안전화는 당시 기존의 안전화보다 두 배 이상 비쌌지만 삼성건설 등 선도업체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중엔 안전화 시장 최고의 점유율을 기록하게 되었다. IMF 때도 사업장에서 법적 규제는 지켜야 했기에 안전화는 꾸준히 팔렸고, 그 덕에 케이투코리아는 IMF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 K2 등산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영훈 사장. 당일산행용, 장거리 워킹용, 그리고 암릉등반용이냐에 따라 각각 엑스 그립(X-grip), 이엑스(EX) 그립, 스리엑스(3X) 그립의 세 가지 서로 다른 창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브랜드매장 체제 전환으로 급신장세 맞아

정영훈 사장은 IMF 때 여러 업무 중에도 특히 모진 일인 채권회수 업무부터 시작해 생산, 경리, 구매, 자금, 마케팅 등 기업 운영 전반에 걸쳐 업무를 배웠다. 5년여 간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을 즈음 뜻밖의 사고가 터졌다. 2002년 6월, 부친 정동남 사장이 이미 수십 번 올랐던 북한산 염초봉 암릉등반 중 사고를 당한 것이다.

정동남 사장은 애초 등산화 업체로 케이투코리아를 일으켰고, 64세로 사고를 당한 그 때까지 매주말 K2 등산화를 직접 착용하고 근교 암릉을 찾는 열성파 산꾼이었다.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팀이 폴란드를 이긴 그 시합을 같이 본 바로 다음날인 6월5일, 119 전화를 받고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부친을 뵈러가던 그 날의 모든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정 사장은 돌이킨다.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로 기업을 물려받은 정 사장은 그러나 이미 전무로서 회사 업무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 부친의 사고 2년 전인 2000년 군자동쪽에 따로 둔 등산의류와 배낭 부문의 제2사업부를 본사 영업부로 통합, 토탈 아웃도어업체로 탈바꿈하자고 제안했던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러했기에 부친 사후 1년여만인 2003년 브랜드매장 체제 전환을 자신 있게 밀어부쳤던 것이다. “체제 전환은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고 해도 찬성했을 것”이라고 정 사장은 말한다.

"그냥 즉흥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98년부터 일부 등산장비 전문점에 K2 간판을 달아 테스트를 해봤죠. 그랬더니 우리 제품 매출이 높은 데는 아주 높고, 낮은 데는 아주 낮더군요. 달리 말하면 각 매장이 인기 좋은 제품 파는 데 주력하고 기타 제품엔 아예 무관심하더란 뜻입니다. 그래서 아예 브랜드매장으로 가자, 이렇게 결정한 거죠.”

▲ (좌) 자동화기기에서 제조되고 있는 등산화를 살피고 있는 정영훈 사장. “35년 축적된 노하우로 사후 품질관리에서도 앞서가고 있다”고 정 사장은 말한다. (우) 디자인실 직원들과 내년 봄 출시할 신모델 등산복을 검토하고 있는 정 사장. 정 사장은 계절별 등산복의 소재에 대해서도 세밀히 파악하고 있다.
케이투코리아의 브랜드매장은 모두 위탁운영, 즉 재고가 나면 본사가 모두 회수해가는 방식이다. 대개의 아웃도어 회사들은 본사의 재고 부담이 없는, 소매 점포주가 본사로부터 팔 물품들을 사들이는 방식의 이른바 사입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사장은 그러나 “물류 시스템과 전산이 완벽히 갖춰졌다면 실시간으로 점포간 물품의 교체 판매가 가능하므로 위탁운영이 낫다고 본다”며 “이를 위한 시스템을 완벽히 갖춰나갈 것”이라고 밝힌다.

케이투코리아는 고 정동남 사장이 미군용 워커가 곧 최고의 등산화이던 시절인 72년 본격 등산화 제조업체로 출발했다. 공히 한국에서 가장 전통 있는 등산화 브랜드로, 등산화에 대한 노하우는 남다르다고 할 것이다. “그 많은 등산화 모델 중에서도 스테디셀러라고 할 만한 것은 뭐냐”고 묻자 대뜸 정 사장은 “그런 것이 있다면 곧 신제품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건 머지않아 그 회사는 망한다는 뜻”이라고 되받는다.

“예전엔 베이직, 베이스캠프 같은 10여 년간 잘 팔린 등산화 모델도 있었어요. 하지만 요즈음은 6개월 이상 끌고 가는 제품조차도 없습니다. 소비자 만족 측면에서 보아도 그게 정석이죠.”

바위가 많은 한국 지형에서 등산화는 창이 특히 중요하다. 물론 케이투코리아는 창(X-Grip, 3X-Grip, EX-Grip)에도 남다른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 케이투코리아 본사 입구의, 창업자인 부친(고 정동남 사장)의 동상 옆에 선 정영훈 사장. “아무 말도 않고 오랫동안 맡겨둔 채로 지켜보다가 한 번씩 크게 깨우쳐주시는 스타일이었다”고 정 사장은 돌이킨다.

“G마켓, 옥션서 파는 것도 모두 K2 유사품”

등산화에 관한 정 사장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 기기를 갖춘 케이투 직영공장에서 만들어낸 등산화를 일단 신어본 소비자들은 그 후 다른 제품은 불편해서 못 신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정 사장은 신발 공장으로 안내한다.

