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6일 밤 10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이탈리아 북동부 돌로미테(Dolomiti, 영어는 Dolomite, 독일어는 Dolomiten)산군의 험준한 지역을 벗어난 소도시 볼자노(Bolzano)다. 숙소인 유스호스텔에 들어서니 한낮의 뜨거운 태양으로 달궈진 대지의 열기가 한국의 무더운 여름밤 못지않게 화끈거린다. 에어컨도 없는 찜통 같은 곳에서 나흘 밤을 묵을 생각을 하니 벌써 걱정이 앞선다. 시원하게 샤워를 한 후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혀놓고 팬티 하나만 걸친 채 잠자리에 들었다.
낙석 위협에 한 동작 한 동작 신중하게 움직여
17일. 아침 날씨는 어젯밤 열기와는 달리 맑고 상쾌하다. 숙소 식당에서 나오는 빵과 버터, 시리얼과 우유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등반장비를 챙겨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등반대상지 셀라타워(Sella Tower)로 향했다.
- ▲ 칭코토리를 등반 중인 필자. 광개토대왕비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것 같은 거벽으로 높이 100m가 훨씬 넘는 엄청난 크기였다. (왼쪽) / 치마그란데 북벽 오버행을 넘어서는 필자. (오른쪽)
-
미니버스로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산골마을로 들어서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에 가슴이 마구 뛰었고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프랑스 샤모니의 침봉들, 스위스 그린델발트의 융프라우와 체르마트의 마터호른 등과는 또 다른 알프스 분위기를 풍기는 너무도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풍광에 우리 일행 모두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치 남해안 작은 섬의 어린이들이 서울구경 나들이 올라온 모습들과 비슷하다고 할까? 나의 마음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면서 잠시 눈시울이 젖는다. 오늘 이렇게 올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지만, 이제야 오게 된 것이 아쉽고 서럽기도 했다.
차를 몰아 셀라타워가 있는 고갯마루 ‘Passo Sella 2,240m’ 도로 표지판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고갯마루 갓길에 주차를 하려니 관광객들이 세워둔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너무 많았고, 자전거 타는 사람과 배낭 메고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주말 등산로 입구처럼 북적거린다.
날씨도 맑고 좋아 멀리 보이는 바위벽 여기저기에는 등반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바위에 빨리 붙어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배낭을 메고 능선 위에 우뚝 서 있는 셀라타워 밑으로 숨 가쁘게 올라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처음 접해 보는 돌로미테의 석회암 표면은 제멋대로 갈라지고 깨져 있어 온통 건드리면 낙석이 될 것같이 불안해 보인다. 바위로 이동하는 경사진 통로에서는 발 밑의 돌들도 밟으면 와르르 무너져서 균형 유지가 쉽지 않다. 바위의 특성이 생소해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별로 친근감도 없고 높이도 수직으로 까마득해 보이니 마음이 조금은 심란하다.
마땅한 등반코스를 찾으려 살피면서 이동하는데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작은 낙석들이 총알처럼 지나간다. 서둘러 벽에서 멀리 떨어져 이동하는데 이번엔 쓸 만한 록해머 하나가 툭 떨어졌다.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니 어디서 누가 떨어뜨렸는지도 모르겠고 위에서는 아무 소리도 없다. 어느 대원이 떨어진 해머를 주워 첫날부터 좋은 소득이 생겼다며 좋아한다.
돌로미테 등반 안내서를 펼쳐보고 오늘 등반할 코스를 선택해 대원 7명이 두 팀으로 나눴다. 제1조 윤대표, 윤재학, 최원일, 이기범은 셀라2봉 북벽의 카스나코프(Kasnakoff) 루트(높이 250m, 9피치, VI+)를 오르고, 제2팀인 이용대, 조대행, 손용식은 셀라3봉 서벽의 비나트제르(Vinatzer) 루트(높이 300m, 12피치, V+)를 오르기로 했다.
- ▲ 1. 푼타프리다 동벽을 등반하는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70대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등반력을 과시하고 있다. 2. 치마그란데 북벽. 최원일 강사가 리딩하고 있다. 3. 하산 중 셀라2봉(오른쪽 끝)과 셀라3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했다. 왼쪽부터 조대행 박사, 이용대 교장, 필자 윤재학.
