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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병(고소증)] 저산소증은 폐부종·뇌부종 일으킬 위험

김영인 2012. 6. 1. 10:54

저탄산혈증도 동반… 두통·구토·심한 졸음 몰려오면 즉시 고도 내려야
 
▲ 이재일, 서울시의사산악회 명예회장·마포구 공덕동 이재일내과 원장

 

우리 사회도 많은 발전을 하여 주말이면 수백만 명이 나름대로 취미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중 등산만큼 대중화된 것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중년 이후 건강과 삶의 활력소를 찾기 위해 산을 오르고 그중 일부는 욕심을 내어 외국 고산원정을 다녀오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더 높은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사람들을 더욱 높고 위험한 곳으로 가게 하는 것 같다.


서울시의사회산악회에서도 해발 3,000~6,000m 정도의 고산을 등산하러 다니면서 고산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였기에 마침 <월간山>과 인연이 되어 고산병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아마도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알프스와 히말라야 산맥의 그 웅장하고 장엄한 풍경에 대한 동경심을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큰 문제가 없으나 욕심이 생겨 고도 4,000m 이상 올라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중 인체에 오는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여 당황하고 공포를 느껴 중도에 포기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된다. 병도 알아야 고친다고, 고산에 오르려면 고산에서 일어나는 신체변화를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


첫째, 낮은 기온과 강한 바람 때문에 체온이 떨어져 몸 온도가 내려가는 저체온증에 대비해야 한다. 옷이 젖으면 방풍과 보온이 잘되는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면 된다. 요즘엔 등산복이 매우 발달하여 저체온증이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보온장비가 불충분하고 체력이 소진되어 움직임이 느려지면 몸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이 떨어져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다.


충분한 물 의도적으로 자주 섭취


둘째, 건조한 기후와 빠른 호흡으로 수분이 배출되고 저산소증에 적응하기 위해 신장에서는 소변을 더 많이 배출하는 이뇨작용이 일어나서 탈수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게다가 고산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 의도적으로 충분한 물을 자주 섭취해야 한다. 


셋째, 산소부족에 의한 저산소증과 빠른 호흡에 의한 저탄산혈증의 문제다. 고도가  3,000m 이상 되면 당연히 산소부족이 오고, 따라서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기 위해 신체는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게 된다. 호흡이 빨라지면 이산화탄소는 오히려 과다 배출되어 저탄산혈증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머리가 멍하고 점점 심해지는 두통이 나타나거나 때론 구토증세와 더불어 식욕감퇴가 오기도 한다. 이 정도 증상은 조금 휴식을 취하거나 두통약 한두 알 정도로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고산 증세를 넘어 증상이 심해지면 폐부종이나 뇌부종이 발생하기도 한다.


 

저산소증으로 인해 폐동맥과 폐정맥의 수축이 일어나 폐동맥 고혈압이 일어나고 모세혈관에서는 액체가 빠져 나와 폐 조직에 액체가 고여 폐부종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폐 조직에서의 산소교환이 더욱 어려워져 호흡곤란이 발생하는데 단순히 숨이 차는 정도를 넘어 얼굴이나 손끝이 새파랗게 변하는 청색증이 나타나고 기침이 심해져서 각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때는 즉시 800~900m 정도 고도를 낮추어주면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뇌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 뇌부종이 생겨 초기엔 두통, 구토, 어지럼증, 무기력증 같은 술에 취한 것 같은 증상을 보인다. 때로는 심하게 졸음이 몰려와 추위 속에 잠이 들어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몇 년 전, 킬리만자로 (5,800m)를 등산하는데 먼저 올라갔다가 내려오던 한 선배가 뒤늦게 올라가는 나를 보더니 무척 졸리다고 하면서 “자네가 올라가다가 내려올 때까지 조금 자고 있을 테니 내려오면 같이 내려가자”고 했다. 그 곳이 5,500m 고지인데… 물론 잠을 자지 못하게 해서 잘 내려가셨다.


어떤 대원은 바위가 사슴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고, 또 한 대원은 5,000m 키보산장에서 꼭 죽을 것 같다는 극도의 공포심을 느껴, 우리가 정상을 향해 등산을 시작하는 사이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빠져 나와 현지 가이드와 함께 3,700m 고지에 있는 호롬보산장으로 내려가 버렸다.


나중에 키보산장에서 한참 그를 찾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듯 고산에서는 일부이지만 엉뚱한 말과 생각으로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에 동행자가 있는 것이 안전하다.


뇌부종이 심해지면 사고가 흐려지고,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고 때로는 마비나 혼수상태와 같은 중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몇 유능한 고산등산가들이 8,000m 이상 고봉을 등정하고 나서 하산하던 중 추락하여 유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 또한 뇌부종에 의한 균형감각의 저하와 판단력 상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일반인들은 생명을 걸고 고산을 오르는 경우는 없겠지만 아주 가끔은 4,000m 급 정도에서 심하게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한국인의 특징인 “빨리 빨리”가 경제 대국을 이루는 데는 큰 힘이 되었지만 고산 등정엔 독이 되는 것 같다.


‘빨리빨리’는 고산에 독… 천천히 적응하며 올라야


보통 상비약으로는 아세트아미노펜 제제의 두통약이 고소증세인 두통을 없애는 데 제일 적합하다. 가끔 다이아목스라는 이뇨제를 갖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이러한 약을 복용하면 밤새 소변을 보느라 컨디션이 더 나빠지고 손발에 저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해서 일반인들은 사용하기가 어렵다. 폐부종이나 뇌부종이 일어난 경우 전문의약품인 혈관확장제나 덱사메타손 같은 주사제를 쓰기도 하는데, 이는 경험이 많은 의사의 동반이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고산병은 급하게 높이 올라갈 때 문제가 되므로 되도록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하루에 고도를 1,000m 이상 높이지 말고, 고소 적응을 위해 그 곳에서 하루나 이틀 머물면서 올라간다면 누구나 큰 문제없이 대자연 속에 빠져드는 묘미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두려움은 그 자체가 큰 병이지만 무지와 공포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