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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 등반법

김영인 2011. 6. 29. 07:33

“6,000~7,000m봉 등반부터 경험하라”
       네팔 쪽 쿰부 아이스폴~사우콜~남동릉 루트

 

1989년부터 고산등반을 시작한 필자는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등반을 지속하고 있으며, 산소를 사용하지 않고 8,000m급 봉우리만 13번 등정했고 7,000~5,000m급 6개 봉우리를 세계 초등정했다. 에베레스트 남동릉은 2007년 봄 시즌에 8,500m의 이른바 ‘발코니’까지 올랐으며, 2008년 로체(8,516m) 등반 때 또 한 번의 경험을 했다(에베레스트 남동릉과 로체 서벽 루트는 7,500m 캠프3을 거쳐 7,800m까지 루트가 같다).

고산등반은 잘 닦인 경기장에서 행해지는 스포츠경기와는 다르다. 자신의 신체는 물론 원정등반을 구성하는 함수 속의 변수들은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등반으로 끄는 자석 역할을 한다고도 하지만 경험자나 첫경험자 모두에게 불안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 에베레스트 정상이 지척이다. 자신에게 숨어 있던 새로운 에너지를 뽑아내어 최고봉으로 오른다.

 

에베레스트 초등정 루트 남동릉 그리고 친환경 등반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한국 내 원정등반 대행사에 신청서를 제출, 계약선금 일부를 지불했다면 첫걸음을 디딘 것이다. 이미 유럽의 엘부르즈(5,642m)나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895m), 남미의 아콩카구아(6,959m)를 오른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없다면 반드시 체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3,000m부터 7,000m 이하의 고도에서 자신의 신체 변화가 어떠한지 잘 파악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출국 전 자신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폐렴을 앓은 경험이 있는지, 충치나 치통·편두통·치질·위궤양 등의 지병을 가진 사람은 높은 고도에서는 반드시 재발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에베레스트 등반 전에 경험 있는 산악인이나 원정대행사에서는 8,000m급 봉우리 등반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할 것이다. 적절한 산은 초오유(8,201m)다. 여기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은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단계적으로 올라가면서 등정의 기쁨으로 열정은 더 커지며, 실패했을 경우에 그 원인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는다. 이렇게 보면 초험자의 경우 에베레스트 등정 시도까지 전체 준비기간은 2~3년으로 상정해야 한다.

1938년 틸만(B. Tilman) 대장이 이끄는 영국원정대의 제7차 등반까지는 티베트 측 북릉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이 이루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히말라야 등산은 일단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나자 히말라야 주변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즉 티베트는 중공의 점령지가 되었고 철의 장막으로 가려지고 말았다. 그 대신 남쪽 지역인 네팔은 새로이 개국해 지금까지 미지였던 네팔 히말라야의 광대하고 고준한 지역에 새로운 등산대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 힐러리스텝.

 

이렇게 되니 자연 에베레스트도 북쪽으로는 불가능하게 되고 남쪽인 네팔에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남쪽 루트를 처음으로 탐사한 것은 1951년 가을 십튼을 대장으로 한 소정찰대였고, 1952년은 스위스대가 봄·가을 두 번의 등정을 노렸으나 남봉 직전인 8,595m의 고도에서 되돌아섰다. 드디어 1953년 에베레스트 초등반의 영광은 영국대가 차지하게 되었다. 존 헌트(John Hunt)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는 9개의 캠프를 올리며 5월 29일 힐러리(E. Hillary)와 텐징 셰르파(T. Norgay)가 정상에 올랐다.

남동릉 루트 등반은 현재 4개의 캠프를 설치해 사우스콜(South Col·7,925m)의 마지막 캠프에서 등정 시도를 하게 된다. 출·귀국 기간의 총 원정일수는 두 달여, 베이스캠프 체재일수는 35~40일이다. 남동릉은 북릉~북동릉에 비해 아이스폴의 붕괴 등 객관적 위험은 높지만 등반길이가 짧고 등정률은 높다.

에베레스트에 또 다른 이름이 생겼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장’이라는 오명이다. 친환경등반에 관한 등반 참가자의 행동강령은 히말라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동경선언에서 채택한 이 슬로건이 적절할 것 같다. ‘발자욱만 남기고 사진만 가져오기(Leave nothing but footprint, Take nothing but Picture)’

에베레스트는 사가르마타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야생동물 보호는 물론 오염으로부터 환경보호에도 애쓰고 있다. 원정대에 적용된 강제규정은 각 팀당 4,000달러의 환경보호예치금을 예치하고 만약 등반 중 규칙을 어기면 정부연락관의 심의를 거쳐 예치금을 되돌려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비스타리, 비스타리(천천히)’ 쿰부계곡 캐러밴

4월 초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1,280m) 트리뷰반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기온은 따끈한 한국의 봄 날씨와 같다. 현지대행사 직원들이 나와 화환이나 카타를 대원 각각의 목에 걸어준다. 그리고 정겨운 인사말 “나마스테(안녕하세요)”가 네팔 히말라야 첫 인상으로 남는다.

카트만두에서는 3~4일 체재하면서 부족한 장비와 식량을 구입하고 도보캐러밴을 위한 포장작업을 한다. 그리고 박타푸르·파탄·보드나트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적 등지로 하루 정도 관광을 나가는 것도 좋다. 쇼핑천국인 타멜(Thamel) 거리는 대여섯 곳의 한국식당을 포함해 카페·식당·토산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카트만두는 교통체증과 매연,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이국의 풍치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방해한다. 등반가에게 관심이 있는 산악등반장비점도 많은데 캠핑·트레킹·고산등반에 필요한 각종 고급브랜드의 품목을 고루 갖추고 있어 한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

출국해 비행기를 타면서 자기 몸관리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비행기 안에서 한기, 카트만두 호텔에서 에어컨으로 인한 감기, 물과 음식을 갈아먹어 배앓이와 설사 등이 컨디션을 나쁘게 만들어 팀 내에서 적어도 한두 명은 편도선이 붓거나 감기 기운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 아이스폴 지대의 대형 크레바스는 사다리를 이용해 건넌다.

 

남쪽 베이스캠프는 웨스트 쿰(West cwm)으로도 불리는 쿰부아이스폴(Khumbu Ice Fall) 기슭 5,350~5,400m 고도 지점의 쿰부빙하에 위치한다. 베이스캠프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버스로 카트만두에서 지리(Jiri)를 들러서 남체바자르까지 도보로 6일을 걸어간다. 그곳에서 베이스캠프까지는 다시 5일 정도가 걸린다. 옛날에는 고소적응에 효과적인 이 캐러밴 루트를 따랐으나 요즘의 통상적인 루트인 두 번째 방법은 카트만두에서 루클라(Lukla·2,840m)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여 비행해, 그곳에서 팍딩(Phakding·2,610m)~남체바자르(Namche Bazar·3,440m)까지 2일 정도 도보로 행진해 첫 번째 루트를 따라 가는 것이다. 남체바자르에서 페리체(Pheriche·4,270m)나 딩보체(Dingboche·4,410m)까지는 2일 정도, 로부체(Lobuche·4,910m)~고락셉(Gorak Shep·5,150m)을 거쳐 베이스캠프까지 3일 정도가 소요된다. 걷는 길가에는 민가를 개조해 숙식을 할 수 있게 만든 로지가 많다. 공동 짐은 야크와 소를 이용해 운반하며 대원 개인 짐은 포터들이 등짐으로 나른다.

구름 사이로 나는 프로펠러 경비행기가 오금을 저리게 하고 산 중턱 루클라 비행장에 가까워지면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며, “쿵!” 하고 활주로에 내리는 순간 숨을 죽이던 기내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안전하게 착륙한 기장과 부기장에게 보내는 감사의 표현이다.

산자락으로 휘휘 도는 허리 길을 따라 도보 캐러밴의 시작이다. 산자락엔 봄꽃들이 붉고 밭에는 푸른 보리가 한창이다. 고개를 들면 순백의 미봉들 탐세르쿠·아마다블람·촐라체가 비경을 드러낸다. 쉬는 날 저녁 무렵 포터들이 막걸리와 비슷한 창(Tsang) 한 사발을 들이키면 으레 네팔민요 “레쌈 삐리리(Resham firiri·비단 두건이 바람에 날리네)”를 흥얼거린다. 노래에 춤이 빠질 수 있으랴.

대부분 첫 번째 고소증세는 1,000여 m 고도를 하루에 올리는 남체바자르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포터들은 “비스타리, 비스타리(천천히)” 걸으라고 주문한다. 또 남체바자르에서는 하루 휴식하며 적응을 한다. 이날 샹보체(Syangboche)나 쿰중(Khumjung)마을 방향으로 고도를 300~400m 올렸다가 내려오는 것이 좋다. 고락셉 전에는 퇴석모레인 빙하를 건너게 되는데 길의 흔적은 분명한데 가스가 끼고 흐린 날에는 길을 잃기 쉬워 혼자 운행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한국 푸모리원정대 대원 한 명이 실종, 사망한 예가 있다.

▲ 웨스트쿰 빙하 내원에 위치한 캠프2가 운행하는 대원들 뒤로 보인다.

 

도보 캐러밴에서는 배낭 안에 보온용 덧옷, 물통, 간식, 양산 등 운행에 꼭 필요한 물품을 넣어 최대한 무게를 가볍게 하고 거북이걸음으로 걷는다. 캐러밴 동안에는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다. 낮에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긴팔 긴바지를 입고, 햇빛이 따갑다면 접이식 양산을 쓰고 걷는 것도 좋다. 물은 자주 마신다. 해가 지면 한기에 대비해 도톰한 방한복을 입고 수면 시에는 수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 침낭 안에 넣고 잔다.

2007년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로부체에 도착한 우리 대원 한 명이 밤 9시경에 갑자기 배를 움켜잡고 신음하는 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의사가 동행하지 않았던 원정대는 급히 페리체에 있는 응급진료실로 옮겼고 다음날 헬리콥터로 카트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급성맹장염이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몇 시간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태로웠다 한다. 동료들의 적절한 대처가 한 생명을 구한 것이다.

빙하 위의 베이스캠프

8~9일간의 긴 도보 캐러밴을 끝내면 얼음 빙하 위에 잡석으로 뒤덮인 베이스캠프다. 첫 느낌은 ‘장엄하다’가 아닌 ‘황량하기 그지없다’다. 그러던 차에 로라고개(Lho La·6,026m)에서 세락이 무너지며 일으킨 후폭풍의 날가루가 날려 온다. 그렇게 에베레스트는 차갑게 첫 인사를 건넨다. 전 세계에서 모여 든 각국의 등반가들과 네팔 현지 스태프를 포함해 매년 평균 30여 개팀 1,000여 명이 머무는 빙하 위는 하나의 커다란 타운이 된다. 응급진료소, 빵을 구워 파는 베이커리 대형텐트가 오픈하고, 술을 팔러오는 원주민 장사꾼도 있다.

안전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인 뿌자(Puja)를 지내고 나면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 캠프1으로 등반 전, 아이젠부터 산소호흡기의 레귤레이터와 마스크까지 세심히 다시 한 번 체크한다. 등반 중에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이미 늦는다.

힘든 등반 후의 휴식이나 날씨가 흐린 날에는 베이스캠프에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씩 머무른다. 긴 시간 동안 베이스캠프에서 생활은 따분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을 준비해 가는 것이 현명하다. 많은 대원들이 낮잠을 즐기는데 금물이다. 낮에 자면 밤에 잠을 설치게 되고 다음날 운행이 엉망이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러시안 룰렛’ 같은 쿰부 아이스폴을 넘어 캠프1

남동릉의 첫 관문인 아이스폴의 루트 개척은 정부산하기관인 사가르마타 환경보호위원회(SPCC)에서 루트를 만들어 두며, 원정대 한 팀당 미화 3,000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그 위쪽은 각 상업등반대를 이끄는 매니저들이 모여 루트 개설에 대해 협의를 하고 각 팀에서 고정로프와 등반 셰르파를 갹출하여 공동작업을 해왔다. 올해부터 네팔 정부는 캠프2에서 정상까지 고정로프를 매년 설치하는 안건을 입안했고 빠르게는 내년부터 아이스폴과 마찬가지로 팀당 또는 한 명당 얼마를 징수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티베트 측 북동릉은 이미 이러한 형태를 갖추었다.