- 드디어 암벽등반에 입문한 지 30여 년 만에 돌로미테의 바위벽에 처음으로 발을 올려놓았다. 갈라지고 깨진 채 서로 맞물려 있는 바위들은 당기거나 밟으면 곧 무너져 버릴 것 같다. 불안한 마음에 손과 발 모두 조심스럽다. 바위벽에 걸쳐지는 57kg의 내 몸무게는 어차피 똑같을 터인데 그래도 살살하면 무게를 덜 받을 것 같은 마음에 동작 하나하나를 더욱 신중하게 한다.
어떤 것은 빠질 것 같은데도 잡아보면 든든하고 오히려 예상치 않았던 것이 낙석이 되는 바람에 놀라기도 한다. 갈라진 곳이 많으니 손쓰기 발쓰기도 좋아 고도와 각도에 비해 기술적인 난이도는 높지 않은 편이어서 등반 속도도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만 낙석이나 추락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컸는데 그 문제도 등반을 거듭하면서 대부분 서서히 해소되어갔다.
옆의 셀라3봉 비나트제르 루트를 오르는 우리 팀 세 명의 모습을 사진 찍어주려고 카메라를 꺼내 봤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사람이 작은 점으로 보여 별 의미가 없다.
오후 4시, 등반시작 4시간여 만에 정상에 올라 각자 준비해간 카메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하강 지점을 찾아 이동하면서 3봉을 등반하는 우리 팀의 상황을 살펴보니 중단을 가로지르는 레지(ledge)까지 진출해 있었다.
3봉에 있는 팀에 신호를 보내 레지를 통해 2봉과 3봉 사이 쿨와르 쪽으로 하강하도록 연락하고 60m를 하강 후 두 팀이 만나 함께 하강했다. 하강이 끝날 무렵 숙소에 남았던 대원들(박승기, 신동우, 김성기, 서형찬, 이민호)이 올라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늘 250m짜리를 하나 등반해 보니 낙석과 추락에 대한 두려움 문제도 조금 해소된 것 같고 기분도 아주 좋아 내일도 멋있는 등반을 기대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18일.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다. 산악지역 기상이란 비가 내리다가 개일 수도 있음을 기대하면서 일단 나서기로 하고 어제 다녀온 셀라타워 쪽으로 차를 몰았다. 셀라 쪽 가까이 높은 봉우리가 보이는 산골마을로 들어서자 비가 오락가락한다.
이슬비 뿌리고 바람 부는 파소 셀라(Passo di Sella·2,244m) 고갯마루에는 어제 북적거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없어 오늘은 분위기가 황량하고 쓸쓸해 보인다. 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니 찬바람에 체감온도가 초겨울 날씨처럼 추워서 모두 차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이런 날씨엔 암벽등반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리의 이번 등반계획에 잡혀 있는 또 다른 등반대상지들을 둘러보기로 하고 파소 셀라 너머 산골마을 카나제이(Canazei)로 내려갔다.
돌로미테산군의 산골에는 우리나라 설악동관광단지 C지구보다 서너 배쯤 되는 규모의 마을들이 여기저기 곳곳에 있는데 여름휴가철이라서 그런지 어디를 가나 주민과 관광객들이 서울의 인사동거리 만큼이나 항상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담한 규모의 별장 같은 호텔들과 레스토랑, 기념품가게, 마트나 쇼핑센터, 등산장비점들도 규모가 상당히 크고 물건도 많았다. 쇼핑할 때 단 한 가지 불편한 점은 레스토랑 외의 모든 지역의 상점들은 거의 모두 하루에 6시간만(오전 9~12시, 오후 4~7시) 문을 연다는 점이다.
- 산골 마을의 역사는 또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마을 중심에 가장 높게 우뚝 솟아 있는 성당들은 하나같이 건축물 자체가 문화재처럼 백 년도 더 되어 보이는 고풍스런 모습들이고, 성당 앞의 넓은 광장은 공원처럼 아늑하게 꾸며놓아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편안히 쉬고 있는 모습이 부럽도록 보기 좋았다.
우리가 도착한 카나제이에서는 등산화 제조사 라스포르티바(Lasportiva)사가 후원하는 산악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고 이곳 작은 산골 마을에 모여든 인파는 남대문 시장 거리만큼이나 북적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등산장비점에 들러 필요한 개인장비. 현지 암벽코스 가이드북, 기념품 등을 구입하고 서둘러 암장을 찾아 떠났다.
대원 중 한때 해외여행사의 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신동우가 이번 등반여행에 가이드로 앞장 서서 지도를 가지고 길을 잘 찾아갔다. 지도를 보면서 어렵지 않게 우리가 찾는 목적지 바위 로젠가르텐(Rosen Garten)을 찾았다.
