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정보

[브랜드] 캐신

김영인 2010. 4. 8. 07:51

 

세계적인 등반가 리카르도 캐신이 창업한 명품 장비
      1997년 캠프에서 인수 후 전문 브랜드로 확고한 위치 구축
이탈리아 산악인 리카르도 캐신(Riccardo Cassin·1909~2009년)만큼 세계 산악사에 많은 족적을 남긴 산악인은 드물 것이다. 캐신은 2500회에 이르는 많은 등반을 하는 사이 알프스를 대표하는 명봉인 피츠바딜레(Piz Badile·3,308m) 북동벽(1937년)과 그랑드조라스(Grandes Jorasses·4,208m) 북벽(1938년)을 초등하고, 1958년 가셔브룸4봉(7,925m)을 초등하는가 하면 1961년 52세로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 사우스 버트레스 루트를 초등했다. 이 루트는 초등자 캐신을 기리기 위해 ‘캐신리지’로 명명했다.

▲ 1987년 78세의 고령에 초등 50주년을 맞아 피츠바딜레 북동벽 재등반에 나선 리카르도 캐신.

1947년 암벽 등반용 피톤을 첫 작품으로 제작

▲ (위)고향인 이탈리아 레코 주변의 암벽을 등반하는 캐신. (아래)1940년대 후반 캐신이 개발해낸 장비를 생산해내던 캠프사 공장 내부.
1987년 78세의 고령으로 초등정 50주년을 기념해 나선 피츠바딜레 북동벽 재등반에서 10시간 만에 정상을 밟아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던 리카르도 캐신은 2009년 8월 6일 100세를 일기로 영면하기까지 세계 등반사뿐 아니라 장비 발전사에도 크게 기여했다.

누구도 오르지 못한 암벽을 오르는 사이 점점 더 좋은 장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 캐신은 1947년 고향인 레코(Lecco)에 작은 작업실을 만들어놓고 동료 클라이머들과 머리를 맞대고 다음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만들었다. 그 첫 작품이 1947년 제조된 암벽용 피톤이었고, 두 번째가 1948년 제조한 암벽용 해머, 세 번째가 1949년 생산한 아이스바일이며, 1950년에는 철제 카라비너 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당시 제품 개발에 대한 조언자는 이탈리아 발사시나의 작은 마을인 프레메나(Premena)에서 등반장비 생산업체인 캠프(Camp)를 2대째 운영하며 군인이나 등반가들에게 아이스바일을 공급하는 안토니오 코데가(Antonio Codega)였다.

그러나 캐신은 생산 체계가 어느 정도 자리잡히기 시작해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시기였던 1950년 캠프그룹에서 독립해 ‘캐신’이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1952년 볼트하켄을 만들어 직접 드루 서벽을 등반했고, 1950년대 후반 안전벨트를 개발해낸 데 이어 1970년대 초에는 무거운 주물형 대신 가벼운 티타늄 소재의 크램폰을 고안해냈다.

1980년대 초 캐신은 레코에서 발마드레라(Valmadrera)로 본사를 옮긴 뒤 더욱 개선된 제품 생산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첨단 소재가 등장하던 시절인 1986년 가벼우면서도 탄력이 좋은 카본 소재를 이용한 손잡이가 달린 아이스바일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리카르도 캐신은 가족 경영을 계속 해왔지만 치열한 경쟁과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캐신은 그의 나이 70을 넘어선 1980년대 후반 이후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오랜 세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던 캠프그룹에 합병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캠프그룹은 1997년 합병 이후에도 ‘캐신’만의 장점과 캐릭터는 그대로 살리고 있다. 무엇보다 2500회의 등반 기록을 지닌 전설적인 산악인 리카르도 캐신의 정신을 잇기 위해서다.


현존하는 크램폰 중 가장 가벼운 ‘나노 테크’

▲ 캐신 빙벽장비를 선보이는 김인호 사장.
지난해 캐신 제품 중 하드웨어의 국내 판매 라이선스를 인수한 호상사(www.hocorp.co.kr) 대표로서 1960년 중반 고교 시절 셀파산악회를 창립한 이후 요즘도 암빙벽등반을 하고 있는 김인호 사장은 캐신 제품이 국내에 선을 보인 것은 군용 카라비너를 사용하던 1970년대 초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D형 카라비너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암벽용 해머, 연철 하켄, 아이스스크루 등이 선을 보였습니다. 당시 군용 로프와 군화, 군용 스테인리스스틸 D형 카라비너 등 초기의 투박한 암벽장비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던지라 캐신 제품은 첨단 장비나 다름없었습니다.”

김인호 사장은 “캠프에 비해 캐신은 기술적인 면이 강조된 하드웨어 브랜드”라며 “결국 캠프는 캐신을 인수함으로써 캠프 제품의 이미지 제고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역사가 120년에 이르는 캠프가 고전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면을 중시하는 제품이라면 1950년 세계적인 등반가가 창업한 캐신은 테크니컬한 면이 강조된 제품입니다. 특히 볼더링과 인공 거벽등반 장비 생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액세서리도 주력 품목 중 하나입니다.”