베이스캠프부터 캠프1(5,900m)까지는 평균 5~6시간 소요되고 캠프사이트는 가파른 얼음 등성을 올라서 플라토로 진입해 크레바스 사이에 설치된다. 아이스폴 지대를 운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무너지는 빙탑에 매년 사망사고가 발생한다. 그래서 직업으로 등반하는 셰르파들조차도 아이스폴 운행 횟수를 최소로 줄이려고 노력한다.

햇빛이 뜨는 낮시간에 혼돈의 아이스폴은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운행은 새벽 4~5시경 일찍 시작한다. 크레바스를 건너는 알루미늄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는데 긴 것은 10여m 되는 것도 있다. 양쪽으로 설치된 고정로프에 더블로 확보하고 손으로 위로 당겨 균형을 잡으며 건넌다. 훈련이 필요하다. 상업등반대가 베이스캠프에서 이 훈련을 시키는 모습을 종종 본다.

빙하 내원에 위치한 캠프2

베이스캠프부터 캠프2(6,400)까지는 약 5km 거리이고, 6,400m 캠프2까지는 평균 4~5시간 걸린다. 대체적으로 눈의 평원으로, 한 시간가량은 몇몇의 사다리를 건너 눕체(7,861m) 북면 방향으로 루트가 나 있으며 그 후는 크레바스가 없는 설면이다.

캠프2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발치에 위치하며 로체 사면으로 나 있는 루트를 조망할 수 있다. 이곳은 에베레스트 남동릉과 로체 서면 루트를 등반하는 전진베이스캠프(ABC) 역할을 한다. 요리사가 상주하여 식사를 제공하며 화장실은 플라스틱 드럼통에 수거, 베이스캠프로 가져 내려오게 된다.

캠프2에 도착하면 또 한 번의 고소증이 온다. 고소증은 해수면고도에 생활하는 사람이높은 곳에 올랐을 때 저기압·저산소증으로 나타난다. 고도에 따른 산소분압률은 5,500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높이에는 50%이며 정상인 8,848m에는 33%밖에 되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저기압과 저산소로 인한 증세는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단계는 고산병(acute mountain sickness)으로 두통·불면증·현기증·피로·메스꺼움·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두 번째 단계는 고도로 인한 뇌부종과 폐부종으로, 여기까지로 악화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산소 결핍으로 2단계에 접어들면 뇌세포가 손상된다. 2006년 <미국의학저널(American Journal of Medicine)> 2월호에 발표된 연구결과는 높은 고도에 노출된 등반가일수록 뇌 손상이 컸으며 손상이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다.

▲ 캠프3로 오르는 로체 사면에는 인위적인 낙석·낙빙이 떨어진다.

 

2009년 마나슬루를 등반하던 이탈리아 등반가는 8,000m급 서너 봉우리를 무산소로 오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6,400m 캠프2에서 캠프3(6,900m)로 운행을 나섰다가 고소증세가 나타나 동료들의 도움으로 캠프2로 내려왔고 휴식을 갖는 도중 몇 시간 후 사망했다. 필자는 사망한 등반가를 텐트 안으로 들이는 일을 도왔는데 마치 잠자는 모습이었다. 고소증세에 따른 결과로 죽음이 자기 근처에 와 있어도 정작 본인은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뜩하기까지 했다. 또한 고산등반을 마치고 귀국 후 자기 휴대폰 번호, 집 현관 전자키 비밀번호 등도 기억하지 못하며 등정 후에는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도 보였다.

그러면 이러한 고소증을 완벽하게 예방할 방법은 없는가? 한마디로 없다. 다만 평균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를 뿐이며 각 대원의 폐활량이 다르듯이 고소증이 나타나는 고도나 증상의 경중도 모두 다르다. 고소증에 관한 연구를 위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영국의 연구실이 설치되어 그곳을 방문했을 때 연구 중이던 의사는 지금까지 고소의학의 연구수준은 아주 낮다고 했다.

서양 등반가들의 경우 아스피린을 상시 복용하는데 이는 적혈구의 증가로 응고되는 피를 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필자도 약을 복용하는데 상당한 거부반응이 있었으나 작년부터 정상등정 전에 아스피린을 먹는다. 다이아목스 등 이뇨제 계열, 혈액순환계의 도움을 주는 비아그라 등이 고소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상업등반대에서는 캠프3부터 운행과 수면 시에 산소를 사용하는데 이 산소를 과신하면 안 된다. 산소공급을 하더라도 8,000m 높이에서는 저기압에 계속 노출되어 부종 증세는 여전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천천히 고도를 높이고 20~25일간 업다운을 한 후 8,000m대에 진입하는 것이 좋다. 또 충분한 수분 섭취, 수면이 필요하며 체온을 잃지 않게 주의한다.

캠프2에서 저녁노을이 지는 은빛 로체 페이스는 아름답다. 그러나 단단한 얼음으로 된 빙벽을 5~6시간 오르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평평한 사면의 빙하 내원을 2시간 오르면 빙벽이 시작된다. 얼음은 단단해 아이젠이 잘 박히지 않는다. 미리 아이젠 피크를 잘 갈아 놓을 필요가 있다.

빙벽을 올라 로체 페이스 상의 캠프3

이곳은 정체 현상이 벌어진다. 아침 일찍 캠프3에 짐을 올려놓고 내려오는 셰르파와 오르는 등반가가 겹치게 된다. 복잡하게 엉켜 자기확보의 실패로 추락사하는 사고가 잦다. 항상 자신의 몸을 안전에 곳에 두고 타 등반가를 배려한다. 어센더를 옮겨 끼울 때에는 이중 자기확보를 해야 한다.

고산등반에서 신체가 필요한 첫 번째 요소가 수분과 음식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음식물을 소화해 에너지를 만드는 데에는 또 많은 산소가 소모된다. 배가 부르지 않게 밥을 먹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며, 조금씩 자주 먹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호흡은 곧 운행 방식이다. 들숨과 날숨은 스쿠버다이빙의 호흡과 같다. 긴 날숨에 짧은 들숨 그리고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게 꾸준히 운행하는 습관을 국내 산행 때부터 길러야 한다.

캠프3는 빙벽에 만들어진 세락의 단 위에 설치하게 된다. 좁은 캠프사이트는 행동반경을 좁게 만들며, 야간에 화장실 처리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우모로 된 텐트슈즈는 눈 위에서 신발만큼 마찰력을 갖지 못해 대변을 보러 나갔다가 미끄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매년 평균 한 건씩 발생한다. 텐트 주위로 확보용 보조로프를 설치하는 것이 좋다.

▲ 잡석으로 뒤덮인 캠프4 사우스콜.

 

고소에서의 텐트 생활은 힘들다. 좁은 공간 안에서 먹고 자고 운행 준비를 해야 한다. 얼음을 녹여 물을 만드는 시간은 지루하다. 걸이식 스토브와 코펠이 편리하다. 수면 시에는 머리 보온에 특히 신경을 쓰고, 텐트 문의 지퍼를 3분의 1 정도 열어놓아 산소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지 않으면 아침에 두통에 시달린다.

필자의 경우 고소에서의 음식물은 간식을 제외하고는 인스턴트식품을 먹지 않는다. 베이스캠프에서 된장국, 북어국, 미역국을 끓일 재료를 생야채와 함께 한 끼분씩 포장해 가지고 간다. 고소에서 조리 시간도 줄이고 입맛에도 딱 맞다. 그리고 베이스캠프 위로의 운행에서는 끓인 뜨거운 물만 먹는다. 사실 아이스폴이 있는 웨스트쿰의 운행에서 한낮에는 매우 덥다고 느낀다. 그러 나 기온은 언제나 영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96년 파키스탄에 위치한 울타르Ⅱ(7,388m)를 초등정하고 마지막 캠프에 내려온 일본 등반가는 차가운 물을 마시고 그 자리에서 급사한 사례가 있다. 무조건 뜨거운 물을 마셔야 한다. 보온병은 필수품이다. 물이 밋밋하다면 좋아하는 차 종류를 다양하게 준비해 즐긴다.

 

강풍이 몰아치는 사우스콜, 캠프4

캠프3까지 3~4번의 운행으로 하룻밤 자고 내려왔다면 등정을 위한 고소적응은 끝났다. 이때쯤이면 체중이 3~5kg 줄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체중을 출국하기 한 달 전까지는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출국에 임박해서는 체중을 3kg 정도 늘려서 가면 고소적응이 끝나는 시점에 적절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4~5일 쉬는 것보다는 페리체(4,270m)나 딩보체(4,410m), 더 낮게는 팡보체(3,930m)나 디보체(3,710m)까지 내려간다. 숲속에 머물며 풍부한 산소, 충분한 음식물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강한 후 베이스캠프로 올라가 등정 시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일기예보를 분석하여 ‘날을 잡는다.’

▲ 로체 사면의 빙벽을 올라 캠프3로 향하는 등반가들

 

캠프3에서 옐로밴드와 제네바스퍼를 올라 에베레스트와 로체 사이의 사우스콜까지는(7.925) 6~8시간 걸린다. 도착한 날 밤에 바로 정상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에 운행은 새벽에 최대한 빨리 출발해야 캠프4에서 많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 운행부터 산소를 사용하는 것이 등정률을 높일 수 있다. 산소호흡기 게이지는 ‘1.5~2.5’로 맞춘다.

마지막 캠프는 영하 20도에, 티베트 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텐트는 심하게 흔들리고 텐트 밑에 잡석들로 누운 자리는 편하지 않다. 정상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잠을 잔다기보다는 눈을 감고 있는 정도다. 산소사용은 ‘0.5~1’ 게이지가 적당하다.

세계최고봉 정상

▲ 에베레스트 남동릉 루트 개념도.

 

등정 시도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운행을 시작한 지 평균 4~5번째 운행에서 이루어진다. 정상까지는 10~12시간 소요되는데 다음날 정오경까지 정상에 서지 못한다면 하산시간을 고려해 중간에서 포기하고 되돌아서야 한다. 밤 9~10시경에 출발하는데 준비시간이 2시간 정도는 걸린다. 좁은 텐트 안에서 물을 끓여 차를 마시고 옷을 입고 장비를 착용하는 모든 행동이 힘들고 지겹기까지 하다. 시린 손과 강풍에 파르르 떨리는 텐트플라이 소리에 정상으로 향해야 할 자신의 의지는 점점 사그라진다. 여기에서는 경험 많은 등반가나 등반셰르파의 마음도 모두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쪽의 정상보다는 아래쪽으로 무언가 자꾸 당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하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자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이때 동료의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함께 가자, 정상까지.”

텐트를 나서면 이미 발코니 8,500m 로 향하는 불빛이 야간의 비행기 활주로 유도등과 같이 줄을 잇고 있다. 랜턴 불빛에 비치는 근거리의 앞만 보고 걷는다. 정신은 몽롱하고 마치 잠결에 꿈을 꾸는 것 같다. 단지 내 몸에서 진정 살아 있는 신체기관은 손과 발이 무지 시리다는 느낌뿐이다. 얼음 언덕을 올라 고정로프에 어센더를 끼우고 앞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오른다. 산소마스크로 숨쉬는 쉐쉐 소리만이 들린다. 코에서 올라 온 습기로 고글에 성에가 끼여 성가시게 한다. 장갑으로도 잘 닦이지 않는다.

드디어 발코니. 동쪽 티베트 고원으로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얼마나 기다리던 햇빛인가. 모두들 눈 위에 앉아 한동안 빛을 즐긴다. 이곳에서 몇몇이 포기하는 1차 지점이다. 2차는 남봉 근처다. 남봉으로 향한다. 태양이 떠올라 추위는 가셨지만 반대로 빛에 의한 몸의 열기로 더위를 느끼고 졸음은 더 쏟아진다. 열 걸음 헤아리고 숨을 헐떡이고 또 다섯 걸음 헤아리고 머리를 처박는다. 도대체 언제 이 오름짓이 끝날까! 깊은 호흡을 하고 자신에게 숨어있던 새로운 에너지를 뽑아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상에 오르겠다는 욕망이자 오기다. 정신력이자 의지다.

