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숭산 정상 연천봉과 봉황대, 이조암, 초조암까지 일직선으로 나란히 이어진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는 ‘중원을 지배하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中原者得天下)’는 명언을 남겼다. 대륙을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인 자의 실감나는 말이다. 그만큼 중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중원은 세계 4대문명 발상지이자 중국 문명의 발원지이며, 대륙의 교통 요충지이다. 유장하게 흐르는 황하를 곁에 두고 중국 최대 곡창지대인 화북평야가 있고, 중국 최대의 고도(古都)로 꼽히는 낙양(洛陽)과 정주를 거쳐 대륙 전체의 모든 교통이 지나간다.
그 중원에 중악 숭산(嵩山)이 우뚝 솟아 있다. 중악을 소개할 때 항상 언급되는 말이 ‘천지지중(天地之中)’이다. 하늘과 땅의 중심이자 중원이고, 대륙의 핵심지역이라는 말이다.
숭산 72개 봉우리는 소실산·태실산으로 나눠
왜 그곳에 중악(中岳)을 정했을까? 중국 지도를 보면서 조조의 말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된다. 조조뿐만 아니라 중국 속담에 ‘5,000년 역사를 보려면 낙양을 보고, 500년 역사를 보려면 북경을 보라’는 말이 있다. 북경 이전까지 중원의 핵심은 낙양이었다. 역대 중국 왕조 중 동주·동한·조위·서진·북위·수·당·수양·수당 등 무려 13개 왕조의 도읍지이자 200여 명의 황제가 머물렀던 곳이다. 명실상부 중국 최고의 고도다. 아마 중악으로 정해지기 전부터 이미 중국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었던 듯싶다. 오악이란 개념이 도입되면서 가장 핵심인 중악으로 정해지는 건 역사적으로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낙양엔 중악 숭산이 있고, 숭산 자락 아래 불교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가 수련한 소림사가 있고, 중국 4대 서원 중의 하나인 숭양서원이 있다. 사마광이 이곳에서 <자치통감>을 저술했다. 더욱이 중국 최초의 사찰인 서기 68년에 창건한 백마사(白馬寺)와 서기 71년 두 번째로 창건한 범왕사가 있다. 낙양과 숭산이 중국 불교의 성지이자 발상지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역사적, 전략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중국 3대 석굴인 용문석굴이 낙양 남쪽에 있다. 불교·도교·유교의 본산과 같이 다양한 종교·문화유적지가 혼재해 있다. 사람이 죽으면 간다는 북망산도 낙양 북쪽에 있다. 북망산에는 여러 왕조의 수많은 황제릉이 산재해 있다. 산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동묘지와 같은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묘군이다. 낙양이 중국 역사에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들이다. 이같은 유적들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또한 인류역사보다 오래되는 30억 년 동안 쌓인 다양한 퇴적층으로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 ▲ 봉황대에서 달마가 9년간 면벽참선한 달마동과 달마상이 희미하게 보이는 오유봉은 3개의 봉우리가 완만하게 누운 듯 솟아 있다.
숭산(嵩山)은 서쪽 소실산(少室山)과 동쪽 태실산(太室山)으로 나뉜다. 모두 72개 산봉우리를 지니고 있으며, 최고봉 연천봉(連天峰·1,512m)은 소실산에 있다. 태실산 최고봉은 준극봉(峻極峰·1,491m)이다. 따라서 숭산 최고봉은 소실산 연천봉이다. 또한 숭산에는 4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숭양서원(Songyang Academy)과 탑림(塔林·Pagoda Forest),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회선사(會善寺), 계모궐(啓母闕) 등이다.
숭산은 누운 능선… 오행 중 토체의 형상
태실산에는 정상 준극봉 아래 법왕사, 회선사, 12각 15층의 중국 최고(最古)의 탑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숭악사탑, 숭상서원, 계모궐, 중악묘, 태실궐 등의 유적지와 명소들이 있고, 소실산에는 정상 연천봉 아래 소실궐, 소림사, 탑림, 삼황채, 초조암, 이조암, 달마동 등이 있다. 무술로 유명한 소림사는 소실산 아래 무성한 숲 속에 있다고 해서 소림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탑림은 소림사 고승들의 묘지다. 당나라부터 현재까지 248개의 불탑은 전부 각각 다른 모양으로 ‘고대 탑예술의 지상박물관’으로 불린다.
