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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업계 首將에게 듣는다] 스노우프렌드 김세경 사장

김영인 2010. 4. 30. 10:49
“한국 최고의 등산복 명장(明匠)으로 다시 일으킬 것”

“아웃도어 의류시장은 과거엔 피라미드형이었으나 지금은 호리병형입니다. 다시 말해 고급 브랜드와 저가 브랜드 시장이 크고, 우리 스노우프렌드가 위치한 중간 브랜드 시장은 상대적으로 좁아져 있다는 뜻이죠. 저희는 자본 규모상 대형 업체들과 브랜드 경쟁할 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가시장으로 뛰어들 수도 없습니다. 결국 돌파구는 특수한 소비계층을 확보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제품 선택에서 세심하고, 그런 만큼 지속적인 고객이 될 수 있는 분들에게 초점을 맞출 작정입니다.”


▲ 김세경 사장

스노우프렌드가 우리 등산업계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스노우프렌드는 70년대 중반 한국 최초로 등산복다운 등산복을 생산해내기 시작한 업체이거니와 지금껏 ‘꾼들을 위한 꾼들의 옷’으로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파워가 막강한 큰 업체들에 비해 연간 매출 규모는 50억 원 정도로 적지만, 산꾼 전문브랜드로서 소재ㆍ기능이 특화된 제품들을 계속 내고 있다.


오랜 바위꾼들에게 눈사람 형상의 스노우프렌드 상표는 추억의 상징이기도 하다. 80년대에 스노우프렌드는 곧 전문 등산복의 대명사였고, 등산을 좀 한다는 사람 치고 스노우프렌드 옷을 한 벌쯤 입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90년대 중반까지 전국 명산의 산장(지금의 대피소)들은 거의가 공단 직원이 아니라 민간인들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입고 있던 바지와 남방은 어김없이 스노우프렌드였다. 한국의 3대 산장지기로 유명했던 지리산 노고단산장의 함태식씨, ‘허대장’으로 통하던 덕유산 덕유산장의 허의준씨, 설악산 권금성 털보 유창서씨 등 30~40년간 산장지기 생활을 한 여러 산꾼이 약속이나 한 듯 입어 나중엔 스노우프렌드 남방셔츠ㆍ바지 차림은 곧 등산꾼 제복인양 인식되기도 했다.



등산복 바지의 진화 이끌어와


▲ 97% 무봉제 웰딩(열융합 접착식)이면서 테프론 가공을 해 생활방수도 되는 스노우프렌드의 기능성 바지.

스노우프렌드 옷은 우선 튼튼했다. 한 줄 봉제한 다음 접어서 한 번 더 재봉질을 하는 이중 재봉방식으로 만들어 거친 산행을 거듭해도 남방이건 바지건 봉제선이 튿어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바지 주머니에 지퍼를 단 것도, 또한 신축성이 있는 스판 천을 사용한 등산용 바지를 낸 것도 스노우프렌드가 최초였다”면서 김세경(金世?ㆍ65) 사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바지 뒷주머니는 엉덩이 바로 뒤가 아니라 옆 봉제선쪽으로 최대한 끌어당겼어요. 그래야만 뒷주머니에 물건을 넣어두어도 다리가 움직일 때 덜 불편하거든요.”


네 방향으로 늘어나는 이른바 투웨이 스판 원단이 나오지 않았을 때인 77년 김세경 사장은 바지 안쪽의 네 가닥 봉제선이 만나는 한 가운데 부분에 다이아먼드 모양의 작은 천을 덧댄 바지를 만들기도 했다. 이 바지는 다리를 벌릴 때 걸리는 느낌이 없어야 하는 암벽꾼들 사이에 특히 인기였다. 나중에 미국 요세미티 지역을 다녀온 암벽꾼들이 이런 바지를 사와서는 “암벽등반 전용 다이아먼드 스트레치 바지라며 자랑하더라”고 김 사장은 돌이킨다.


▲ 폭설이 내린 북한산록에서 산악스키를 타고 있는 김세경 사장. 김 사장은 암벽꾼 출신으로, 오랫동안 산악스키를 즐겨왔다.

꾼들만이 납득할 수 있는 이런 옷들을 만들어온 것은 물론 창업자인 김세경 사장이 산꾼 출신이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젊어 한때 암벽에 몰두했던 클라이머다. 지금은 지병으로 인해 체중이 48kg에 불과하지만 한창 때인 30~40대엔 체중 60kg의 바위꾼으로서 한국산악회 구조대 대원이기도 했다.