어마어마하게 높고 큰 바윗덩이 산을 보니 가히 위압적이어서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바위산 수직벽 높이가 600m라니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나’ 하면서도 ‘더 높은 요세미티도 올랐는데 돌로미테쯤이야’ 해보지만 바위 특성이 전혀 다르고 낙석도 많은 석회암 대암벽을 오를 생각에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는데 손용식이 위안을 하려는지 “에이 쉬워 보이네, 저쪽으로 이렇게 이렇게 올라가면 별거 아니겠는데, 그레이드도 낮아”라고 말한다. 여기에 와서 보니 돌로미테 암벽은 슬랩은 아예 없고 모든 바위의 경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직벽이다.
경사가 완만한 곳은 돌들이 얹혀 있거나 위에서 떨어진 자갈과 모래가 수북이 쌓여 있기 때문에 등반을 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 직벽은 비교적 깨끗하고 단단해 등반하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이 큰놈을 내일 해치우기로 다짐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3,000m급 암봉에 오르자 대원 몇 명 고소증으로 고생
19일, 하늘이 맑고 파랗다. 어제 하늘 높이 올려다보면서 다짐한 로젠가르텐봉(Rosen Garten Spitze·2,981m) 동벽을 향해 숙소를 나섰다. 대원은 이용대, 조대행, 윤대표, 윤재학, 최원일, 서형찬, 손용식, 이기범 이렇게 8명이다.
이곳 돌로미테는 세계적인 관광휴양지여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버스와 높은 골짜기의 산장까지도 셔틀버스로 연결이 잘 되어 있어 버스정류장이나 산장 등에는 노선별 운행시간표가 눈에 자주 띄었다. 로젠가르텐산군의 계곡은 허가받은 차량만 출입할 수 있으며 등산객들은 산 아랫마을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우리는 외국인이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미니버스를 몰고 버스종점까지 올라가 레스토랑 앞마당 한쪽에 차를 세워놓았다.
숙소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바위벽 밑에 도착하니 벌써 정오가 다 되었는데 우리는 등반 열의에 휩싸여 심각하게 시간을 계산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벽은 너무 높고 출발시간도 늦은 것 같아 이용대 교장과 조대행 박사는 밑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속도를 내기 위해 6명을 두 팀으로 나눴다. 윤대표, 최원일, 이기범이 한 팀이 되고, 나와 서형찬, 손용식이 한 팀이 되어 자일을 묶었다.
- ▲ 셀라2봉을 등반하는 이기범 강사. 고도감이 대단한 봉이었다.
- 등반속도를 빨리 하기 위해 선등자가 올라가면 세컨드가 올라가서 뒷줄을 고정하고 다시 선등자가 등반에 나서는 사이에 라스트는 슈퍼 베이직을 이용해 고정로프 따라 오르기 방식으로 올랐다. 이렇게 하면 한 사람 확보 보는 시간이 빠지므로 셋이서 등반을 하면서도 둘이서 등반하는 것처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반라인 600m 중 하단 절반은 거의 수직과 부분적 오버행으로 이루어졌고 상단은 경사가 조금 약해졌지만 많은 부분이 직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직벽이라 앞장을 선 최원일이 얼마 오르지 않아 벌써 오버행 크랙에서 “어휴, 야~ 펌핑 왔어”라고 소리친다. 곧 뽑힐 듯 생긴 홀드에 오버행이라니 머리가 찌릿하게 신경이 곤두서고 필요 이상의 힘이 얼마나 많이 들어갈지 소리만 들어도 상상이 간다.
등반자에 의해 낙석은 수시로 발생한다. 내 앞 팀에서 후등으로 올라가는 이기범이 수시로 “어! 낙석, 낙석~” 하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멀리 등산로를 내려다보니 아까는 눈으로 확인되던 이교장과 조박사가 다른 트레커들과 함께 섞여 까만 점으로만 보여 어디에 있는지 구분되지 않는다.
벽을 한참동안 열심히 올라 이제는 끝이 날 때도 되지 않았겠나 싶은데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다. 힘들고 배가 고파 우리 팀 셋이서 매달려 간식을 먹고 나니 앞 팀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바위가 너무 넓어 루트를 옆으로 조금만 비켜가도 서로 보이지 않는다. 혹시라도 등반코스가 너무 멀어져 버리면 정상에서 하강할 때 서로 떨어져 있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다 싶어 황급히 쫓아 올라 소리를 질러 위치를 확인해 본다.