청나라 위원(魏源)이 ‘中岳嵩山之峻(중악숭산지준·중악 숭산은 높고 가파르다)’이라 한 것도 태실산의 준극봉에서 유래했다. 중국 속담에 ‘嵩山如臥(숭산여와·숭산은 마치 누운 듯하다)’는 말은 숭산의 오행사상을 강조한 개념이다. 오행 중에 ‘토체(土體)의 형상’이라는 말이다.
북송의 유명한 문학가 범중엄(范中淹)은 “준극에 아니 오고 어찌 천하를 돌았다 할 수 있으랴!(不來峻極遊 何以小天下)”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숭산 서쪽 소실산에 오르기 위해 입구에 들어섰다. 산 능선이 반듯하게 일자로 누워 있다. 정말 희한한 모습이다. 가이드는 “부처님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이 모습이 토체의 형상이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는 “일(一)자로 누워 있는 산을 ‘테이블마운틴(Table Mountain)’이라고도 합니다. 옛날에는 이러한 지형에서 왕이 나올 형세라며, 그런 곳에 집터를 잡거나 묘를 쓰면 역모를 꾸미려 한다며 처형하기도 했습니다”고 운을 뗀다.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를 가리킨다. 이 중 토가 황색이며 정중앙에 있다. 그래서 중악이고 중원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중악과 오행, 그리고 황색이 전혀 상관없는 듯이 보이지만 밀접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 ▲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와 풍수학자 최원석 교수가 봉황대에서 일행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 이조암. 선종 2대조 혜가 스님과 제자들의 동상이 있다.
이조암(二祖庵)이 나온다. 초조 달마에 이어 선종의 2대조다. 달마가 인도 사람이라면 이조 혜가는 중국인으로 실질적 선종을 이끈 인물이다. 주변 봉우리는 온통 암벽일색이다. 하지만 이조암 부근만 토산이다. 거기에 이조암이 자리 잡고 있다. 달마의 첫 제자 혜가 스님 동상을 중앙에 봉안하고 양쪽으로 제자가 있다.
지금 소림사 스님들은 한 손으로 절을 한다. 그 전통이 혜가 스님으로부터 유래했다. 혜가 스님이 유불선을 통달하고 달마를 찾아가 제자가 되겠다고 하자, 달마는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지 않으면 제자로 삼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안 받겠다는 의미다. 이에 혜가는 자신의 한쪽 팔을 잘라 눈을 붉게 물들이며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고 한다. 소림사 스님들이 한 손으로 인사하는 이유는 바로 한쪽 팔이 없는 혜가 스님에서 비롯됐으며, 한쪽으로 붉은 천을 두른 복장 또한 달마가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가사를 벗어 잘린 팔을 감싸니 붉게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를 ‘혜가단비(慧可斷臂)’라고 하며, 지금까지 전한다.
초조암·이조암·정상 연천봉 일직선으로 놓여
이연걸이 ‘소림사’란 영화촬영을 한 이조암에서 조금 올라가면 혜가 스님이 연마했다고 전하는 연마대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봉황대가 잇달아 나온다. 연마대에서 숭산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 봉우리들의 지질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봉황대에서는 이조암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돌산으로 둘러싸인 유일한 토산이다. 즉, 양의 기운 한가운데 음의 기운이 차지하고 있다.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이다. 동행한 경상대 최원석 교수는 “동중정(動中靜)의 봉우리”라고 말한다. 이런 곳이 명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봉황대에서 이조암과 달마가 9년 동안 면벽수도 했던 초조암 달마동까지 거의 일직선에 가까울 정도로 스승 달마를 뒤에 두고 있다. 그리고 봉황대 바로 뒤로는 숭산 최고봉 연천봉이 있다. 절묘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동행한 모든 사람이 “이조암 자리는 누가 봐도 명당으로 보인다”며 입을 모은다.
- ▲ 숭산 봉황대 정상 안내판이 있는 봉우리에서 사람들이 숭산 전경을 둘러 보고 있다.