구조대 출신 꾼들의 모임으로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산에 다니자’는 뜻의 모임 ‘서로회’를 유난히 사랑했던 김 사장은 예비군복 전문점을 운영할 당시 전문등반에 적합한 옷들을 직접 고안, 제작해 자신도 입고 선후배들에게도 나누었다. 그 옷들이 선풍적 인기를 끌자 서로회의 발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설우(雪友)상사라는 등산복 전문업체를 세웠고, 상표는 ‘설우’를 영어로 직역한 스노우프렌드(snow friend)로 하기에 이른 것이다.


▲ 스노우프렌드의 웰딩방식 방수재킷. 바지처럼 재킷도 등산에 필요없는 부분은 최대한 배제, 기능성을 특히 강조한다.

허정식씨(53ㆍ은벽산악회)는 81년 유럽 드류 서벽을 한국 초등한 산악인이다. 그는 70~80년대 당시 김 사장의 등산복에 대한 아이디어 개발속도가 알피니즘의 본고장인 유럽의 업체들과 비슷해서 여러 번 놀랐다며 이렇게 돌이킨다.


“70년대 중반 질긴 범포(帆布ㆍ돛천)로 만든 스노우프렌드 재킷은 나일론 테이프를 어깨에서 가슴 앞까지 두른 다음 카라비나를 걸거나 손으로 잡을 수도 있게 고리를 지었고, 로프로 S자 하강할 때 닳지 않도록 어깨에 가죽을 댔으며 로프에 목 피부가 쓸리지 않도록 깃을 세울 수 있게 고안했죠. 바위꾼들한테 그 재킷이 인기였는데, 그 얼마 후 유럽의 유명한 등산의류업체에서 거의 흡사한 모양으로 재킷이 나오더라구요.”


한 번은 유럽의 유명 등산복 브랜드 아이더에서 어떻게 알고 재킷 하청생산을 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김 사장은 말한다.

처음 입었을 때 허벅지에 착 붙게 만드는 이유
 

스노우프렌드 바지는 처음 입을 때는 허벅지에 착 달라붙어 좀 불편하다. 그렇게 만든 이유를 창업자 김세경 사장은 이렇게 밝힌다.


“요즈음 원단 신축성이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떤 원단으로 만든 옷이든 사람이 입는 동안 늘어날 곳은 늘어나고 세탁하면 다시 줄었다가 다시 늘어나기를 반복하면서 비로소 그 사람에게 잘 맞는 편한 옷이 되는 겁니다. 처음부터 헐렁해서 편한 바지는 나중에 외려 불편해져요. 사람들이 그걸 잘 모릅니다.”


최초 착용 때의 불편감 때문에 스노우프렌드 제품, 특히 바지는 고객층을 크게 늘이지 못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지금도 바지의 이 불편함 아닌 불편함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현재 실제 영업의 대부분을 맡고 있는 김 사장의 아들 김지훈 이사(36) 역시 이 점에선 아버지와 거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김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웃도어 의류시장은 과거엔 피라미드형이었으나 지금은 호리병형입니다. 다시 말해 고급 브랜드와 저가 브랜드 시장이 크고, 우리 스노우프렌드가 위치한 중간 브랜드 시장은 상대적으로 좁아져 있다는 뜻이죠. 저희는 자본 규모상 대형 업체들과 브랜드 경쟁할 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가시장으로 뛰어들 수도 없습니다. 결국 돌파구는 특수한 소비계층을 확보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제품 선택에서 세심하고, 그런 만큼 지속적인 고객이 될 수 있는 분들에게 초점을 맞출 작정입니다.”


▲ 충신동 본사 매장에 직원들과 함께 선 김세경 사장. 스노우프렌드는 올해부터 6천만~7천만 원에 개설 가능한 소형 점포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전문 꾼들을 위한 기능복 위주로 제품을 낸다.

요즈음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암릉종주파들이 스노우프렌드가 주목하고 있는 고객층의 한 부류다. 파이브텐 창을 댄 등반화를 이들이 애용하며 꾼의 상징으로서 부각시켰듯, 이 사람들이 활동 편의성을 최대한 살린 스노우프렌드의 주고객층이 될 경우 결국 한국 등산복 명장으로서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으리란 기대인 것이다.


상의류에서도 스노우프렌드는 몸에 딱 맞는 스타일을 지금껏 고수하고 있다. 김 사장은 밝히는 이유는 역시 등반시의 편의성이다.


“박스형은 배낭을 메고 갈 때 많이 걸리적거리죠. 나뭇가지에 걸리는 일도 잦구요. 그래서 최대한 몸에 착 붙는 스타일로 만드는 겁니다.”