남봉에 올라 정상 쪽을 바라본다. 이제 그래도 끝이 보인다. 그러나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힐러리스텝(Hilary Step)이다. 남봉에서 쓰던 산소통은 눈에 박아놓고 셰르파가 운반해 온 새로운 산소로 교환한다.

10여m 길이의 힐러리스텝은 초등 당시보다는 덜 어렵다. 그곳에서 30분 더 가자 오색 룽다가 더미를 이룬 정상이다. 정상은 단지 정상이다. 기쁨을 느끼기에는 하산길 걱정이 부담스럽다.

고통의 하산

고산등반 사고의 절반 이상은 하산 중에 일어난다. 1996년 남동릉에서의 대참사도 힐러리스텝에서 오르는 등반가와 정상에 선 후 내려오는 사람들이 만나며 생긴 병목현상으로 하산시간이 더욱 지연되며 거기에 악천후까지 덮친 결과였다. 극심한 체력소모로 후들거리는 다리는 안정된 아이젠 워킹을 방해한다. 자신의 아이젠이 반대편 신발에 걸려 실족,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 캠프3는 빙벽에 만들어진 세락의 단 위에 설치된다.

 

등정 당일 마지막 캠프까지 하산하고 다음날 캠프2까지, 3일째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한다. 체력이 된다면 이틀 만에 하산한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위험한 지대는 일단 벗어난 셈이다. 그러나 귀국하여 자신의 몸이 다시 해수면고도에 적응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잊혀지고 아름다웠던 풍경과 기억, 그리고 목표를 이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 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은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에겐 선물로 주어진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음미하게 된다.

 

“나는 행복한데 내 와이프는 불행하다” 원정 앞서 해야 할 일은 가족의 이해 얻기

어떤 이는 말한다. “어떤 분야든 10여 년을 매진하면 전문가의 수준이 된다”고. 그렇다면 필자는 고산등반전문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노멀루트든 새로운 루트를 시도하든지 간에 원정등반 출국에 임박해서는 안전하게 귀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 불안감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근원적 불안이며 또 이것은 가족, 직장 등 사회적인 관계의 무게에 따라 더 가중된다. 그 첫 번째가 가족이다. 내 꿈을 좇아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러 간다고 하면 한국적 정서의 가족 내에서 반기는 사람이 있을까! 텔레비전에서 본 히말라야 등반 장면에서의 눈사태, 코밑에 주렁주렁 고드름을 달고 힘겹게 오르는 등반가, 그리고 사망사고 소식 등에 가족들이 반기기는커녕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인가 하여 대꾸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히말라야로 떠나는 등반가는 눈물을 등 뒤에 두고 떠난다. 이것은 미국, 유럽도 마찬가지다. 올해 봄 시즌 아벨레 블랑(Abele Blanc·57세)은 8,000m급 14좌의 마지막 봉 등정을 위해 안나푸르나(8,091m)에 여섯 번째 시도를 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등반을 떠날 때 당신 가족의 태도는 어떤가. 특히 부인은?”

내가 묻자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 짧게 대답했다.

“나는 행복한데 내 와이프는 불행하다.(I’m happy, My wife unhappy)”

가족의 이해를 얻기란 쉽지 않다. 에베레스트에 대한 철저한 준비, 매일의 체력훈련 등 노력하는 모습에 조금씩 긍정적인 태도로, 그리고 고산등반에 대한 많은 대화로 자연스럽게 걱정과 불안감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가족은 서서히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의 어떤 등반가는 이러한 벽이 너무 크자 가짜 사고소식을 전하고 병원에 드러누워 깁스하고는 입원기간 두 달 동안 몰래 원정 출·귀국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한국 원정대들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이 “출국 비행기에 오르면 원정의 절반은 끝났다”다. 그만큼 준비절차와 과정이 쉽지 않다는 반증이다.

세계 최고봉은 그래도 가볼 만한가? 결정은 자신 몫이지만 경험자로서 이렇게 말해 줄 수는 있다. 그 체험은 당신의 DNA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을지도 모른다.

 

 

티베트 쪽 북릉~북동릉 루트
       마지막 캠프가 세계 6위 고봉보다 높다
       C2부터 산소 사용하는 게 바람직… 자기 확보에 충실해야 안전

 

티베트 쪽 에베레스트 등정은 영국대가 1921년부터 1938년까지 7차례나 등정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이후 22년이 지난 1960년 대원 214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중국 팀에 의해 북릉~북동릉 루트로 초등이 이루어졌다. 중국 팀의 등정은 서방 산악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1975년 영국 남서벽 원정대가 정상에서 넉 달 전 두 번째 등정을 발표한 중국 팀이 눈에 깊숙이 박아놓은 삼각대를 발견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북릉~북동릉 루트를 통한 등정은 왕푸저우, 추인화, 그리고 티베트인 콘부 세 대원에 의해 성공됐다. 공격조는 당시 해발 8,600m대에서 약 20m 높이의 바위절벽인 세컨드 스텝을 만나자 등반 경력이 2년밖에 안 된 추인화 대원이 등산화와 양말을 벗은 채 맨발로 돌파했고, 세컨드 스텝을 올라선 다음 어둠이 몰려왔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등반을 강행해 동이 트기 직전에 정상에 도착했다. 하산 길에 지친 대원 한 명이 해발 8,535m 지점에서 무산소로 비박했는데 이튿날 살아 내려오는 등,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지는 루트다.


▲ 롱북 사원에서 바라본 초모랑마. 대다수의 산악인들이 자갈밭을 이룬 BC에서 왼쪽 골짜기를 따라 ABC까지 들어선 이후 노스콜~북릉~북동릉을 따라 세계 최고봉 정상까지 오른다.

 

1990년 가을 한·일합동대 대원으로 남동릉 루트로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이후 2007년 2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원정대를 성공적으로 리드해 대원 10명이 정상에 서는 기쁨을 누리게 한 2007 김해 플라잉점프 팀 대장 김재수(50)씨를 통해 아마추어 산악인들을 위한 북릉~북동릉 등반의 ABC에 대해 알아본다. 김씨는 최근 안나푸르나 등정을 마지막으로 14좌 완등을 공포한 바 있다. 김재수씨는 1993년 불법 월경으로 정상에 올라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초오유(8,201m)는 올 가을 재등정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티베트 쪽 북릉~북동릉 루트는 입산료가 네팔 쪽 남동릉 루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 BC(5,150m)까지 차량으로 진입하고 ABC(6,400m)까지는 야크로 짐을 수송할 수 있다는 점, 크레바스 추락이나 빙탑 붕괴의 위험이 높은 아이스폴 지대가 없다는 점, 그리고 베이스캠프에서 다른 팀들과 협의를 거쳐 로프를 까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남동릉 루트와 달리 티베트등산학교 팀이 일괄적으로 로프를 깔아준다는 점 등의 이유 때문에 특히 상업등반대들이 선호하는 루트였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위해 성화 봉송팀이 등정에 성공한 5월 8일까지 C3(7,700m) 위로 등반을 못 하게 하고, 지난해 봄 시즌에는 4월 1일, 올 봄 시즌에는 4월 17일에야 BC에 진입을 허용하는 등 등반을 어렵게 하는 일이 잦아지자 상업등반대들이 북릉~북동릉 루트를 외면하고 네팔 쪽 남동릉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북릉~북동릉 입산료가 해를 거듭할수록 비싸지고, 또한 그나마 오래 인연을 맺어옴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 네팔 셰르파의 입국을 금지시키고 대신 티베트등산학교에서 배출한 셰르파만을 고용하게 하는 불합리한 규정을 내세울 움직임이 보여 티베트 쪽 등반객 수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BC 진입 전 고소적응 트레킹이나 등반은 필수

티베트에서는 초모랑마라 부르는 에베레스트 접근 방법은 두 가지다. 중국 본토에서 ‘하늘 열차’라 불리는 칭짱열차나 비행기로 라싸까지 진입한 다음 이후 차량을 이용해 시가체를 거쳐 BC(5,150m)로 들어서거나 네팔에 입국해 카트만두→코다리→장무→니얄람→딩그리를 거쳐 BC로 진입한다. 한국 산악인의 경우 대부분 네팔로 입국해 국경을 경유해 티베트로 들어가 BC로 진입하고, 외국 등산인들의 경우 라싸를 경유한다.

라싸를 경유할 경우 라싸와 주변에서 여러 날 머물며 고소 적응 기간을 갖지만 네팔에서 진입할 경우 BC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므로 고소 적응이 관건이다. 그래서 네팔히말라야 트레킹이나 트레킹피크 등반을 통해 어느 정도 고소에 적응한 다음 BC에 입성하는 경우가 많다. 남쪽으로 등반할 때는 에베레스트에서 7km 남짓 떨어져 있는 쿰부히말의 임자체(6,189m·아일랜드피크)에서 고소적응을 하기도 하지만, 티베트 쪽으로 등반할 경우 접근시간이 짧게 걸리는 랑탕히말 일원의 얄라피크(5,520m) 같은 봉을 선호한다. 경우에 따라 4,000m대 높이까지 트레킹 정도로 고소적응하는 것도 좋다.

▲ ABC에서 바라본 초모랑마. 오른쪽 설릉이 노스콜이다.

 

고소적응 시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물을 많이 마시면서 천천히 움직이도록 하고 하루에 고도를 600m 이상 높이지 않도록 한다. 고소의학 매뉴얼에는 하루에 높이는 고도가 300~600m가 적당하다고 나와 있다. 실제 하루에 600m 이상 고도를 높이면 고소증세를 느낄 위험이 높다. 김재수씨는 하산할 때 고소증을 느끼는 사람도 간혹 나타난다고 전한다. 2007년 봄 에베레스트 등반에 앞서 얄라피크를 등반한 다음 하산길에 여성 대원 한 명이 고소증세에 의한 어지럼증을 호소했는데, 감압장치인 가모백에 30분 정도 들어가 쉰 다음 나오자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국경마을인 코다리까지는 차로 약 6시간 걸린다. 봄철이면 산사태가 일어나 도로가 유실되기도 하지만 산사태 발생 지역 건너편에 지프와 포터들이 대기하고 있어 별도의 비용만 지불하면 코다리까지 별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다.

코다리에 도착하면 보통 그곳에서 1박 하지만 오후 5시 이전에 도착한다면 국경을 넘어 30분 거리인 티베트 장무(2,300m)까지 갈 수 있다. 장무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덕분에 도로가 잘 포장돼 있고 깨끗한 호텔이 많이 있다. 관광 등 자유롭게 지낼 수 있지만 중국등산협회나 티베트등산협회가 지정한 호텔과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장무에서 니얄람(3,750m)까지는 2시간 거리다. 해발 4,000m가 넘어서면서 고소증을 느낄 수 있다. 니얄람에서 대개 이틀간 지낸다. 티베트등산협회 측에서도 현지적응과 고소적응을 위해 이틀간의 체류를 권하고 있다. 니얄람에 머무는 동안 500~600m 더 높은 북쪽 산을 산책하거나 오르내려 고소 적응을 하도록 한다.

 

 
니얄람에서 출발해 해발 4,910m 높이의 라룽라를 넘어서면 드디어 만년설산이 줄지어 솟구친 히말라야산맥이 펼쳐진다. 차량으로 서너 시간 거리인 딩그리(4,340m)에 도착하면 에베레스트와 초오유가 한눈에 바라보여 감동케 된다. 딩그리에 도착하면 역시 이틀간 휴식하는 게 바람직하다. 딩그리 고도에 비해 500m 안팎 더 높은 주변 산봉을 오르내리면서 고소적응 기회를 갖도록 한다. 김해 플라잉점프 등반대는 랑탕히말의 얄라피크를 고소적응차 등반했음에도 딩그리에서 다시 고소적응 산행을 했다. 딩그리는 BC에 닿기 전 야채를 비롯한 채소와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므로 필요한 물품을 구하도록 한다.

