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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다이아몬드가 취나드의 그늘에서 벗어났습니다.” 박영일 블랙다이아몬드 대표는 브랜드 역사에 대해 묻자 대뜸 그렇게 답했다. 블랙다이아몬드를 이본 취나드의 암벽장비회사로 기억하는 중년의 바위꾼들이 많아서다. 브랜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본 취나드의 손에서 시작된다. 그는 1963년 주한미군으로 근무할 때 선우중옥·이강오씨와 함께 인수봉 취나드길을 개척했으며, 요세미티 엘캐피탄의 노스아메리카월과 뮤어월, 남미의 피츠로이 남서벽을 초등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뛰어난 등반가다.
등반 실력 외에도 그는 ‘장비 제작의 마술사’라 불릴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났고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결국 ‘취나드 이퀴프먼트’란 이름의 장비회사로 지금의 블랙다이아몬드가 태어났다. 디자인과 기능이 단순할수록 고장이 없고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취나드는 가벼우면서도 튼튼하며 고기능성에 디자인을 겸비한 카라비너를 선보이며 1960년대 장비 개발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 ▲ 블랙다이아몬드코리아 임직원들. 왼쪽부터 김희영씨, 하종명 주임, 박영일 대표, 김인환 대리. 네 명이 전부이지만 소수정예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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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는 세계 최초로 수직 빙벽등반에서 가장 테크니컬한 고정형 크램폰을 개발했고, 이듬해에는 아이스바일에 커브형 피크를 접목시키는 등 신개념의 등반장비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끊임없는 도약을 해왔다. 1972년에는 친환경 경영관을 내세우며 확보물의 하나인 헥센트릭, 스토퍼 등의 너트류를 개발해 클린 클라이밍이라는 등반 개념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1980년대 초에는 텔레마크스키 생산에 나서 당시 부러지기 쉬웠던 바인딩을 보완코자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해 XCD 바인딩을 만들었으며 오늘날까지 텔레마크스키의 발전을 선도했다. 이후 1989년 ‘취나드 이퀴프먼트’에서 ‘블랙다이아몬드’로 회사명이 바뀌었다. 단순히 상호만 바꾼 것이 아니라 취나드가 직원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었다.
이후 취나드는 친환경 의류인 파타고니아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이윤이 적고 생명을 담보로 하기에 제작이 까다로운 금속장비사업을 버렸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가 개발한 장비들이 등반을 앞당기는 데 공헌한 것은 분명하다.
- ▲ 블랙다이아몬드의 암빙벽 장비. 이본 취나드의 단순하고 강한 제품을 컨셉트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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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바뀌었어도 블랙다이아몬드는 변화와 혁신을 거듭해 현재 미국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유럽과 중국에 현지 법인을 세워 세계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전개는 (주)블랙다이아몬드코리아에서 맡고 있다. 2006년부터 박영일(51) 대표가 이끌어오고 있다. 박 대표와 김인환 대리 2명이 처음 시작해 지금은 하종명 주임과 김희영씨 이렇게 총 4명의 직원이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 블랙다이아몬드의 성장 속도에 대해 미국 본사에서도 놀랄 정도라고 한다. 네 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소규모 회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브랜드 홍수 시대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매년 5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내실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수정예이기에 마케팅과 영업 구분 없이 모두 겸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으로 아시아에선 현재 일본 다음으로 매출이 높다.
일본에서는 스키 매출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 시장에서 블랙다이아몬드의 스키 제품이 인정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텔레마크스키 제품만 일부분 수입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한국 스키시장은 렌털 개념이고 블랙다이아몬드 스키 장비가 고급이라 렌털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
- ▲ 국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알파인 텐트. 초경량이라는 강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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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머들에게 블랙다이아몬드는 하드웨어 전문등반장비 브랜드로 이미지가 굳어 있지만, 실제 매출 면에서는 일반 등산장비의 비중이 높다. 특히 스틱과 텐트가 효자상품이다. 스틱은 플릭락시스템을 도입해 돌려서 높이를 조절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원터치 방식으로 튼튼하게 설계했다. 박 대표의 말에 따르면 돌려서 높이를 조정하는 스틱은 오래 사용하면 헛도는 경우가 많아 불편하기 때문에 플릭락 방식이 대안이라고 한다. 특히 블랙다이아몬드는 1980년대부터 스키 스톡을 만들어온 노하우가 있어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자랑한다.