열심히 오르니 급경사는 끝나고 능선을 따라 확보 없이 걸어 200m 정도 가니 커다란 십자가가 서 있는 정상이 보인다. 정상의 해발 표고가 3,000m 정도 되니 지친 몸으로는 그곳까지 다가서는데 숨이 가쁘다.
정상에 도착하니 오후 7시. 등반을 시작한 지 약 7시간 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아직도 해가 서편 능선에서 높이 있고 다행히 날씨도 계속 좋았다. 6명이 정상에 모여 코오롱등산학교 깃발을 들고 정상사진을 찍고 간식도 먹은 후 하산을 서둘렀다.
그런데 바위가 너무 크고 넓어 부서진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것 같은 넓은 정상에서 하강루트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벼랑 아래 산장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몇 개 보이기는 하지만 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사람이 지나간 희미한 흔적을 찾아 좌측 능선으로 오르내리며 뻗어 내려간 낮은 안부 쪽으로 계속 걸어 내려갔다. 희미한 자국은 가파른 벼랑 위에서 멎었고 발 앞에는 무너질 것같이 불안해 보이는 둥그런 암각에 낡은 슬링이 걸려 있다. 오후 9시가 다되어 해는 지고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기범이 벽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있다. 인천에서 떠나올 때 비행기 안에서 추워 감기가 걸렸는데 몸살기에 고소증세까지 겹쳐 정신을 못 차린다. 서형찬도 걸음이 뒤처져 재촉하니 고소증세인 것 같다며 두통을 호소한다. 벼랑을 내려서야 하는데 무사하길 바라며 힘을 내도록 다같이 위로해 주며 하강을 시작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슬링을 걸고 몇 차례 하강해 가장 낮은 안부까지 내려선 다음 헤드랜턴을 켜고 낮에 출발한 방향을 찾아 조심스럽게 클라이밍다운을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내려가고 있는 길은 원래의 하강루트는 아닌 듯했다. 우리 이전에 다른 팀들도 이쪽으로 하산한 듯 희미한 흔적들이 보였지만 아마 그 팀들도 우리처럼 더 좋은 다른 길을 찾지 못해 이 길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30분 정도 서둘러 클라이밍다운을 하고 나니 편안하게 걸어도 되는 경사면까지 내려섰다. 여기서도 교장선생과 조박사가 기다리는 셔틀버스 종점까지는 빨리 걸어도 30분은 족히 걸릴 거리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넘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오늘 등반은 출발에서 제자리로 내려서기까지 12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레스토랑 주인의 신고로 구조대 출동
내 전화기는 자동으로 로밍되는 휴대폰이지만 아래서 기다리는 두 분의 휴대폰은 그렇지 않아서 연락할 수 없으니 기다리는 동안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았나 걱정이 태산이겠구나 생각이 든다. 한참을 걸어 종점에서 바욜레트(Vajolet) 산장으로 올라가는 큰 비탈길로 내려섰는데 밑에서 지프차 한 대가 힘겹게 올라온다.
- ▲ 로젠가르텐 슈피체 정상. 좌측부터 서형찬, 필자, 손용식, 이기범 강사, 윤대표 대표강사.
- 우리와 마주친 지프차에서 산악구조대원 복장의 한 사내가 내리더니 대뜸 “노 프라블럼(No problem)?” 한다. 몇 마디 대꾸하며 들어보니 밑에서 기다리는 두 사람이 같은 팀이냐고 묻는 것 같아 “예스(Yes)” 했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날은 저물고 다른 등산객들은 모두 하산했는데 우리가 밤늦도록 내려오지 않아 두 분이 레스토랑에서 걱정하고 있으니까 레스토랑 주인이 친절하게 아랫마을 구조대에 신고해 구조대원 3명이 올라온 것이다.
구조대는 우리에게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등반자 6명에게 이름, 생년월일, 국적, 주소, 전화번호를 쓰게 한 후 잘 지내다 가라며 미소 지으면서 친절하게 인사를 남기고 내려갔다. 두 분이 안절부절하고 있는 사이 또다른 레스토랑 주인은 우리가 음식도 안 팔아주고 주차만 해서 화가 났는지 아랫마을 경찰서에 신고해 불법주차 딱지를 하나 떼는 바람에 귀국하는 날 뮌헨공항 렌터카 회사에 38유로를 내야 했다.