딩그리에서 4시간이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종교 건축물인 롱북 사원에 도착한다. 해발 4,900m 높이 이곳은 에베레스트가 잘 바라보이는 곳이다. 부근에 호텔이 들어서 있지만 이용료가 매우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롱북 사원에서 약 8km 떨어진 에베레스트 북면 BC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자갈밭을 이루고 있다. 식수도 가까운 곳에서 구할 수 있다. 이곳에서 에베레스트가 정면으로 바라보이지만 북릉~북동릉 루트가 전체적으로 파악되지는 않는다. 해발 5,150m 높이의 BC에 들어서면 대부분 고소증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급하게 움직이지 말고 천천히 캠프를 치면서 사나흘 푹 쉬는 게 바람직하다. 경험 없는 사람은 두통이나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김재수씨 역시 누우면 가슴이 답답하고 앉으면 조금 나아지는 불면증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 세계 여러 나라 산악인들이 노스콜을 향해 줄지어 오르고 있다.

 

눈사태를 비롯해 자연재해의 위험이 전혀 없는 BC는 무슨 일이 있으면 등반시즌에 상주하는 티베트등산협회 사무실에 요청해 지프를 타고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딩그리(4,340m)나 타서종(4,200m)까지 내려갈 수 있다. 물론 지프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보안을 목적으로 상주하는 군부대 막사에서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도 있다.

김재수씨는 BC에 도착해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면 고소 적응을 하도록 권한다. BC를 한 바퀴만 돌아도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 사이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도록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김 대장의 경우 물 1리터에 커피를 한 스푼 정도 연하게 타 마신다. 믹스커피도 일부러 설탕 한 스푼을 타서 먹는다. 이는 커피는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카페인 성분과 이뇨작업을 돕는 성분도 함유하고 있어 신진대사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타닌 성분의 녹차는 많이 마시면 위를 쓰리게 하기 때문에 거의 마시지 않는다. 옥수수 티백도 물맛을 좋게 한다며 권한다.

김재수씨는 간식을 거의 안 하지만 주머니에 사탕 같은 것을 넣고 다니다가 입이 심심하면 먹는다고 한다. 무엇보다 설탕 성분이 가장 빨리 에너지로 변화하고, 사탕을 먹음으로써 물을 많이 마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달달한 카스테라 같은 빵 종류도 좋다. 어떤 사람들은 무설탕 비스킷도 즐겨 먹는다. 이러한 기호식은 사전에 대원 각자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

티베트등산학교 팀, 전 구간 로프 깔고 사용료 받아

북릉~북동릉 등반로 상에는 BC와 중간캠프(5,800m), ABC(6,400m), C1(노스콜·7,000m), C2(7,600~7,800m), C3(8,300m) 등 고소캠프를 5개 설치한다. 전체적으로 눈사태의 위험은 적으며, 젊은 티베트인들로 구성된 티베트등산학교 팀이 매년 정상까지 로프를 설치하고 이용료를 1인당 100달러씩 받는다.

BC~ABC 거리가 상당히 먼 구간이다. 고소에 잘 적응되었더라도 8시간 정도 걸린다. 따라서 처음에는 한 번에 갈 수 없으므로 중간캠프에서 돌아서거나 하룻밤 자고 이튿날 ABC로 가는 것이 고소 적응과 체력 유지에 유리하다. BC에서 ABC까지는 너덜지대이며 눈이 내리면 눈밭을 걸어야 한다. 대신 무거운 등반용 삼중화를 신을 필요가 없고 방수기능이 좋은 일반등산화를 신으면 된다. 크렘폰 역시 필요 없으며 ABC까지는 야크가 식량과 장비를 운반해 준다.

ABC는 거대한 둔덕에 계단식으로 구축된다. 수백 명이 지낼 수 있을 만큼 널찍한 ABC 일원은 퇴석빙하지대로 눈사태 위험이 전혀 없다. 식수는 부근의 빙탑에서 깨낸 얼음을 녹여 사용해야 한다. 상업등반대의 경우 ABC에 BC 수준의 캠프를 구축한다. 김재수 팀도 대원들의 편의를 위해 텐트 다섯 동을 설치해 놓고 키친보이 한 명을 대기시켜 놓았다. ABC는 그만큼 이용도가 높은 캠프지다. 정상 등정 시에도 BC에서 하루에 ABC로 가는 것보다 중간 캠프에서 하룻밤 묵고 움직이는 게 체력 유지에 바람직하다. 물론 ‘선수’들은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 등반 시즌이면 텐트촌을 이루는 노스콜.

 

ABC~노스콜 ABC 출발 이후 초반부는 무리 없이 진도가 나가지만 점차 고도가 높아지고 바위 혼합구간이 나타나면서 정체되고 속도가 늦어진다. 5~6시간 소요. ABC 출발 1시간 반이면 언덕을 넘어 플라토에 올라선다. 크레바스가 거의 없고 눈길이 잘 나 있어 위험하지는 않은 설원지대다. 설원지대를 가로지르면 설사면으로 올라붙는다. 간간이 나타나는 세락 지대는 우회하고, 설사면 중간중간 얼어붙은 구간이 나타나므로 아이젠 보행에 신경 써야 한다.

드문 일이지만 판상눈사태도 주의하도록 해야 한다. 1997년 한국 산악인 한 명이 눈사태 사고를 당한 구간이다. 고정로프에 제대로 확보한 상태에서 운행하면 큰 사고를 당할 염려는 거의 없다. 막판에 짤막한 급설사면을 올라서면 노스콜이다. 노스콜 사면에는 크레바스도 많이 있고 세락과 세락 사이에 큰 틈이 벌어져 있지만 티베트등산학교 팀이 사다리와 고정로프를 설치해 놓기 때문에 무난히 넘어설 수 있다.

노스콜은 그리 넓지 않지만, 히든 크레바스가 곳곳에 있는데다 ABC 방향 플라토 쪽으로 추락할 위험도 있기 때문에 행동에 주의해야 한다. 화장실 갈 때도 주의해야 하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 지역은 가급적 들어서지 않도록 한다. 캠핑슈즈나 우모버선을 신고 텐트 밖으로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다. 상업등반대들의 경우 첫 번째 노스콜 진출에서 하룻밤 묵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나 김재수씨는 그보다는 노스콜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고소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 뒤 ABC로 내려서는 게 컨디션 조절과 체력 유지에 바람직하다고 권한다

 

노스콜~C2 대개 6시간 걸리는데, 상업등반대는 8시간 잡는다. 노스콜을 출발해 한동안 설릉을 따르다 캠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눈과 바위 혼합지역으로 바뀐다. 바람에 중심을 잃고 추락할 위험이 있지만 고정로프가 깔려 있어 강한 바람이 불더라도 자기 확보를 제대로 하면 사고를 당할 염려는 없다. 설릉에서 바람이 덜 부는 쪽으로 내려가 등반하는 게 좋다.

또한 보온 방풍옷을 착용하는 것이 필수인 구간이다. 일반적으로 상업등반대 손님대원뿐 아니라 전문산악인들도 상하의가 붙어 있는 원피스 우모복을 입고 등반한다. 등반 중 덥다 싶으면 상의 지퍼를 열고 벗어 젖힌 다음 팔을 허리에 감아 묶으면 운행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

▲ 초모랑마 북릉~북동릉 노멀루트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하다는 세컨드 스텝(해발 8,700m). 추락사고 위험이 높은 바위절벽이다.

 

C2는 경사가 심한 바위 지대이기 때문에 캠프를 설치하기도 까다롭고 마음놓고 움직이기도 어려운 지역이다. 텐트 간 이동도 자일 확보 상태에서 해야 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 캠핑슈즈를 신고 움직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C2에 처음 올라갔을 때는 침낭 속에 들어가 따뜻한 상태에서 푹 쉬다가 내려오는 게 바람직하다고 김재수씨는 말한다. 특히 고소에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잠자리는 고소적응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고소증세와 체력소모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노스콜에 두 번째 진출하면 누구든 하룻밤 묵고 이튿날 C2로 진출한다.

이렇게 C2까지 고소적응 과정을 거치면 BC까지 내려가 푹 쉬면서 등정에 적합한 날씨를 기다린다. BC로 내려왔을 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원은 니얄람이나 시가체(3,900m)까지 내려가 이틀이나 사흘간 쉬었다 BC로 돌아오는 게 좋다. 김재수씨는 2002년 로체 등반을 예로 들며, C3(7,200m)까지 고소적응한 다음 BC를 거쳐 페리체(4,200m)까지 내려갔다가 사흘간 쉬고 다시 1박2일 만에 BC로 올라갔는데 “4,200m대로 내려가 쉬면서 고기와 신선한 야채를 충분히 먹자 체력과 호흡 등 컨디션이 되살아났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었다”고 기억한다.

정상공격에 알맞은 날씨가 확인되었다면 중간캠프, ABC, 노스콜, C2 등 하루에 캠프를 하나씩 올리면서 운행하도록 스케줄을 짠다. C2에는 일찍 도착해 충분히 쉬고 이튿날 일찍 운행하는 게 야간에 이루어지는 등정길을 위해 바람직하다. 또한 C2에서 취침할 때에 산소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 게이지는 ‘1’에 맞추면 적당하다.

등강기나 확보줄 매듭 건너뛸 때 안전사고 주의해야

C2~C3 다른 구간보다 가파르고, 매듭과 매듭 사이가 짧은 구간이다. 따라서 매듭 때문에 주마를 바꿔 끼는 횟수가 많아진다. 따라서 고도가 높아지면서 정신이 몽롱해지므로 등강기를 빼내 매듭 위쪽 로프에 낄 때 조심해야 한다. 등강기를 제대로 못 낀 상태에서 균형을 잃으면 양쪽으로 2,000m 아래 빙하지대까지 추락하게 된다. 한국 산악인들은 대개 등강기 하나에 확보줄을 사용하지만 외국 산악인 가운데에는 안전을 위해 등강기 두 개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낡은 로프에 등강기를 거는 실수도 범해서는 안 된다. 또한 바위지대에서 아이젠을 잘못 디디면서 균형을 잃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C2에서 C3까지 운행할 때 산소의 도움은 개인의 의지에 따라 다르지만 사용하기를 권한다. C3 높이는 해발 8,300m로 세계 6위 고봉인 초오유(8,201m)보다 높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산소 1통이면 등반과 C3에서 휴식하는 데에 충분한 양이다.

▲ 노스콜에서 C2를 거쳐 C3까지는 설릉과 암설 혼합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C3는 텐트 치기가 어려운 급경사 바위지대다. C2에서 일찍 출발한다 하더라도 등반 길이가 워낙 길고 힘이 많이 들어 C3에 도착하면 오후 늦은 시각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밤 11시 전후 정상공격에 나서는 남동릉 루트와 달리 마지막 캠프에서 오후 9~10시에 출발하므로 C3에 도착해 쉴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따라서 C3는 잠시 쉬면서 등정 준비하는 장소로 삼아야 한다. 물론 두세 시간 잘 수는 있지만 대부분 고소증세와 텐트 자리의 불편함 때문에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다. 그렇더라도 최대한 빠른 시간에 따뜻한 물을 마시고 쉬는 게 가장 좋다. 눈을 감고만 있어도 70%는 잠자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때 같은 텐트를 사용하는 대원 중 한 명이 희생정신을 발휘해 물을 끓여 나눠주면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쉴 수 있다. C3에서는 셰르파 역시 자신들의 안전한 등반을 위해 준비하기 때문에 손님을 도와준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사전에 1대1 셰르파를 고용하면 이러한 불편함을 없앨 수 있다. 김재수씨의 경우 2007년 봄 등반 당시 C3에 도착한 이후 대원들을 위해 물을 끓이고 먹을 것을 챙겨주느라 정작 자신은 삼중화를 벗을 시간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정상에 올랐다가 C1까지 내려가 삼중화를 벗었을 때 발가락 끝에 살짝 동상증세가 왔다고 기억한다.

C3는 도난 사고도 잦은 캠프지다. 어렵게 올려놓은 산소통이나 식량이 분실되어 정상공격을 위해 C3에 오른 등반객을 당황케 하는 일도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사람이 모두 내려갈 때는 텐트를 철거해 바윗돌로 눌러놓는 게 바람직하다.