- ▲ 1 숭산 오유봉에 있는 달마상의 웅장한 모습. 2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참선을 한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그 자리에 전시해 두고 있다.
달마가 있는 봉우리는 3개의 봉우리 중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연천봉과 이조암, 초조암도 3개의 봉우리가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바로 그 옆에 삼황채(三皇寨) 봉우리가 있다. 글자 그대로는 3개의 황제의 울타리라는 의미지만 삼황채는 인왕·진왕·천왕을 말한다. 인왕은 중국 고대신화에서 여와신을 가리킨다. 달의 원륜을 머리에 이고 있으며, 인간을 창조한 신으로 묘사된다. 천왕은 복희신을 말하며, 태양을 머리에 이고 있다. 복희신과 짝을 이뤄 일월신의 하나로 기능을 한다. 진왕은 신농신을 말하며, 농업의 신이다. 삼황채에는 중국 고대신화를 암시하는 동시에 불교 선종의 계보와 숭산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봉우리와 암자들이다.
조 박사는 “중간에 한 번 솟아 기운이 뭉친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강한 기운을 한 번 풀어 주는 의미도 있다”며 “암석 기운이 하단전을 통해 들어오는 형국”이라고 설명한다. 더욱이 이조암 바로 앞에 양 옆으로 두 개의 우물이 있어 기운을 더욱 식혀 주고 있다.
최 교수도 “이 터는 한마디로 하면 외유내강형이다. 겉은 부드럽고 속은 단단한 지형”이라고 말한다. 오행에서 양-음-양으로 이어지는 ‘리괘’라고 설명한다. 한 참가자도 “변산반도의 월명암이 이런 터와 비슷하지 않냐”고 묻는다. 조 박사도 “맞다”고 맞장구친다. 조 박사는 “숭산의 요철(凹凸)을 봤다”며 감격해마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그 당시 풍수나 오행원리에 맞춰서 이조암 터를 잡았을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 잡은 게 후대에서 해설을 맞춰서 한 것일까? 최 교수는 “풍수란 텍스트가 5세기쯤부터 보이기 시작한다”며 “달마가 500년 전후 활동했으니 아마 그 당시에는 수 세기 동안 경험에 의해 쌓였던 원칙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여겨진다”고 말했다. 조 박사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 7대 古都·달마 면벽참선 소림사 등 세계문화유산 수두룩…
조용헌 박사·최원석 교수 해설 곁들여
- ▲ 달마상이 있는 숭산 오유봉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매일 수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다.
- ▲ 전형적인 토체의 형상을 보이는 숭산 능선의 모습. 토체는 오행으로 중간이며 황색이고, 숭산은 오악 중 또한 중악이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소림사를 가운데 두고 남쪽으로 이조암과 봉황대, 그리고 최고봉 연천봉, 북쪽으로 초조암과 달마동, 그리고 오유봉이 남북으로 일자로 연결된다. 이조암과 봉황대를 살핀 후 달마동과 초조암으로 향한다.
달마동으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다. 중국인들도 엄청난 인파가 올라가고 있다. 어린애를 안고 가는 사람까지 보인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달마동(達磨洞)으로 향할까? 달마가 인도에서 동쪽인 중국으로 온 까닭은 또한 뭘까?
달마의 면벽참선이 선종 창시로 이어져
달마는 인도에서 불교를 안정시킨 뒤 중국까지 확산시키러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조 시대 양 무제를 찾아가 그 뜻을 밝혔으나 실패했다고 전한다. 이후 달마는 숭산 소림사 위 동굴에서 9년간 면벽참선하며 선종을 창시했다.
조 박사는 “달마가 중국에서 때를 못 만나 면벽참선한 게 선종을 창시한 결정적 계기가 됐고, 결국 중국 불교를 제패했다”며 “아마 이러한 사실은 달마도 몰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교를 확산시키러 온 뜻이 좌절됐지만 더 큰 뜻을 이뤘다는 의미다.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달마동을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 소감을 밝혔다.