텐트 역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유명 텐트 제조업체인 비블러社를 인수합병하면서 그 기술력을 흡수해 제품 성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인용 텐트가 1.18kg에 불과할 정도로 가볍고 플라이 없이 발수·방풍 기능을 갖춘 홑겹 텐트를 선보여 알파인 원정용으로 많이 쓰이며 하이커·오토캠퍼들로부터도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는 피츠로이와 엘도라도처럼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텐트도 있지만 물량이 부족할 정도로 잘나간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이런 인기 제품만 골라서 병행수입하는 업자들이다.
“우리는 광고하고 기반을 닦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들은 무책임한 면이 있어요. 병행수입이 합법이니 어쩔 수 없지만 아쉽긴 해요.”
- ▲ 스틱의 플릭락 시스템. / 퀵도르에 대해 설명하는 박영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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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본사 사장은 피트 매칼프로 취나드 이퀴프먼트 때부터 근무했었던 원년 멤버다. 그는 “자연의 섭리에 맞는 회사를 만들자”는 기치로 토털 브랜드를 지향한다. 즉 하드한 등반장비 브랜드에서 토털 등산 브랜드로 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블랙다이아몬드의 특징은 단순하고 강하다는 겁니다. 심플하면서도 괜찮은 제품·품질로 승부하는 거죠. 미국 본사에선 원하는 품질을 맞추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기술자를 수시로 영입합니다.”
토털 등산 브랜드를 지향하는 블랙다이아몬드가 전략적으로 내놓은 2010년 신제품이 바로 배낭이다. 블랙다이아몬드 배낭은 그동안 암빙벽등반에 맞게 절제되고 생략된 단순한 스타일이었지만 새로 출시된 배낭은 산행에 초점을 맞춰 출시되었다. 특히 에르고 액티브(ergo activ) 시스템을 적용해 힙 벨트와 배낭 연결 부위에 회전되는 볼 조인트 장치를 해 걸음걸이에 맞춰 힙 벨트가 좌우로 움직이게 했다. “특허를 받은 벨트 시스템은 자유롭게 움직여 하중을 분산시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등판에는 6mm의 알루미늄 프레임을 내장해 안정감을 주며 몸에 맞게 휘어진다.
“아무래도 암벽등반으로는 시장의 한계가 있습니다. 더 넓은 시장으로 나가기 위해 배낭을 대중화할 전략입니다.”
블랙다이아몬드는 현재 코오롱스포츠에 헤드랜턴을, 영원무역에 헤드랜턴과 스틱을 공급하고 있다. 굴지의 아웃도어업체들이 그동안 OEM 방식으로 생산하던 운행 장비를 자사 브랜드 명성에 걸맞은 타사 제품을 납품받아 판매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이러한 공급의 변화를 계기로 다양한 고객층 확보를 목표로 세우고 더욱 더 블랙다이아몬드 제품의 대중화 전략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 ▲ 블랙다이아몬드 미국 솔트레이크 본사와 임직원들. /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하드웨어 장비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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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일 대표는 계명대 산악부 출신으로 대구경북대학산악연맹 창립의 주역이다. 그는 빠른 성장의 비결을 단일 브랜드만 집중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근무 환경과 직원들의 노력이라고 얘기한다.
“둘이서 처음 시작할 때는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을 사무실로 썼어요. 에어콘이 없어 여름에 물건이 한번 들어오면 무척 힘들었어요. 그래도 시간 개념이 아닌 목적 중심으로 일하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제가 지방 영업을 해서 자리를 자주 비우는데도 직원들이 다 맡은 일을 알아서 하니까 참 고마워요. 우리는 한 팀이라고 생각하니까 힘든 거 즐거운 거 다 함께하고 싶어요.”
이들은 “노력한 결과 수익이 건전해지고 알차졌다”고 떳떳하게 말한다. “회사가 더 튼실하게 성장하면 알파인 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싶다”며 회사 대표가 아닌 산악인으로서의 희망사항도 덧붙인다. “소수정예이기에 매출에 비해 돈 나가는 곳이 적어 지금처럼 성장한다면 알차고 내실 있는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박영일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