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노래 ‘설악가’의 작사, 작곡 배경은?
Q등산경력 4년차의 25세 청년입니다. 설악산은 제게 많은 추억을 남긴 산입니다. 설악산에 다니면서부터 ‘설악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쉬운 멜로디와 가슴을 적시는 가사 때문에 애창하고 있습니다. 설악가 탄생 배경의 숨은 이야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이세현
A‘설악가’를 작사·작곡한 사람은 중동고 산악부를 거쳐 고령산악회에서 활동한 이정훈(1949년생)씨로 치과의사가 본업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산노래를 부르며 산노래의 중흥기를 이끈 우리나라 산노래 보급의 전도사격인 인물입니다. 그가 작사·작곡한 산노래로 ‘설악가’ 외에도 ‘즐거운 산행길’이라는 노래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어 산악인들 사이에서 공전의 인기를 누려왔습니다.
‘즐거운 산행길’은 1969년에 발표된 후 요들 가수 김홍철이 자신의 음반에 취입해 보급했기 때문에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당시 진부령에 있는 알프스산장에서 이정훈씨의 노래를 들은 김홍철씨가 그의 양해로 자신의 음반에 취입했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산악인들 사이에서 애창되던 노래였습니다.
‘설악가’는 한국 산악인들 사이에서 이 노래를 모르면 간첩으로 오해 받을 정도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고 있습니다. 애조를 띤 이 노래를 원작자는 8분의 6 박자 형태로 부르고 있으나, 대부분 느린 4분의 3 박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대중가요에만 익숙해 있는 일반인도 이내 감흥을 느낄 정도입니다.
지금 이정훈씨는 구강암이라는 병마와 끈질긴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어서 병상을 털고 일어나 설악산에서 ‘설악가’를 열창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입니다. 그는 ‘설악가’의 작사·작곡 동기를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달빛 고요한 천불동을 홀로 걷던 중 한국산악회 10동지가 죽음을 맞은 죽음의 계곡을 바라보는 순간 이상한 격정이 끓어올랐고, 달빛에 반사되는 설릉(雪陵)을 바라보는 순간 즉흥적인 감흥으로 흥얼대다 보니 노래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는 이때의 감흥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와 흰 띠를 두른 듯한 달빛 아래의 설릉을 떠올리며 기타로 대강 선율을 그려본 후 피아노로 음을 확인하며 악보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1절은 겨울, 2절은 봄을 묘사한 데 이어 여름과 가을까지 4절로 가사를 작사하려 했으나 후배들이 2절로 끝내는 것이 깔끔할 것 같다 했고 그도 동의했다고 합니다.
또한 귀하께서 질문하신 내용 중 잘못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간명하게 답변을 드립니다. 1969년에 있었던 죽음의 계곡에서 일어났던 10명 조난팀의 공식 명칭은 에베레스트 원정 훈련대가 아니며, 한국산악회가 실시한 제1회 해외원정등반 훈련대이며, ‘설악가’ 작곡의 배경은 고 송준호, 석주길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백두산의 높이, 세 나라가 다른 이유는?
Q개국신화가 깃들어 있는 우리의 조종산인 백두산은 한반도 최고의 산입니다. 그런데 그 높이를 살펴보면 중국(2,749.2m), 북한(2,750m), 남한(2,744m)이 각기 다르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세 나라의 공식기록이 다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박숙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A대부분 산의 높이(표고·標高)는 해발(海拔) 몇 미터라고 표시합니다. 해발은 해수면을 0m로 보고 그보다 얼마나 높은가를 잰 숫자입니다. 즉 바다의 기준면으로부터 어느 지점까지의 거리를 말하며 이것을 표고, 해발 또는 진고(眞高)라고 합니다. 따라서 산의 높이는 산 밑 평지로부터의 높이가 아니라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를 말합니다.
나라마다 고도를 측정하는 기준인 수준원점(水準原點)은 그 나라의 특정한 바다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백두산의 높이도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세 나라의 수준원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높이도 서로 다른 것입니다.