 

C3~정상 C3에서 정상까지는 여러 구간 중 가장 거리가 멀다. 오후 9시 또는 10시경 C3를 출발하고, 이후 정상까지는 8시간에서 12시간가량 걸린다. 이어 정상에서 C3로 하산하는 데 5~7시간 걸린다.

C3를 출발해 퍼스트 스텝까지 약 3시간은 매우 지루한 시간이다. 긴 바위 구간과 설사면이 이어진다. 이후 바위 모퉁이를 돌아서면 악명 높은 세컨드 스텝이 나타난다(C3에서 약 6시간). 세컨드 스텝에서의 로프 처리는 생명과 직결된다. 사다리가 설치돼 있는 세컨드 스텝은 처음에는 수직으로 오르다가 서서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특히 처음 우측으로 바위를 돌아설 때 주의해야 한다. 등강기를 제대로 못 걸고 균형을 잃으면 3,000m 아래 빙하지대까지 추락하고, 걸었더라도 균형을 잃으면 고정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일어난다.

세컨드 스텝 이후 바위와 눈 혼합지역을 트래버스한다. 이 구간은 겁을 먹으면 오히려 불리하다. 과감하게 움직이는 게 좋다. 이 구간은 해발 8,700m대를 넘어서므로 극심한 고소증세에 시달리는 대원이 나타나기도 한다. 간혹 답답하다고 산소마스크나 장갑을 벗는 사람도 있고,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이런 대원이 나타나면 살살 달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김재수씨는 2008년 로체 정상에서 내려오는데 한국 대원 한 명이 장갑을 벗어던진 상태에서 “갑갑해서 벗어야 한다”며 윗도리에 이어 바지까지 벗으려고 해 겨우 달래서 C4로 데리고 가 끌어안고 잤는데 이튿날 아침 일어났을 때에는 “내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느냐?”며 반문했다고 한다.

아무튼 세컨드 스텝을 지나면서 경사가 점점 가파른 바위지대가 자주 나타나 아이젠이 잘 박히지 않고 속도는 더욱 늦어진다. 로프가 깔려 있지 않다면 전문 산악인들도 등반하기 어려운 바위구간이지만 매년 티베트등산학교 팀이 로프를 깔아놓아 확보만 제대로 하면 추락사고를 당할 염려는 없다.

바위 지대 트래버스 구간을 지나 세락을 올라서면 경치가 갑자기 좋아지면서 아이젠도 잘 박히는 설릉에 올라선다. 정상이 보이기 때문에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지점이다. 이후 30분 더 걸으면 세계 최고봉 정상에 올라선다.

▲ 눈과 바위가 뒤섞인 C2. 캠프 자리가 불편한 곳이다.

 

정상~하산 인공산소를 마시며 올라갔다가 하산할 때 산소통이 바닥나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높다. 김재수씨는 2007년 등반 당시 한창 때의 적응력과 체력을 생각하고 하산 속도를 내려고 도중에 산소통을 버리고 내려섰다가 죽음의 위기를 맞아야 했다. 김재수씨는 “세컨드 스텝에 도착했을 때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몸이 흔들거렸다”며 “정상으로 향하던 중 산소통을 교환했던 세컨드 스텝 아래에서 꽉 찬 산소통을 발견했기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너무 늦은 시각에 하산하면 C3에서 하룻밤 지낸 뒤 ABC로 내려서지만 컨디션이 좋은 산악인들은 C1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고도를 최대한 낮추는 게 안전하다는 점에서는 등정 당일 C1까지 하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후 C1에서 ABC까지 내려가서 쉬었다가 BC로 내려가거나, 이 구간 역시 컨디션이 좋은 사람들은 BC까지도 하산한다.

김재수씨는 “북릉~북동릉 루트는 노멀루트지만 로프가 깔려 있지 않다면 전문 등반가들도 쉽지 않다 싶을 만큼 어렵고 위험한 구간이 많다”며 “그렇지만 매년 등반시즌이면 티베트등산학교 팀이 ABC에서 정상에 이르기까지 전 구간에 로프를 설치해 놓기 때문에 위험도가 많이 낮아진다”고 말한다.

김재수씨는 “이렇게 안전 로프를 깔아놓았는데도 매년 사고가 일어나는 까닭은 등반자가 자신의 컨디션을 무시하고 등반을 강행하거나 혹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기술 숙지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원정 결심 후 단 두 달 만에 등정 성공한 허재석씨,
       아마추어 등반가 10명 등정 이끈 김재수씨 경험담

 

국내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자(4회)인 허영호, 3회 등정자인 엄홍길·박영석 등 소위 에베레스트 전문 산악인들은 “누구나 에베레스트 등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강조하는 에베레스트 등반에 앞서 선행돼야 할 사항, 또 꼭 챙겨야 할 장비, 그리고 등반 중 지켜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1977년 가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의 첫 등정 이후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한국 등반대는 73개 팀으로 그중 119명(2회 이상 등정자 중복 합산)이 정상에 서는 데 성공했다. 119명의 등정자 가운데 대표적인 아마추어는 지난해 봄 아버지인 허영호(57) 대장과 함께 정상에 오른 허재석(27·서울시립대 4년)씨다.


▲ 북한산 인수봉 설교벽에서 이를 악물고 주마를 잡아 당기는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 훈련 대원들.

 

허재석씨는 원정을 불과 두어 달 남겨놓은 시점에서 동행을 결심했다. 2007년 1월 4일 오래도록 지병으로 고생해 온 어머니가 돌아가자 아버지가 산에 관한 한 백전노장이긴 하지만 제천팀을 이끌고 에베레스트에 가는 게 왠지 불안스러워 동행을 결심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해 친구와 한 달에 두어 번 산을 다니긴 했지만 뒷동산 수준이었고, 해외 고산 등반경험은 여섯 살 때인 1989년 아버지의 로체 등반 때 베이스캠프(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동일 장소)에 머물렀던 적이 있고, 11세 때 킬리만자로(5,895m), 15세 때 엘부르즈(5,642m) 그리고 20세 때 몽블랑(4,807m) 가족등반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전문등반을 해본 적은 전혀 없었다.


허영호 대장은 원정을 결심한 아들 재석씨에게 무엇보다 체력 단련을 강조했다. 재석씨는 워낙 달리기를 좋아해 1주일에 두세 차례씩 7km 달리기를 해왔다. 횟수를 이틀에 한 번씩, 거리를 10km로 늘렸다. 등반기술도 익혔다. 허영호 대장이 이끄는 제천원정대 대원들과 함께 설악산 소토왕빙폭에서 빙벽훈련을 하는가 하면 죽음의 계곡에서 설상보행법과 등강기 훈련, 활락정지법 등에 대해 훈련을 했다. 아이스폴의 크레바스에 걸려 있다는 사다리를 건너는 연습은 땅바닥에 사다리를 내려놓고 삼중화에 아이젠을 찬 상태에서 걷는 식으로 훈련했다.


캐러밴부터 C3까지 천천히 이동하며 고소적응
제천팀은 3월 27일 출국해 루클라(2,700m)부터 베이스캠프(5,400m)를 향해 8일간의 캐러밴에 들어갔다. 셋쨋날 남체바자르(3,400m)에서 하루 쉰 것을 제외하고는 매일 걸었다. 일반적인 트레커들과 비슷한 스케줄이었다. 허영호 대장은 뜻밖에 느릿느릿 걸었다. 재석씨 판단에 저런 속도로 세계 최고봉 정상을 올라갈 수 있을까 싶었다.


마지막 로지인 고락셉(5,150m)에 하루 머물며 에베레스트 전망대인 칼라파타르(5,545m)를 아침저녁 두 차례 오른 다음 이튿날 베이스캠프(BC)로 진입했다. 그날부터 그야말로 ‘선수’인 아버지 허영호 대장과 아마추어인 아들 대원인 재석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허영호씨는 속도도 빨라졌고, 한 걸음 한 걸음에 자신이 넘쳤다.
허영호 대장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고소적응 프로그램에 철저히 맞춰 원정대를 운영했다. 운행을 시작하면 높이 올라가더라도 그 날로 아침에 출발한 캠프로 내려와 쉬는 게 고소적응에 유리하다는 자신의 경험에 준한 운행 스케줄이었다.


BC를 출발하는 시각은 자정과 새벽 1시 사이. 붕괴 위험이 높은 아이스폴 구간을 해 뜨기 전에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C1을 처음 오를 때에는 캠프가 바라보이는 아이스폴 언덕에서 BC로 돌아오고, 두 번째 C1 진입 때에도 C1에서 아침을 먹은 다음 다시 BC로 내려왔다. C2는 세 번째로 C1에 올라가 하룻밤 자고 일어난 다음날 올랐다. 그 날도 C1으로 내려와 자고 이튿날 다시 C2에 올라가 하룻밤 지낸 뒤 다음날 일찍 BC로 내려왔다. 허재석씨가 봤을 때 상업등반대와 비슷한 스케줄이었다.


C2를 세 번째로 오를 때에는 BC 출발 당일 하루 만에 올랐다. 그리곤 이튿날 날씨가 나빠 C2에서 하루 더 지낸 다음 C3에 올라가 점심을 먹은 다음 C2로 내려와 하루 더 자고 이튿날 BC로 내려왔다. 여기까지가 정상공격에 앞선 고소적응 등반의 모든 스케줄이었다. 이후 BC에 비해 고도가 1,200m 낮은 페리체(4,200m)로 내려와 2박3일간 쉬면서 체력을 회복한 다음 하루 만에 BC로 돌아왔다.


정상 등정 시도 때에는 BC에서 C2를 하루에 올랐다. C2에서는 하루만 쉴 계획이었으나 화이트아웃이 심해 이틀간 쉬고 C3로 올랐다. 5월 14일 C3에 올랐을 때 허재석씨는 머리는 아프지 않지만 숨 쉬는 게 불편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산소는 다른 대원들의 경우 C4 이후 사용하기로 돼 있었지만 허재석씨는 C4를 향해 오르다 중간지점부터 사용했다. 무난히 오르던 리듬은 옐로밴드(약 7,700m)를 지나 제네바스퍼(약 7,850m)를 향해 설사면을 트래버스하는 구간에서 고정로프에 매달린 채 숨진 외국 산악인의 시신을 보는 순간 깨졌다. 재석씨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정상 공격은 정상부에 몰아치는 제트기류 때문에 하루 늦어진 16일 오후 8시에 이루어졌다. 초등반대 이후 한동안 C5로 이용하던 ‘발코니’라 불리는 8,400m 고도까지는 빠른 속도로 올랐다. 산소통을 바꿔 끼워야 할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교체 산소통을 짊어진 셰르파가 올라오기를 2시간이나 기다려야 했고, 그 사이 한 팀 한 팀 제천팀을 추월하면서 점점 뒤로 처졌다. 게다가 평소 추위에 약한 허재석씨는 발가락이 시리다 못해 동상 기미가 느껴졌다.

 

 

▲ 한라산 장구목 일원의 설사면에서 트래버스 훈련중인 2007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

 

허영호 대장과 함께 앞서 오르는 외국 산악인들을 추월해 가며 남봉 정상에 올라섰을 때는 거의 좌절할 정도였다. 정상이다 싶어 있는 힘을 다해 오른 곳이 남봉이었고, 그 뒤로 또 다른 산이 하나 더 솟구쳐 있었다. 양쪽으로 표고 2,500m 높이의 벼랑을 이룬 나이프리지로 내려섰다가 눈이 뒤섞인 수직암벽 구간인 힐러리스텝을 올라야 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올라가면 다시는 내려올 수 없을 것처럼 위험하게 느껴졌다.


허재석씨는 지금 스스로 생각해 보면 정말 허겁지겁 올랐다 싶을 만큼 정신없이 힐러리스텝을 올라섰고, 정상이 빤히 보이는 설릉에서도 정상에 올라서기까지 30분 넘게 걸렸다고 한다. 뒤따르던 미국 여성 산악인이 힐러리스텝에서 추락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셰르파의 얘기를 듣고 알았다.