오늘은 큰 등반을 성공적으로 잘 해냈지만 시간 계획을 신중히 하지 않아 하산이 늦어진 것은 반성해 볼 문제였다. 밑에서 기다리던 이교장과 조박사는 속이 까맣게 타고 많이 상했지만 등반을 마친 우리는 아주 기분 좋은 하루였다. <계속>
[ 돌로미테 개관 ]
암벽등반의 파라다이스
이탈리아 동북부 산악지대 티롤 지방은 더그 스코트의 <Big Wall Climbing>에도 소개된 거벽등반 대상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한국 산악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다.
돌로미테산군은 알프스산맥 중 동부 알프스에 속하는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를 말한다. 5,500㎢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과 석회암과 백운암층으로 이루어진 수직의 암벽들은 등반대상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는 등반성이 높은 거대한 산군을 형성하고 있다. 돌로미테산군은 볼자노를 중심으로 한 서부 돌로미테와 코르티나(Cortina)를 중심으로 한 동부 돌로미테로 구분하며, 1918년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령으로 귀속되었다. 현재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돌로미테산군을 암벽등반 대상지로 구분할 때는 보통 10개 그룹으로 분류한다. 셀라(Sella), 로젠가르텐(Rosengarten), 마르몰라다(Marmolada), 토파나(Tofana), 크리스탈로(Cristallo), 드라이지넨(Dreizinnen), 보스코네로(Bosconero), 치베타(Civeta), 파라(Pala), 브렌타(Brenta) 그룹 등으로 나눈다. 이곳의 토박이 바위꾼이라 해도 평생 이곳의 수많은 암봉을 모두 오르기는 어려울 정도다.
돌로미테는 19세기 후반부터 암벽등반이 시작된 역사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다. 돌로미테에서의 등반 활동은 알피니즘 초기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 기술적인 등반을 이끈 사람은 1880년대에 단독 등반가로 명성을 떨친 게오르 빈클러이다. 그는 1887년 돌로미테의 바욜레트 타워를 단독 초등했으며, 1888년 바이스호른을 향했으나 소식이 끊겼고 68년이 지난 뒤에 바이스호른 빙하 하류의 얼음 속에서 19세 소년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인공등반기술을 창안한 에밀리 코미치와 이탈리아 산악계의 간판스타 리카르도 캐신, 8,000m 14봉을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 등이 이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산악인들이다. 이처럼 걸출한 알피니스트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돌로미테라는 장대한 암벽 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이 지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탈리아로 영토가 귀속된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격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아직도 암벽 곳곳에 전쟁 중에 참호로 이용한 동굴들이 남아 격전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도비아코에 있는 유스호스텔 산악박물관에 가면 당시의 산악전투 상황을 재현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전투시 암벽의 이동수단으로 만든 비아페라타는 대중들이 즐기는 인기 있는 시설물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지역은 드라이지넨 주변이다.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원정대 12명은 이들 10개 그룹 중에서 셀라, 로젠가르텐, 토파나, 드라이지넨 4개 그룹을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집중적으로 등반했다. 세컨드 셀라타워(2,597m) 북면의 메스너 루트(VI)와 북서면 아레트의 카스나코프 루트(VI+), 서드 셀라타워(2,688m) 서면의 비나트제르 루트(V+)를 올랐고, 로젠가르텐 슈피체(2,981m) 중앙벽의 스테거 루트(VI- 오버행의 수직벽 600m), 칭코토리 3개 루트, 폰티 셀러 4개 루트, 치마그란데(2,998m)의 코미치 루트(VII / 6b+)와 ISO 2000(VIII/7a+) 루트, 치마오베스트(2,973m)의 캐신(VIII/7a) 루트, 치마피콜라(2,857m)의 겔베마우어(VIII+/7a+) 루트, 예티 루트(VIII+/7a), 델베치오 루트(VI), 옐로 옛지(VI) 루트와 푼타 프리다(2,792m)의 오스트반트 루트(V+)와 폰티셀러의 클라이밍 파크 등을 올랐다.
'등산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캐나다로키 롭슨·요호·재스퍼 지역 | 요호국립공원 아이스라인 트레일] 빙하의 뿌리 따라 걷는 에드워드 윔퍼의 역작 (0) | 2010.09.10 |
|---|---|
| [배낭 in&out] 69 신발끈에 열받지 말자 (0) | 2010.09.10 |
| [비박산행 ABC] 사전 계획과 장비 준비에서부터 장소 설정 및 안락한 비박 요령 (0) | 2010.09.08 |
| 울릉도 & 독도 (0) | 2010.09.06 |
| [브랜드] 블랙다이아몬드 (0) | 2010.09.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