우리나라 높이(해발고도)의 기준이 되는 수준원점은 인천만의 평균해수면이며, 수준원점은 높이 26.6871m의 인천 인하대학교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수준원점은 해발 0m가 아니라 26.6871m 지점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국토 높이의 기준이 되는 곳입니다.
북한에서의 수준원점은 원산 앞바다로 정해져 있으며, 그 일대 해수면의 높이가 인천 앞바다의 해수면보다 6m 정도 낮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백두산의 높이를 2,750m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에서는 수준원점을 북한보다 0.8m 정도 높은 톈진 앞바다로 정하고 있어 중국에서 측정한 백두산의 높이는 2,749.2m가 되는 것입니다.
-
>>한국의 몽블랑 초등자는?
Q근대 등산의 발원지인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한국인 처음으로 오른 사람은 누구인지요? 혹시 기록으로 남겨진 등정기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병태 서울 강남구 대치동
A한국인 최초로 몽블랑(4,807m)에 오른 사람은 박석윤(朴錫胤)입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시대일보 정치부장과 매일신보 부사장을 역임하면서 언론활동을 통해 식민지 통치의 본산인 조선총독부와 밀착해 친일 행적을 해온 인물입니다.
그는 한성부(현 서울) 출신으로 육당 최남선의 여동생 최설경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한 개화기의 중심 인물로 서구문명을 일찍 접한 지식인입니다. 그는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괴뢰 만주국의 폴란드 바르샤바 주재 총영사까지 지냈습니다. 또 만주에서 항일무장운동을 벌이는 독립운동가를 귀순시키는 일본 첩자로 활동하기도 한 친일 행적이 두드러진 인물입니다.
그는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선정한 친일파 708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도 들어 있습니다. 그는 광복 후 신분과 전력을 감추고 숨어 살다가 적발되어 민족반역자로 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비록 친일 언론인이었으나 1927년 7월 돔뒤구테 루트를 통해 몽블랑 정상에 오른 기록상 최초의 한국인 몽블랑 등정자가 되었습니다. 박석윤의 등정기는 잡지 <별건곤> 1928년 5월호에 ‘우리의 山水美-世界名勝을 周遊하고 와서’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으며, 이 글은 본인이 직접 기고한 몽블랑 등정기입니다.
<별건곤>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11월에 창간돼 1934년에 폐간된 잡지로, 당시 <삼천리(三千里)>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며 대중적 취미를 표방한 종합잡지였습니다. <별건곤>은 1977년 경인문화사에서 전 14권으로 영인본을 간행한 바 있습니다.
그의 몽블랑 등정기를 살펴보면, 1927년 7월 24일 오전 11시 가이드 2명과 포터 1명을 대동하고 샤모니를 출발해 5m 간격으로 로프를 묶어 안자일렌을 한 후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오후 7시경 그랑뮐레(테테산장)에 도착해 1박한 후 7월 25일 오전 1시 반에 산장을 출발했습니다. 그는 등반 첫날 이 산장에서 휴식할 때 고소증으로 얼굴에 부종이 오고 숨쉬기가 어려웠으며 불면증으로 고통스러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 일행은 자주 휴식하며 꾸준히 오른 후 오후 1시 반에 정상 바로 밑에 위치한 마지막 대피소(무인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이때 그는 추위로 발에 감각이 없고 고소증으로 두통이 심했으나 마지막 700여m를 더 올라 정상에 섰다고 합니다. 1927년 7월 26일 오후 3시20분 유럽 최고봉 몽블랑 16,000척 위에 서서 알프스 연봉들과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눈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몽블랑 등정 3년 전인 1924년에 마터호른, 아이거, 융프라우 등 알프스 연봉을 볼 수 있는 스위스의 체르마트와 그린델발트 등 알프스에 세 차례 다녀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몽블랑에 오르고 알프스 지역의 명봉들을 섭렵한 박석윤은 친일행적을 지닌 인물이기는 하지만 한국인 최초로 알프스의 여러 지역을 등반한 선경험자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은 일찍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서구적인 개념의 알피니즘을 함께 도입했다고 하지만, 박석윤의 등반 행적과 비교해보면 알프스의 근대 등반을 도입한 시기가 일본보다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비슷한 시기인 1920년대에 알프스에서 활동하며 일본에 알프스식 등반방식을 소개해 일본 산악운동 발전에 기여한 사람은 일본을 대표하는 산악인 마키 유코입니다. 그는 1920년에 마터호른과 아이거를 등반했고, 1921년에는 몬테로자와 마터호른을 등반하고, 아이거 동릉(미텔레기릉)을 스위스의 유명한 가이드 프리츠 아마터와 함께 초등반했습니다.