이렇게 C4를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허영호 대장과 정상에 올라섰을 때는 하늘이 너무도 맑았다. 한 5분간 산소마스크를 벗고 허 대장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하늘이 노래졌다. 급히 산소마스크를 쓰고도 30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후 세상을 떠난 모친과 20여 년 전 베이스캠프에서 찍은 사진을 눈 속에 파묻는 감격의 순간을 맛보았지만 하산길은 고통 그 자체였다.


남봉을 내려서면서 산소가 바닥났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다리가 풀렸다. 고정로프에 하강기를 끼우는 대신 안전고리만 끼운 채 미끄럼을 타는 등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가파른 설릉에 앉아 깜빡하는 사이 몇 분이 지났다. 그때마다 허영호 대장은 “그러다 동상 걸린다”며 하산을 재촉했다.


발코니에 놔두었던 산소통을 갈아 끼웠는데도 컨디션이 별로 좋아지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7시간 만에 C4에 도착했을 때에는 먼저 내려온 셰르파들도 초주검 상태였다. 허영호 대장이 일어나서 물 끓이라고 소리쳐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들 역시 거의 탈진 상태였다. 대원들과 함께 얼음을 녹여 물을 끓이고 라면을 끓였는데도 아무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허영호 대장이 닦달하자 우겨넣듯 조금씩 먹고 따뜻한 물을 마신 다음에서야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가볍게 여기기 쉬운 양말과 장갑이 중요한 장비
이상이 ‘생초보’인 허재석씨의 등반과정이다. 이렇게 제천팀의 에베레스트 등반을 성공적으로 이끈 허영호 대장은 에베레스트 등반은 이제 아마추어 등산인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반하던 1987년 겨울에는 모든 일을 대원들이 해결해야 했다. 개미굴처럼 복잡한 아이스폴에서 길도 찾아야 하고, 가파른 로체 서벽을 오를 때 짐도 날라야 했다”며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르다.


이제는 식량과 장비 운반, 텐트 구축, 취사에 이르기까지 셰르파들이 어지간한 것은 다 세팅해 주고 가이드이자 보호자 역할까지 해준다”고 말한다. 허영호 대장은 “그렇지만 결국 등반자 스스로 올라야 하기 때문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추고 자기 확보법, 주마 사용법, 아이젠 보행법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등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체력을 꼽는다. 그리고 현지에서는 서둘지 말고 천천히 고소적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BC까지 캐러밴할 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경험자의 동행은 필수. 날씨가 좋을 때는 누구든 관계없지만 갑작스런 일기 변화에 경험 없는 사람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러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게 허영호 대장의 말이다. 허 대장은 “지난해 봄 정상에서 마지막 캠프로 돌아왔을 때 셰르파들이 모두 드러누워 물을 끓일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다”며 “이럴 때 얼음이나 눈을 녹여 탈수상태에 다다른 대원들에게 따뜻한 물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산에서 식수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극심한 고소증세를 유발해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C4에서 하루 머무는 것은 제살을 깎아먹는 일이라 할 만큼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했으나 요즘 등반 경향으로는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2007년 봄 등정에 성공한 실버원정대 김성봉 대장 역시 마지막 캠프 도착 이튿날 저녁 정상공격에 나섰고, 2010 제천 원정대 역시 제트기류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하루 더 머물렀다. 몇몇 상업등반대의 경우 아예 C4에서 하루 쉬고 정상공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려면 보온력이 좋은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고소내의에서 신축성이 좋은 바지와 티셔츠, 덧바지와 재킷, 그리고 우모복 등 모든 의류와 신발, 고소모자, 장갑 등은 영하 30도에서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
허영호 대장은 “요즘은 장비가 워낙 좋아 검증된 제품이라면 큰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잘 맞는 장비를 선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귀띔해 준다. 특히 동상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 손과 발에 착용하는 장갑과 양말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다. 허 대장은 “제천팀 대원들은 모두 멀쩡했지만 같은 날 같은 루트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다른 두 팀 한국 원정대들 가운데 동상이 심해 귀국 후 손가락을 잘라낸 대원도 있다”고 밝혔다.


허영호 대장은 동상 원인 가운데 마지막 캠프에서 젖은 양말을 신거나 발에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일 경우를 가장 큰 이유로 들면서도 장갑과 양말을 잘못 선택해서 일어나기도 한다고 꼬집는다. 특히 화학섬유 제품은 사용 금물. 화학섬유 제품은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보온은커녕 오히려 차가워진다고 알려준다. 따라서 모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출발하기 앞서 건조가 잘된 장갑과 양말을 갈아 신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재수씨가 리드한 2007년 김해 플라잉점프 원정대는 대원 20명 가운데 서너 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아마추어 수준의 산악인들이었다. 그럼에도 10명이나 등정할 수 있었던 것은 등정일에 날씨가 좋기도 했지만 베이스캠프 진입에 앞서 얄라피크와 같은 곳에서 고소적응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베이스캠프 진입 전 해발 5,000~6,000m 높이에 대한 고소적응은 요즘 들어 ‘필수과정’이다시피 하다.


 

김재수씨는 남동릉이든 북릉~북동릉 루트든 대부분 정상까지 고정로프를 깔아놓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 에베레스트에서는 자신의 컨디션이나 능력을 생각하지 않고 등반을 강행하거나 예상치 못한 악천후로 인해 일어나는 사고도 많지만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특히 로프에 등강기를 제대로 못 거는 등, 자기 확보에 실패해서 일어나는 사고가 많다. 김재수씨는 “등강기 외에 확보줄 카라비너를 꼭 고정로프에 걸도록 하고, 등강기 역시 안전홀에 카라비너를 끼워 등강기가 로프에서 이탈하는 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잘 흘리는 하강기는 예비로 하나 더 가지고 다니는 게 불의의 사고를 막는 방법이라 말한다.


 

모든 사고의 중심에는 조급한 마음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안전지대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며, 한 곳에서 너무 오랫동안 쉬는 것을 자제하고 꾸준히 움직여야 한다. 컨디션이 좋다고 앞사람을 추월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추월한 다음 리듬을 잃으면 호흡이 거칠어져 등반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노멀루트 등반은 수많은 사람이 길게 줄지어 오르기 때문에 한두 명 추월한다고 크게 시간이 단축될 수 없다는 게 경험자들의 말이다.


 

추위에 견디며 굶은 상태로 20시간 이상 걷는 훈련
김재수씨는 “정상에 오를 때에는 하산길에 사용할 체력이 20%는 남아 있어야 한다”며 “올라갈 때 힘을 100% 사용하면 하산길에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리가 풀린 상태에서 바윗길을 내려서다 넘어질 수도 있고, 다리가 꼬이면서 아이젠이 다른 쪽 바지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해마다 몇 건씩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고 원인이다. 따라서 동료나 셰르파 등이 등정길에 “너무 지쳐서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 권하면 스스로 잘 판단해 결정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한다.


 

김재수씨는 등반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모자를 벗지 않고 가능한 한 머리를 감지 않는 등, 보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산소마스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귀띔한다. 세계 최고봉 등정을 위해 산소 장비는 필수. 그런데 산소마스크가 얼굴에 잘 맞지 않거나 혹은 레귤레이터나 레귤레이터와 산소마스크 연결호스가 고장 나 있다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따라서 김재수씨는 “캐러밴에 앞서 산소 장비를 철저히 확인하고, 산소마스크와 레귤레이터처럼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망가지기 쉬운 장비들은 단단한 용기에 담아 운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라이터와 칼과 같이 소홀하기 쉬운 장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 캠프에서 라이터가 없어 버너 불을 켜지 못한다면 물을 끓일 수 없어 결국 등반을 포기해야 하고, 강풍 등에 의해 로프가 뒤엉켰을 때 칼이 없다면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7년 실버원정대를 매니저로 인솔한 바 있는 유학재씨는 출국 전 적절한 체지방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달 안팎 걸리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는데 몸에 체지방이 너무 적으면 지구력이 떨어져 등반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씨는 원정에 앞서 훈련할 때는 체지방이 ‘10’ 가까이 내려가더라도 출국 전에는 ‘30’ 가까이 올라가도록 몸관리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고산등반가들이 동조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한 달리기를 하더라도 심폐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인터벌 훈련이나 언덕 달리기에 주력하고 복근력도 키울 것을 주문한다. 배에 힘이 없으면 제대로 걸을 수 없다는 게 유학재씨의 지론이다. 유학재씨는 마지막 캠프를 출발해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올 때까지 약 20시간 동안 굶으며 걷는 훈련도 서너 번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은 끝까지 굶어보고, 그 다음에는 굶었을 때 조금 먹었는데도 힘이 솟는 간식을 먹어보는 등의 훈련을 통해 등정일에 컨디션이 떨어져 당황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씨는 이와 함께 추위에 견디는 훈련, 아무 음식이나 잘 먹을 수 있도록 식성을 좋게 하는 훈련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학재씨는 “허영호씨가 제천팀에 적용했던 고소적응 스케줄과 마찬가지로 등정에 앞서 고소적응 과정이 끝나면 베이스캠프보다 낮은 곳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유학재씨는 올해의 경우 마지막 로지인 고락셉(5,150m)을 베이스캠프로 이용하는 상업등반대도 있었고, 로부체 아래 평원 지대(약 4,500m)에 거대한 캠프를 설치해 대원들이 컨디션을 조절하게 하는 상업등반대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또한 등반 중 컨디션이 나빠지면 대장이나 다른 대원들에게 감추지 말고 털어놔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학재씨는 “실버팀 원정 당시 대원들이 쉽게 포기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컨디션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날 버티다가 끝내 컨디션을 회복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막판에는 꼭 오르겠다는 의지가 성패 좌우
이렇게 등반법, 고소적응 과정을 비롯한 등반법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꼭 정상까지 오르겠다는 등반자 자신의 의지’라는 게 고산 등반가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고 체력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의지가 꺾이면 절대 오를 수 없는 곳이 세계 최고봉 정상이기 때문이다. 의지에 대한 강조는 14개 8,000m급 고봉 완등자이자 에베레스트 3회 등정자인 엄홍길씨나 박영석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하면 안 돼”
       캐러밴서부터 해발 8,848m 고도에 오르기까지 필요한 장비들

 

인간이 극한의 지대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를 수 있게 만든 것은 미지에 대한 도전정신과 의지이지만, 그 행위를 가능하게 만든 주역은 장비다. 이것은 힐러리와 텐징의 초등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목수에게 손에 익은 망치가 필요하듯이 등반가에게도 딱 들어맞게 준비된 장비와 의류는 등반가의 안전한 등반은 물론 성공적인 원정을 돕는다. 그러나 작은 소품 하나라도 적절치 못하다면 정상 등정을 물거품으로 만들며 심지어는 등반자를 위험에 처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하나씩 품목별로 살펴보고 경험에 따른 조언도 첨언한다.

의류 캐러밴 때는 가볍게, 정상 공격 때는 우주인 같은 모습

캐러밴 복장은 라운드 모자·스포츠형 고글·긴팔 셔츠와 바지·방풍상의·얇은 장갑에 알펜스톡을 짚고 운행한다. 배낭 안에는 보온 덧옷·물통·간식·촬영도구 등을 넣는다. 히말라야에서 트레킹 경험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정상 등정 시 에베레스트의 밤 기온은 영하 28~34도이다. 완벽한 보온을 하고 산소통을 넣은 배낭까지 짊어지면 우주 탐사대원과 흡사해 처음에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복장을 안쪽부터 입는 순으로 살펴보면 내의-고소내의-플리스원단의 스트레치 상하의-얇은 우모상의-두터운 우모복을 입는다. 머리와 얼굴에는 발라클라바-고소모-겉 우모복의 후드가 주 보온을 한다. 고글을 쓰고 헤드랜턴은 고소모 위에 쓴다. 얇은 장갑을 끼고 그 위에 엄지만 별도인 벙어리장갑을 덧낀다. 양말은 통상 감촉이 부드럽고 얇은 것을 신고 위에 두터운 양말을 덧신는다. 삼중화를 신고 아이젠을 동여매고 각종 등반장비가 걸린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카메라는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 보온이 되도록 한다.