- ▲ 1 숭악사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12층 15각 숭악사탑의 모습. 뒤로는 숭산 능선이 완만하게 늘어서 있다. 2 조용헌 박사가 참가자들에게 숭산의 토체 형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3 세계문화유산이자 중국 4대 서원 중의 한 곳인 숭양서원에 4,500여년 된 측백나무 여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달마동은 깊이 7m, 너비 3m의 천연동굴로, 혼자 앉으면 꽉 찬 느낌을 준다. 그 정중앙에서 달마가 9년간 참선을 했다. 그 달마는 지금 없고 달마상이 천 수백 년 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달마동 위쪽 능선 오유봉 정상에는 높이 12m의 대형 달마상을 옥석으로 깎아 조각해 두고 있다. 인산인해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빈다. 달마동과 달마상 앞에서 사람들은 어김없이 향을 피워 인사를 올린다. 무슨 내용으로 기도할까? 달마가 그 기도의 내용을 들어 줄까? 달마도 기복신앙의 대상이 됐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소림사로 내려왔다.
소림사는 북위 효문제 때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495년 창건했다. 흔히 소림사 하면 달마를 떠올리지만 창건자는 따로 있다. 달마가 소림사에 머물면서 9년간 면벽참선한 후 신체가 많이 쇠약해지자 건강회복을 위한 신체수련에 들어간 운동이 바로 소림파 무술이다. 사실 소림 무술은 소림사를 세계적 사찰로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소림사에 있는 탑림은 수없이 흩어져 있는 탑들이 마치 숲을 이루고 있는 듯해서 붙여졌다. 탑은 대부분 7층으로 가장 높은 것은 15m 이상이며, 형태는 정방형, 장방형, 육각형, 원형, 원주형, 송곳형, 병모양, 나팔형 등 다양하다. 탑림의 탑의 형상과 구조는 매우 다양하고 명문 내용도 풍부해서 불교사 및 중국 고대 벽돌건축기법, 필법, 조각 연구에 매우 귀한 자료가 된다.
이틀간 일정으로 숭산의 소실산과 태실산을 둘러보고 드디어 중국 7대 고도 중의 하나인 낙양으로 출발이다. 낙양에 들어서자 고색창연한 고도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고층 빌딩만 들어서 있다. 곧바로 중국 3대 석굴 중의 하나인 용문석굴(龍門石窟)로 간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며, 중국 국가지정문화재다.
- ▲ 1 낙양으로 흘러가는 이수강 양쪽으로 용문산이 있고, 그 한쪽 자락에 용문석굴을 만들어 전형적인 진지나 요새 같은 느낌을 준다.
- ▲ 낙양 남쪽의 관문인 이수강가 용문산 한켠에 동굴을 만들어 부처님을 조각한 용문석굴의 모습이 기이하다.
용문석굴 앞으로 이수강이 유려히 흐르고 있다. 낙양은 남북으로 이수강이, 동서로 낙수강이 흘러, 황하로 합류하기 전에 합수한다. 중국은 전체적으로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이며, 낙양도 마찬가지다.
낙양의 지형은 이름부터 분석하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풍수에서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을 보통 양(陽)으로 본다. 한양도 그래서 붙은 이름이다. 낙양도 남쪽에 강이 있는 사실을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강이 바로 앞에 흐르는 이수강이다. 북쪽에는 산은 없고 이름만 북망산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망자의 산, 바로 그 산이다. 산은 없지만 지대는 상당히 높은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황제들의 고묘군인 북망산이 자리 잡고 있다.
두 강은 낙양을 관통해 정주를 지나 동중국해로 빠지기 전에 황하로 합류한다. 낙양의 남쪽은 이수강이 일종의 관문격이다. 그 관문에 용문석굴이 있다. 풍수적으로는 도시로 물이 흘러들어오면 재물이 들어온다고 본다. 명당이라는 의미다. 낙양이 명당이고 길지다. 왜 이곳에 용문석굴을 축조했을까?