김 사장의 말대로 캐신은 쇠를 소재로 한 암빙벽 장비뿐 아니라 패드와 초크백 같은 볼더링용 제품 생산에도 힘을 쏟고 있다. 패드는 추락시 충격을 받아내면서도 이동성이 좋은 제품이고, 초크백은 용도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생산하고 있다.

“패드는 추락시 충격을 잘 받아낼 수 있도록 탄력이 좋으면서도 멜빵이 달려 있어 이동성이 뛰어납니다. 벨트와 기어 슬링의 경우 안전성을 고려해 이탈리아 자사에서 생산관리하고 있습니다.”

▲ (좌)1970년대 초 국내에 선보인 캐신 장비들. <사진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 (우)캐신이 직접 개발하고 사용한 암빙벽 장비들.

하프문(halfmoon)과 같은 확보용 암벽장비 외에도 캐신이 생산하는 인공등반 장비는 다양하면서도 기능을 강조한 제품들이다. 좁은 크랙에 구겨넣듯이 집어넣는 확보장비인 헤드(head)는 일자형과 서클(circle)형 등으로 형태는 여느 브랜드 제품과 비슷하지만 강도 높은 와이어에 코퍼(copper·구리)나 알루미늄(aluminium)을 2개씩 감아놓아 보다 넓은 부위에 설치할 수 있고 그만큼 안전성이 높다.

캡틴 훅(captain hook)은 갈고리의 각도와 크기에 따라 세 종류다. 그 중 가장 작은 훅은 벽에 구멍을 낸 다음 걸 수 있을 정도로 갈고리 끝이 좁다. 이 밖에 좁은 실크랙에서 사용하는 러프(rurp), 좁은 수직 크랙에 설치가 용이한 아이언 훅(iron hook), 리벳과 볼트에 걸 수 있도록 구부려놓은 형태의 케이블인 리벳 행어(rivet hanger)도 생산한다.

동계장비인 아이스바일과 크램폰 역시 캐신으로선 빼놓을 수 없는 첨단 장비다. T자형의 고전적 피켈로 시작한 캐신 바일 가운데 최신형인 엑스 드라이(X-Dry) 모델은 등반경기용으로 피크의 각도가 휘두르기보다 거는 데 용이하도록 크게 휘어져 있고 헤드 위쪽에도 톱니가 형성돼 있어 바일을 거꾸로 잡은 상태에서 피크를 언더 크랙에 걸 듯 해도 잘 빠지지 않는다. 반면 엑스아이스(X-Ice)는 가벼우면서도 잘 박히는 스타일로 전형적인 빙벽등반용이다.

“크램폰도 마찬가집니다. 모노 포인트 스타일인 CC 크램폰이 경기등반과 드라이툴링에 적합하다면, 혼합등반용에 적합한 C14 크램폰은 풋홀드에서 최대한의 정교함을 발휘하기 위해 각을 더욱 살렸습니다.”

▲ (좌)제작연도와 총생산수, 시리얼 넘버가 새겨진 나노테크 크램폰. (우)스프링식 손잡이가 달린 터보 스트림 아이스 스크루.
마케팅을 담당하는 조기성 차장은 “나노 테크 크램폰은 얼음을 관통하는 강도는 높이고 무게는 줄인 샌드빅 난플렉스(Sandvik Nanflex) 스틸 합금 소재로서 현존하는 크램폰 중 가장 가벼운 제품인데도 빙벽등반뿐 아니라 혼합등반과 익스트림 빙벽등반에서도 유용한 제품”이라며 “사용 후 습기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녹이 스는 아이젠의 문제점을 제거했고, 제품의 안전관리를 위해 크램폰 옆면에 연도별 총생산량과 시리얼 넘버를 새겨놓았다”고 덧붙였다. 나노테크 합금 소재는 카라비너에도 사용되고 있다.

아이스스크루도 아이디어 상품으로 변신하고 있다. 터보 스트림(Turbo Stream)은 손잡이를 스프링에 연결해 돌릴 때는 홀에서 잡아 빼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홀 안으로 들어가 휴대가 간편하다. 라디온(Radion)은 웨빙이 연결돼 있어 카라비너 하나만으로 확보가 가능해 간편하고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제품이다.


인공등반 장비 시장도 점차 넓어질 것으로 예상

김인호 사장은 캐신 제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우리 등반의 흐름이 볼더링이나 거벽등반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인수봉이나 선인봉에만 몰려들었지만 요즘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클라이밍의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볼더링뿐만 아니라 거벽 등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거죠. 특히 스포츠클라이밍은 헬스 개념의 생활체육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 5년 전만 해도 인공암벽에 가려면 1시간 이상 걸렸지만 요즘은 개인뿐 아니라 지자체나 업체에서 운영하는 실내암장이 많아지면서 짧은 시간에 암장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볍게 실내암장을 찾았을 때 필요한 장비는 신발과 초크백 정도일 것이고, 산중 볼더를 찾을 때는 패드 하나가 추가될 겁니다. 그런 용도에 맞는 장비는 캐신 제품이 적격일 겁니다.”

김인호 사장은 “거벽 등반에 필요한 인공등반 장비 시장도 점차 넓어지리라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 (좌)코퍼 헤드와 알루미늄 헤드 등 캐신의 빅월장비들. (우)캐신의 각종 암빙벽 장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