▲ 2007년 봄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한국도로공사 원정대 대원들의 장비와 의류 착용 모습이다. 왼쪽의 장애우 산악인 김홍빈은 영국제 신형 마스크를, 오른쪽의 김미곤은 러시아제 구형 마스크를 하고 있다. 김홍빈은 고산 등반을 하다가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잃었으나 2007년 도전하여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고소의 좁은 텐트에서 이 복장을 차근차근 갖추는 데 적어도 한 시간 정도 소요되고, 몇 번의 휴식을 취하며 숨을 헐떡이게 만든다.

산소호흡기를 세팅해 마스크로 산소 유입이 잘 되는지 한 번 더 점검을 하고는 연결호스가 꼬이지 않도록 배낭에 넣는다. 그리고 배낭 안에는 여벌장갑·보온병·스키고글·비상식량 등을 넣는다. 배낭 무게가 부담스러우면 동행하는 셰르파에게 무거운 짐을 맡길 수도 있다. 그러면 필수 의류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정상 등정용 우모복은 원피스 또는 투피스 형태가 있다. 원피스는 화장실 사용에 불편함이 있고 투피스는 아무래도 무게가 더 나간다. 요즈음의 우모복은 품질이 좋아 보온력이 우수하다. 후드가 달린 중간 두께의 우모복은 베이스캠프부터 캠프3까지 운행에 적합하며 우모의 복원력에 따라 필파워 700~1,000까지 다양하다. 자신의 개인장비를 스스로 운반하는 외국대의 경우는 아예 캠프3에서 캠프4로 출발할 때 두꺼운 우모복을 입고 운행하여 배낭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경우도 있다.

하의 방풍의는 베이스캠프에서 캠프2 또는 캠프3까지 운행할 때 입으며 상의는 운행 도중 강풍이 불거나 눈이 오는 경우 배낭에서 꺼내 입는다. 상하 고소내의는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상시적으로 입는데 얇은 것보다는 두께가 있어 공기층이 형성되는 제품이 보온성이 좋다.

아이웨어 스포츠형과 스키용 두 개 준비

스포츠형 고글과 스키 고글 두 개를 준비한다. 스키 고글은 강풍과 보온에 장점이 있는 반면 시야가 좁다는 단점이 있다. 요즈음에는 정상 등정일에도 스포츠형 고글을 많이 쓴다. 캠프4에서 출발할 때 바람이 심하다면 스키 고글을 착용하고 출발한다.

안경을 끼는 사람은 아이웨어 선택에 한두 번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안경을 쓰고 스키고글을 끼거나, 렌즈 부착식 고글은 둘 다 김이 서려 불편하기 짝이 없다. 결국 자신의 시력에 맞는 렌즈가 들어간 맞춤형이 적격인데 일반 안경점에서도 서비스를 하지만 자외선 차단 지수에 문제가 생긴다. 더욱이 차단지수가 낮고 자신의 시력에 적합지 않을 경우 어지럼증이나 두통, 심지어 몸의 균형감각마저 깨질 수 있다.

이러한 등반가들에게 희소식은 ㈜훠리스트가 수입·판매하는 오클리(Oakley) 제품이 고객의 시력에 맞춰주는 맞춤형 서비스 판매를 하고 있다. 주문하고 2~3주 후에 받을 수 있으며 50만~60만 원 가격대 제품군이 있다. 문의 오클리 김기홍 부장 02-2017-0810.

▲ (왼쪽)강풍이나 눈이 내리는 날씨 속에 방풍의를 입고 운행한다. /(오른쪽)영하 30도의 기온에 얼어버린 헤드랜턴과 얼굴. 코끝이 희게 변해 동상기운이 보인다.

 

모자 발라클라바는 플리스, 고소모는 우모 제품

라운드형 모자는 캐러밴뿐만 아니라 캠프2까지 이용도가 높다. 발라클라바(目出帽)는 플리스 원단으로 된 제품이 적당하며 두께는 도톰한 것이 좋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운행 시에 입 아래 천을 턱 밑으로 내려 호흡하기 편하도록 하는데 이럴 때 천이 충분히 늘어나지 않으면 압착이 와 불편하다. 고소모는 플리스 원단보다 우모가 충전재로 들어간 제품이 보온력이 뛰어나다. 비니형 보온모도 하나쯤 준비한다.

장갑 동상 예방 위해 가장 중요

고산등반에서 동상으로 손가락을 잃은 한국 등산가가 많다. 한국의 동계산행에서 동상의 원인은 대부분 낮은 온도가 원인이지만 고산에서의 동상은 저산소로 인해 혈액 내 적혈구 수가 증가되어 발가락, 손가락, 코끝 등 신체 말단에 분포된 모세혈관까지 혈류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상해를 입는다. 특히 손은 운행에 있어 추위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다. 그러므로 장갑은 특히 중요하다. 여러 종류로 충분히 준비한다. 2005년 낭가파르바트(8,125m) 루팔벽 원정 당시 필자와 함께 텐트를 쓴 김미곤의 경우 13켤레의 장갑을 준비하는 모습도 보았다.

베이스캠프에서 캠프3까지 평상시에는 플리스 장갑 또는 방풍이 되는 중간 두께의 오지장갑을 끼고 운행한다. 캠프3에서 캠프4는 두텁고 손목 부분이 긴 오지장갑이나 우모장갑을 낀다. 등정일에는 얇은 플리스 장갑에 두터운 우모장갑을 낀다.

손가락에 시린 느낌이 오면 장갑 속에 있는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동작을 반복해 혈액 순환을 돕고 더욱 심해지면 덧장갑을 벗고 겨드랑이 밑에 넣어 온기를 찾는다. 고소캠프 생활에서 맨손으로 눈에 접촉하는 횟수를 최대한 줄이고 촬영을 할 때도 반드시 얇은 장갑을 끼고 있어야 한다. 저온에서 동상은 누적되며 동상으로 상해를 입으면 치료해 낫기도 어려워 “한 번 동상은 영원한 동상이다”라는 말을 자주하며 전문산악인들은 각별히 조심한다.

신발 기능이 각기 다른 세 부분 합쳐진 삼중화

등반용 삼중화는 기능이 각기 다른 세 부분이 합쳐진 신발이다. 즉 외화, 내화, 그리고 깊은 눈을 걸을 때 눈방지 스패츠가 일체화된 신발이다. 스카르파(Scarpa), 밀레(Millet), 라스포르티바(La Sportiva), 크리스피(Crispi) 등의 브랜드들이 있다. 혁신적인 기술 개발로 보온성·내구성이 좋도록 개발된 최근의 제품들은 좀더 극한의 지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여기에 더하여 저온에서 장갑을 끼고 신고 벗기에 편리하도록 신발끈 잠금·풀림 방식과 방수 지퍼가 추가되었다. 예전에는 발의 땀과 외피화의 내부에 생긴 결로 현상으로 캠프에서 스토브 불에 신발 말리는 모습은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

위의 모든 제품은 유럽에서 생산되어 유럽인의 좁고 긴 족형에 맞는다. 때문에 발이 넓은 한국인의 족형에 딱 맞지 않은 점이 아쉽다. 지퍼 위에 벨크로 테이프로 덮인 제품은 불편하다.

▲ 보온성 내구성이 좋도록 개발된 최근의 삼중화와 스노볼 방지판이 붙은 아이젠.

 

필자는 위의 모든 제품을 20여 년간 직접 신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 스카르파 팬텀 8000 제품을 새로 준비했다. 이 제품은 족형이 넓어 한국형이라 할 수 있고 신고 벗기에도 편하고 경량이다. 또 사용자의 족형에 맞도록 열 성형이 가능한 서모플러스 핏 라이너(THERMO PLUS FIT LINER)는 좀 더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해 주고 약간의 볼륨 확장이 가능하다. 문의 (주)넬슨스포츠 안종릉 차장 031-902-6952.

캐러밴 신발은 발목부분이 긴 중등산화가 효과적이다. 이 신발에 국내 동계산행에 착용하는 워킹용 체인아이젠을 부착하면 캠프2까지 운행도 가능하다.

운행과 캠프지에 필요한 개인장비

배낭은 50~60리터 크기가 적당하며 침낭은 내한 온도가 영하 25~35도까지의 두 개를 준비하는데, 무게에 상관없이 보온이 극대화된 베이스캠프용, 그리고 가벼운 고소캠프용이다. 예전에는 침낭커버를 많이 사용했으나 근래에는 사용하는 등반가가 줄어들었다. 아무리 방수투습원단이라 할지라도 체내에서 배출되는 수분 때문에 안쪽에 싸인 침낭이 눅눅해진다. 캠프의 텐트 안에서 신는 우모제품의 텐트슈즈, 공동장비에 포함된 폼매트리스가 각 캠프에 깔려 있더라도 개인 에어매트리스를 준비해 조금이라도 더 안락함을 추구한다. 초경량 에어매트리스가 시중에 나와 있다.

산소호흡기 세트

산소호흡기 세트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소탱크(봄베), 레귤레이터, 마스크다. 제품의 구성과 사용방법은 상업등반대 현황과 남동릉 등반법 글을 참고한다.
산소통은 셰르파들이 공동으로 수송한다. 베이스캠프에서 개인 레귤레이터와 마스크를 지급받으면 정상 등정을 위해 베이스캠프를 떠나기 전 사용방법을 숙지하고 레귤레이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마스크가 머리에 편하게 잘 맞는지 점검한다. 정상 등정일에 착용하고 운행을 나섰는데 마스크의 밴드가 조여지는 느낌이 오면 추운 밤중 장갑을 끼고 재조정하기란 쉽지 않다.

통신장비

일기예보 데이터 수신을 위한 위성전송 인말세트는 원정대 공동의 장비로 비치되고 현지에서 개인적으로 통신을 원한다면 위성전화기를 구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위성전화 이용료는 분당 1~1.5달러다.

무전기는 반드시 개인마다 하나씩 휴대하는 것이 좋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 건전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충전식을 권한다.

하드웨어 등반장비

고정로프가 완전하게 설치되는 에베레스트 남동릉·북동릉 등반에서 피켈을 사용할 구간은 많지 않다. 외국 등반가들은 대부분의 등반을 알펜스톡 2개를 이용해 운행하는데 한국등반가들도 이러한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정상 등정 시에 한 자루의 피켈을 사용하는데 자신의 키에 따라 피켈 샤프트 길이 65~75㎝ 중에 적절한 길이를 선택한다.

아이젠(크램폰)은 앞쪽 홀더가 철선으로 된 것보다 덮어씌우는 형태가 눈이 묻고 추운 날씨에서 탈부착하기가 편하다. 그리고 아이젠 바닥에 습설이 달라붙어 스노볼이 생기는 현상을 방지하는 고무판(Anti Snow Plate)이 반드시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스노볼은 하산운행에서 미끄러지는 주원인이다.

북동릉에서 거의 착용하지 않는 안전헬멧은 남동릉 캠프2, 캠프3 구간에서는 필수품이다. 이 구간은 자연적인 낙석·낙빙이 아니라 먼저 등반해 올라가는 타 운행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된다.

▲ (왼쪽)1953년 초등정 당시 영국대가 사용한 무거운 산소 호흡기. / (오른쪽)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신형마스크를 소개하는 영국대 대원.

 

안전벨트에는 등강기(어센더)·하강기·잠금 카라비너 2개·데이지체인·아이스스크루 1개·4~5mm 두께의 코드슬링 1m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맨 뒤 두 품목은 구조 활동에 필요하다. 발광다이오드(LED) 헤드랜턴은 100여m 이상 빛을 발산한다. 캐러밴과 베이스캠프에서 사용할 소형과 기능이 좋은 등반용으로 2개를 준비한다.