조 박사는 “무형의 힘을 빌어 외적을 진압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양쪽으로 산이 있어 “매우 양명한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낙양의 입지조건은 남쪽의 용문석굴과 북쪽의 망산이 핵심”이며 “여러 코드가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낙수강 북쪽에 망산이 있다. 이 낙수강이 요단강이고 삼도천이라는 것이다. 요단강과 삼도천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이다. 속된 말로 ‘요단강을 건널 뻔했다’는 것은 죽을 뻔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 ▲ 중국에서 유일하게 여 황제였던 측천무후가 자신의 모습을 불상으로 만들었던 용문석굴 중에 가장 큰 불상이 아직 그대로 보존돼 있다.
- ▲ 소림사 고승들의 묘터인 탑림.
“용문이라 할 때 용은 낙양을 의미하며, 낙양의 문이기 때문에 용문이라 했을 겁니다. 또 산 그 자체가 용이기 때문에 용문산이라고 이름 붙였을 겁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의 용문산에 대해서도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은 군사적, 방어적, 정치적 의미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산악신앙에 네 가지 신수 중에 최고인 용산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부처님이라는 불교신앙까지 덧씌워져 최고의 진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외적이 들어오는 입구에 부처님이 눈을 부릅뜨고 호국불교, 진호불교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신라가 똑같이 도입했습니다. 바로 석굴암 불상이 동해와 왜구가 경주로 들어오는 길목인 대동천과 감은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동해에는 문무대왕릉이 지키고 있습니다. 문무대왕은 자기가 용으로 자처해서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고 했습니다. 동해에서 대동천으로 조금 들어오면 감은사가 나옵니다. 한국 석굴의 조형미와 공간적 배치는 중국의 용문석굴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한 단어로 말하면 ‘비보(秘補)’입니다. 공간적, 장소적, 상징적 의미를 더해 보완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간과 장소와 위치에 대한 중요한 사례를 용문석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답사입니다.”
낙양 북쪽엔 북망산, 남쪽은 용문석굴
최 교수의 말을 듣고 있던 조 박사가 “산과 부처와 용의 삼합체”라고 강조하며 덧붙였다. 정말 한국의 석굴암과 절묘한 유사성이 아닐 수 없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어 황제들의 능이 있는 북망산으로 이동했다. 북망산 고묘박물관에는 낙양 전도가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황제들이 죽어 낙양을 굽어 살피고, 남쪽 입구에는 부처와 산악신앙인 용의 힘을 빌어 외세를 진압하는 형태다. 절묘한 지형적 조건과 이 지형을 이용한 도시구조와 황제들의 묘터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마지막 날은 인근 운대산으로 향한다. 운대산도 중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힌다. 따로 소개하기로 한다. 돌아가는 내내 고도 낙양과 중악 숭산, 숭산과 낙양의 절묘한 조합과 중국 5,000년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다시 한 번 ‘5,000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낙양을 보고 500년 역사를 알려면 북경에 가라’는 말이 잔잔하게 떠오른다.
- ▲ 중국 오악 어디에나 있는 중악묘. 동악에는 동악묘가 있다.
낙양·숭산 정보
중악 숭산이나 낙양에 가기 위해서는 하남성의 성도(省都) 정주로 가야 한다. 하남성은 황하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거주인구 1억여 명으로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한다. 인천공항에서 하남성까지 직항으로 2시간40분가량 소요된다. 한국과 시차는 1시간. 한국이 빠르다. 정주공항에서 소림사까지 버스로 약 1시간30분 걸린다.
숭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대부분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숭산 입구에는 2개의 케이블카가 있다. 하나는 이연걸이 영화촬영을 했던 숭산 정상인 연천봉 바로 아래 이조암까지 연결돼 있고, 다른 하나는 산 중턱 마을인 삼황채로 향한다. 2015년 3월 현재 삼황채로 가는 케이블카는 공사 중이라 운행중단 상태다. 10월쯤 재개통 예정이라고 한다. 케이블카 비용은 1인당 50위안(한화 약 8,000원). 문의 중국 숭산국가풍경명승구 0371-6287-2138 소림사 0371-5519-2022.
2015년 3월 현재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과 검색하는 산 1위는 태산이다. 10위까지의 산은 이어 황산, 아미산, 화산, 장백산, 에베레스트, 형산, 숭산, 부사산(富士山), 알프스가 뒤를 이었다.
- 7대 古都·달마 면벽참선 소림사 등 세계문화유산 수두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