지름 10m쯤 되는 거대한 원통형 자동화 기계가 신발을 차곡차곡 만들어내고 있다. 수십억 원 대의 그 기계에 붙어선 직원은 단 서너 명으로, 그들은 그저 간혹 틀에 떨어져 있는 부스러기나 쓸어낼 뿐이다. 그 옆 햇살이 화사한 창가쪽 라인에선 수십 명 직공이 도열해 한창 안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은 사후 품질관리가 더 중요해져가고 있으며, 자체 등산화 공장을 가진 케이투가 속도나 수선 내용면에서도 월등히 고객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 정 사장의 자랑이다.

“의류도 소재나 패턴에서 최고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당장 뒤로 밀리죠.”
그러면서 정 사장은 티셔츠의 여러 가지 소재를 예로 들며 소재별로 특성이 어떤지를 소상히 설명한다. 드라마 속의 탤런트 같은 미남형이어서 다만 사장 배역을 맡았을 뿐인 것 같던 첫 인상과는 완연히 다른 치밀함을 갖춘 정 사장이다.

케이투는 브랜드 가치를 지켜나가는 데 특히 많은 애를 먹고 있는 업체 중 하나일 것이다. 잘 나가는 만큼 짝퉁 브랜드가 그만큼 많다. K자와 2자 사이에 작은 점을 찍은 것부터 시작하여 아래쪽에 희미하게 단어 하나만 덧붙인 것 등 싸구려 소재로 만든 짝퉁 케이투 때문에 엉뚱한 불만 전화가 매일 폭주한다.

“케이투는 세계 제2위 고봉이자 8천미터 고봉 중 등반이 특히 어려운 난봉이라는 강인함의 이미지로 보나 어감으로 보나 아웃도어용품에는 기막히게 어울리는 브랜드죠. 그래서인지 유사 브랜드가 무려 200개가 넘어요. G마켓, 인터파크, 옥션에서 케이투라고 판매되는 제품도 100% 유사품이죠. 오로지 K자와 2자만 쓴 로고이고 제조원이 케이투코리아라고 돼 있어야만 진품 K2입니다. 결국은 브랜드 파워로 승부가 나는 건데, 그런 짝퉁들 때문에 케이투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 큰 상처를 입어왔어요. 그래서 이 짝퉁 문제는 올 상반기 내로 깨끗이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 직원들과 도봉산을 오른 정영훈 사장(가운데). 이따금씩 사업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친구들과 산을 찾는 것도 취미의 한 가지라고 한다.

2006,7년 연속 ‘국가브랜드 경쟁력지수’ 1위 받아

브랜드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케이투코리아는 제품 검사를 샘플링 방식이 아니라 전수검사, 즉 모든 제품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단 생산라인에서 그렇게 전수검사를 한 다음 물류센터로 갈 때 한 번 더 검사해서 하자 물품이 나오면 전 제품을 재검사하는 등 철저히  케이투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다. 그 덕에 K2는 코오롱과 더불어 한국생산성본부로부터 2006년, 2007년 2년 연속해 ‘국가브랜드 경쟁력지수(nbci)’ 1위를 받기도 했다.

정 사장이 이렇듯 애지중지하는 K2 상표는 그러나 외국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국내 시장서 살아남기도 쉽지 않던 70~80년대에 외국에 상표등록이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때 이미 K2는 미국에서 오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국 브랜드의 세계화는 아주 어려운 일이예요. 성공한다고 해도 들인 공력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적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K2로 자금과 힘을 모아서 세계적 브랜드를 사버리는 것이 더 빠르고 더 실속도 있는 선택이라고 봅니다.”

점차 소득이 늘고 여가시간도 늘어나는 한편 산에 대한 접근성은 높고 다른 대체 스포츠는 한정된 우리나라에서 아웃도어용품 매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정 사장은 마흔살 때 1천억 대, 50세에 1조 원대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1천억 목표는 37세 때 조기 달성했으니 1조 매출도 50세 이전에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다.

그렇게 일단 힘을 기른 다음엔 일류 브랜드를 매입, 세계적 패션&아웃도어 대기업으로 간다는 것이 정 사장의 꿈이다. 프랑스의 오랜 아웃도어브랜드인 아이더(Eider)의 국내 판매권을 2년여 전 인수한 것은 그러한 꿈을 실천하기 위한 시금석으로 삼기 위해서라 할 것이다.

정 사장은 여러 가지 운동을 조금씩 즐기는 스타일이다. 등산도 하되, 대학 때의 친한 친구들과 순전히 재미로만 한다. 사사로운 일상적 만남까지도 사업과 연관된 사람들로 채워진다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거니와 사업상으로도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

현재 성수동 소재 케이투 본사의 직원 수는 생산라인 105명을 포함해 총 321명. 목표를 직원들 스스로가 설정하고 달성하는, 자유로우나 완전 자기 책임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매출액은 그렇게 해서 나올 뿐이며, 사장인 내가 얼마 달성해야 한다며 수치로 제시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면서 정 사장은 이렇게 말을 맺는다.

“세계 2위봉 K2와 같은 강렬하고도 강인한 이미지, 그게 우리 케이투의 숙명이자 최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