마키 유코가 일본인 최초로 알프스의 문을 연 사람이라면, 박석윤은 일본과 3년여의 시차를 두고 알프스에서 활동한 셈이며, 한국인 최초로 알프스에 진출한 인물로 기록될 것입니다.
-
>> 용어로 배우는 등산상식 - 암빙벽등반편(30)
>>루트(route·영)
출발 지점과 목적지를 연결하는 거쳐온 길, 즉 경로(經路)를 뜻한다. 루트는 정해진 길에 그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샛길이나 우회로를 통하는 수도 있다. 따라서 길을 자유롭게 찾아가는 것을 루트 파인딩이라고 하지만, 코스는 ‘일정한 등로’라는 의미이므로 코스 파인딩이라 하지 않는다. 루트와 같은 뜻을 가진 코스(course)는 루트보다 비교적 좁은 의미로 쓰이며, 일정한 등로(登路)라는 의미가 강하다.
-
- ▲ 피피 훅
-
>>피피 훅
피피 훅(fifi hook)은 인공등반 중에 사용하는 걸개다. 확보물에 잠깐 매달릴 때 쓰는 금속제 고리형 걸개로, 확보줄의 길이를 조절해 확보물에 쉽게 걸거나 뺄 수 있어 등반시간 단축과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빠질지도 모른다는 심리적인 불안감 때문에 사용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충분한 연습을 거친 후 실전에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등반을 할 때 줄사다리에 걸어 카라비너 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7mm 굵기의 코드슬링으로 안전벨트와 연결해 하켄이나 볼트 등의 확보지점에 걸어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데도 이용한다.
피피는 알루미늄 합금과 같은 경금속의 소재로 만들어진다. 빙벽등반을 할 때 아이스툴의 스파이크 구멍에 걸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선등자의 스크루 설치작업 시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보통은 줄여서 피피라고 부른다.
- >>날진
날진(Nalgene)은 식수나 음식물 보관용기의 대명사처럼 널리 알려진 브랜드다. 내구성이 강하고 금속 용기보다 가볍고 외부 충격에도 좀처럼 모양이 변하지 않으며, 용기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로 야외 용기로 많이 쓰이며, 고체 음식물이나 액체 음식물을 보관할 때 많이 쓰인다. 여러 종류의 용량이 있으며, 최대 용량은 1,000ml이다.
-
- ▲ 날진
- 식수, 양념, 국물, 김치, 고추장, 된장, 간장, 과일즙 등을 보관하기에 적합한 이 용기는 소재가 폴리에틸렌으로 내구 최고 온도 120℃, 최저 온도 영하 100℃다. 등산이 끝난 뒤 식기세척기를 사용해 세척해도 무방한데, 날진 용기 중에서도 렉산(Lexan)으로 만든 제품은 최고 135℃, 최저 영하 135℃에서도 파손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렉산이란 소재는 방탄유리를 만들 때 쓰이는 것으로 영하에서도 내구성이 강한 특징을 지녀 냉동과 해빙을 반복해도 견뎌내기 때문에 야외 캠핑 중 태양의 직사광선 아래 오래 노출시켜도 깨지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렉산 제품은 열에 대한 내구성이 강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음식물을 데울 때 사용해도 좋다.
'등산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상체질 등산건강] 갑상선 질환 (0) | 2010.04.05 |
|---|---|
| 고로쇠, 한두 번 마셔서는 효과 없다 (0) | 2010.04.05 |
| [국립공원 정책 해부] 조난 부채질하는 라이터 반입금지 (0) | 2010.04.02 |
| 화악산 환종주 (0) | 2010.04.02 |
| GPS (0) | 2010.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