97년도에 처음 서플렉스 재킷을 낸 뒤 암벽 암릉 전문꾼들에게 필드 테스트를 의뢰, 무려 50여 회 수정을 거듭했다. 지금 내는 스노우프렌드 재킷에는 물론 그 무수한 테스트의 결과들이 적용돼 있다고 김 사장은 말한다.


활동성을 가장 중시하는 신념으로 김 사장은 특히 바지에 신경을 기울여 작년 가을엔 봉제 대신 열융합 접착식(welding)으로 만든 무봉제 바지를 냈다.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97%를 무봉제로 바지를 만들기는 국내가 아니라 세계에서 최초일 것”이라고 김 이사는 자랑한다. 그 후 여러 업체에서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 스노우프렌드는 한국 등산복 바지의 진화를 이끌어왔다고 김 이사는 자부한다

“암릉꾼들 우리 옷에 특히 만족할 것”

한국의 등산복 패션은 초창기엔 긴 스타킹에 니커보커즈와 남방셔츠 차림인 유럽식을 거의 그대로 흉내냈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많아 툭 하면 걸리며 스타킹 양말의 올이 끊어지곤 하는 이른바 니커바지 차림은 불편한 것으로 드러나며 긴 바지들을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긴바지는 바짓가랑이가 걸리는 것이 또한 단점이었다. 때문에 김사장은 바짓가랑이를 좁게 했다. 그 후 바짓가랑이가 좁은 긴 바지는 한국 등산용 바지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스노우프렌드 리버럴(Liberal) 바지는 암벽등반시 편의성을 강조한 바지의 한 예다. 대개의 바지는 암벽등반을 위해 안전벨트를 차면 특히 앞주머니 사용이 극히 어려워진다. 이를 감안해 리버럴 팬츠는 넓적다리 바깥쪽 부위에 접착식으로 주머니 하나를 더 만들어 붙였다. 이 바지는 암벽ㆍ암릉꾼들 사이에 큰 인기다.


미래에 대해 스노우프렌드는 자신 있다. 그것은 김세경 사장이 한국 등산복의 명장이라 해도 좋을 만큼 여러 등산의류의 소재, 스타일,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한국인의 체형에 정통해 있기 때문이다.


75년 창업 이래 9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스노우프렌드는 맞춤복 방식이었다. 가슴, 허리, 엉덩이, 허벅지 둘레가 제각각인 무수한 사람의 등산복을 주문 제작해주며 어떤 스타일의 옷이 등산에 가장 적합한지를 훤히 꿰게 된 것이다. 이 무형의 자산을 잘 살려 적용시킬 경우 엄청난 무기가 될 것이라는 아들 김 이사의 확신이기도 하다.


▲ 스노우프렌드 디자인실. 대리점제를 시작하며 특히 바빠진 부서다.
스노우프렌드는 올부터 비로소 대리점제를 시작했다. 총 비용 6천만~7천만 원 정도면 개설 가능한 10평 정도의 소형 점포 위주로 열고 있다. 현재 남한산성점, 방학점, 구미점, 속초점, 의정부 호원점 등 5개 점포를 열었는데, 반응이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대리점제와 더불어 제품을 특성별로 다양하게 내고 있기도 하다. 바지의 경우 익스트림용, 워킹용, 그리고 베이직 스타일로 구분, 한 시즌에 12~15스타일에서 30스타일 정도로 늘여가고 있다.
▲ 이사를 맡고 있는 장남 김지훈씨와 함께 선 김세경 사장. 그가 입고 있는 재킷은 30년 전 범포로 만든 클라이밍 재킷으로, 여러 바위꾼들에게 사랑받았던 옷이다. 김 사장 자신도 오랫동안 이 옷을 그의 트레이드마크 삼아 입고 다녔다.

군 제대 직후부터 아버지를 도와 일하기 시작, 어느덧 14년의 경험을 쌓은 김지훈 이사는 이렇게 미래를 밝힌다.


“저희 스노우프렌드가 움직여야 할 시장은 역시 기능성이 가장 중요시되는 분야라는 결론이 내려지더군요. 그래서 대량화, 규격화해가는 기존 시장에 역행하기로 했습니다. 90년대 말 이후 중지했던 맞춤형 옷으로 다시 가자는 거지요. 소득이 높아지면서 자기만의 옷을 원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어요. 그래서 체형을 측정해 그간 축적해둔 수많은 신체 스타일을 정형화해서는 그중 가장 적합한 유형에 맞추어 제작해 드리는 거죠. 등산용 의류 원단이 이제는 수천 가지나 되므로, 고객 성향에 따라 골라드릴 수도 있구요. 이런 방식의 주문 제작은 우리 스노우프렌드만이 가능할 겁니다. 대리점이 좀 더 늘어난 다음 이 방식으로 적극 나아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