기록 및 촬영장비

고소의 저온·충격·먼지로 노트북컴퓨터는 고장 날 우려가 많다. 특히 영하의 기온인 텐트 가방 안에 보관했다가 햇빛이 들기 전인 아침에 전원을 켜면 고장의 원인이 된다. 이럴 때는 가스스토브의 약한 불로 본체에 열기를 쐰 후 사용한다. 위성전송장비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

작품 사진을 원하지 않는다면 소형 경량의 디지털 카메라가 좋다. 대개 디지털 카메라에 동영상 촬영기능이 있어, 별도의 캠코더는 사용빈도가 적다. 굳이 한 모델을 추천한다면 현재 필자가 쓰는 파나소닉 루믹스 시리즈가 내한성도 높고 촬영이 쉬운 반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기타 개인 소품

높은 고도의 빛은 강하다. 캐러밴과 등반 시에 피부 보호를 위해 자외선 차단제는 운행 출발 전, 그리고 세 시간 단위로 바르는데 얼굴의 돌출부위인 콧등을 가장 신경 쓰자. 차단 지수가 높은 제품을 선택하고 향이 없는 것이 좋다. 화장품 냄새는 고소증세를 유발할 수도 있다. 입술 보호 립스틱은 2개 정도 준비한다.

가벼운 다용도 칼은 운행 시에 반드시 휴대한다. 아이젠 등 하드웨어 장비의 수선이나 로프의 절단 등에,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태에 큰 도움을 주는 필수품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고산등반에서는 영양부족으로 손톱이 부러지고 꺾이는 예가 많은데 칼이 없다면 하루 종일 장갑 내피에 걸리적거려 운행을 짜증스럽게 만든다.

캠프지 간의 운행, 특히 정상 등정일에는 보온병이 필수인데 0.7~1리터들이의 경량으로 두꺼운 장갑을 끼고도 개폐조작이 용이해야 한다. 많은 수분섭취를 해야 하는 캠프지에서 코펠 내에 있는 밥공기로 차를 마시면 양이 적고 쏟을 경우가 많은데, 보온이 되는 개인 머그컵이 좋다. 캐러밴 때 비와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가리개로, 눈이 내리는 베이스캠프에서 짧은 이동에 우산은 편리를 제공해 준다.

개인 물품 포장용으로 많이 쓰이는 카고백은 150리터 이상 큰 사이즈가 짐을 싸기에 편하다. 베이스캠프까지 로컬포터들이 8일 정도 지고 가는 도중 우천이나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개인 매트리스를 바닥과 옆으로 두르고 의류는 방수포에 싸고 충격에 약한 전자제품 등은 하드케이스에 담아 포장한다. 매일 짐을 풀고 싸는 번거로움을 생각해 번호로 된 잠금장치를 지퍼에 채운다.

위에 언급되지 않은 물품은 중요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약간의 어드바이스가 필요한 장비와 의류를 주로 설명했다. 국내 훈련산행을 하면서 기능과 사용의 편의성, 무게를 다시 한 번 고려해 보고 출국 전 짐을 포장할 때는 작성된 품목리스트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빠뜨리지 않도록 한다.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이었다”
       한국 최고령 여성 등정자 송귀화씨
       본격 산행 10년 만에 대망의 세계 최고봉 등정 이뤄
 

 

내가 이미 마흔이 넘은 1990년에 산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직장 산악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산행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였다. 양주군(현 양주시) 보건공무원으로 10년 넘게 지내다 보니 무엇보다 변화 없는 직장생활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때문에 뭔가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기에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활력소가 돼줄 수 있는 등산이란 스포츠가 마음에 확 와닿았다.


당시 의정부에 위치한 대한산악연맹 경기 북부지부에서도 활동을 하면서 내 몸에 변화가 생겼다. 혈압이 낮아 오후면 비실비실 대던 내가 산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 덕분에 활기 찬 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이 좋아지면서 의욕적인 사람으로 변해 갔다.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셈이었다.


1991년 첫 해외 산인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4,101m)를 오르면서 높이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환경을 보며 높은 산을 오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1995년 공무원들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백두산을 시작으로 1996년 러시아 엘부르즈(5,641m)에 가게 되었다.


▲ 세계 최고봉 정상에 오른 송귀화씨. 송씨의 등정은 오랜 고산등반 경험과 꾸준한 체력 단련의 결과였다.

 

속보 산행으로 체력 다진 뒤 대륙 최고봉 여럿 등정
날씨가 좋지 않아 고소적응하는 파스투초프록(4,650m)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끝났지만 엘부르즈를 오르는 사이 하얀 산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많은 사실도 깨달았다. 이런 높은 산에 가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엘부르즈 등반은 고산을 등반하는 데 꼭 필요한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해준 등반이었다.


10명의 대원 중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서도 잘 오르시는 분이 있었다. 이 분께 비결을 물으니 산에 한 번 따라 오라 하시기에 귀국 즉시 연락해 도봉산 산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일요일이면 친구들과 도봉산을 오르는 팀이었다. 그분들은 얼마나 빨리들 오르는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도봉산 팀과 산행하는 게 한동안 힘들었지만 몇 번 따라 다니다 보니 적응되었다. 그렇게 1년을 다니고 1997년, 그 전해에 동행했던 10명 중 4명이 다시 엘부르즈에 가게 됐다. 거기서 몸이 훨씬 좋아진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고생은 했지만 다시 한 번 하얀 산의 매력에 빠지게 된 등반이었다.


1차 정상공격 때 4명 중 1명이 못 가겠다고 하자 가이드가 “전원 같이 내려가자”고 하는데 우리 팀 대장은 “가이드는 포기한 대원과 함께 하산하고 우리끼리 가자”고 한다. 하지만 정상을 향해 밀어붙이는데 안개가 점점 짙어져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자 하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방향을 잘못 잡아 다른 능선으로 내려오다가 잠시 안개가 걷히는 틈에 확인된 푸리웃산장으로 가기 위해 계곡을 가로지르느라 크레바스에 빠지며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는데 다른 두 사람은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루 쉬고 다시 올라가는 날도 강풍이 몰아쳐 얼굴에 동상이 걸리기도 했지만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


엘부르즈에 이어 킬리만자로(5,895m), 몽블랑(4,807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200m) 트레킹, 일본 북알프스 종주 산행을 즐기던 중인 2000년, 엘부르즈에서 두 번이나 함께 고생한 사람들이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에 같이 가자는 제의를 해왔다.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매킨리를 등반하려면 한 달 가까이 잡아야 하는데 휴가를 낸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1978년 공무원 임용 이후 20년 넘게 다닌 직장에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다행히 등반 기간 내내 날씨가 좋아 별 어려움 없이 매킨리 정상에 오른 나는 하산길에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꿈을 세우게 되었다.


그 해 겨울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6,959m)를 등정할 때 인연 맺은 서울시청산악회와 함께 산행을 하면서 체력과 지구력이 더욱 좋아진 것 같았다. 이들과 함께 백두대간과 9정맥 종주 산행을 하면서도 선두자리를 놓지 않았다. 7대륙 최고봉이란 목표를 이루려면 체력과 지구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싶었고, 대간과 정맥 종주를 통해 그 바탕을 다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콩카구아에서 인연맺은 박영석 대장의 원정대에 참가해 로체(8,516m)를 등반할 기회도 생겼다. “전 대원이 포터 겸 셰르파”라는 박 대장의 말 그대로 로체 원정대는 대원이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 팀이었다. 여러 대륙 최고봉을 올랐지만 8,000m급 고봉 등반 경험이 없던 나는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올라보자는 생각으로 참가를 결정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등반에서는 베이스캠프(5,400m)를 출발해 제1캠프(6,000m)에도 못 오르고 도중에 짐을 데포시켜 놓고 내려와야 했다. 천천히 걷다 보니 셰르파보다 속도가 빠른 대원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두 번째 등반에서 제1캠프에 올라섰으나 후배 대원들이 어렵게 올려놓은 식량을 축낸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등반에 욕심을 부릴 수 없었다.

▲ 정상 공격을 앞두고 김주진 대원과 함께 초모랑마를 배경삼아 기념촬영을 했다.

 

스쿠냥(6,250m·중국), 캉텐그리(7,010m·키르기스스탄), 휘트니(4,418m·미국 본토 최고봉) 등을 등반하면서 에베레스트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엿보았다. 캉텐그리는 함께 등반한 한국 대원들이 내 걸음 속도가 너무 늦어 함께 등정길에 나서면 자신들까지도 실패할 수 있다고 부담스러워하는 바람에 마지막 캠프까지 오른 뒤 포기해야 했다.


2006년 12월 오은선 대장이 이끄는 아마다블람 여성 원정대에도 참가했다. 고소적응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등반은 마지막 캠프를 출발해 정상 설사면까지 다가섰으나 앞서 오른 셰르파들이 고정로프를 깔지 못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제2캠프에서 펼쳐진 히말라야 풍광은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게 그려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산소를 더 사용하면 힘은 덜 들겠지만…
에베레스트 등반의 기회는 2007년 봄 찾아왔다. 백전노장 김재수 대장이 이끄는 플라잉점프 원정대였다. 루트는 티베트 쪽 북릉~북동릉 노멀루트. 대원이 20명이나 되는 대규모 원정대라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일단 부딪쳐 보기로 하고 참가를 결정했다.


네팔 랑탕히말에 있는 얄라피크(5,730m)를 오르며 고소적응을 하고 티베트 쪽 베이스캠프(5,150m)를 향해 지프로 이동하면서 못 올라가더라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대원 중에는 나처럼 상업등반으로 참가한 외부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그중에는 기타를 치며 산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어 고소적응을 하다가 쉬는 날에는 노래를 부르면서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캠프를 하나하나 올리며 순탄하게 고소적응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산소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한 사람당 3통씩 준비했는데 나이 많은 사람은 산소가 더 필요하니 3,000달러씩 더 내라는 것이다. 세 사람은 돈을 더 내고 산소를 더 쓰겠다고 했으나 나는 기본만 쓰겠다고 했다. 산소를 더 사용하면 힘은 덜 들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20명을 2개조로 나누는 조편성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다들 1조로 가려고 하여 외부대원 중 나만 2조로 남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비우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하고 열심히 고소적응에 힘쓰며 좋은 날씨를 기다리던 중 날씨가 좋아진다는 일기예보에 1조가 먼저 올라갔다.


그런데 이튿날 ABC(5,800m)에서 쉬고 있을 때 김재수 대장이 나와 대원 2명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셰르파 1명과 제1캠프(7,000m·노스콜)에 올라갔는데 대원 1명이 계속 토해서 다음날 내려가기로 하고 2명만 제2캠프(7,600m)에 올라섰다. 제2캠프에 도착해 산소마스크를 입에 물자 마치 평지에 있는 것처럼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러나 1조가 식량을 다 먹고 올라가는 바람에 식량이 부족한 게 큰 문제였다. 알파미 1봉을 끓여 둘이 나눠 먹고 아침에 일어나니 먹을 게 거의 없었다.


5월 16일, 과자 몇 조각을 먹고 제3캠프(8,300m)로 오르는데 1조가 내려오고 있었다. 10명 중 6명이 등정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제3캠프에 올라 텐트에 들어가 눕자 서서 자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바닥이 기울었다. 이곳 역시 먹을 것은 없었다. 셰르파가 한아름 퍼온 눈을 버너 불에 녹여 수통 2병에 채워 넣고 나니 대원들이 들어왔다. 다른 캠프에서 쉬다 온 것 같았다.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다른 텐트에서 산행 준비를 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도 커피 한 잔 끓여 마시고 파워젤을 한 개씩 먹고 준비를 끝내니 옆 텐트의 일본 팀이 출발한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일본 팀 뒤를 따라가는데 속도가 너무 느려 우리 대원들이 앞서 나갔다. 나도 따라 앞서가다 보니 어둠 속에 먼저 가는 게 부담이 되어 다시 일본팀 뒤로 갔다. 무엇보다 그 팀은 셰르파도 많아 뒤에 가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세컨드 스텝에서는 사다리를 오르자마자 오른쪽으로 로프가 깔려 있어 내려올 때는 위험하겠구나 싶었다. 날씨가 좋아 별 어려움 없이 오전 10시쯤 정상에 도착하자 오색 룽다가 바닥에 깔려 있다. 세계 최고봉 등정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지만 서서 움직이면 미끄러질 위험이 있겠다 싶어 설사면에 살며시 주저앉았다.


설산의 환상적인 풍광에 감탄하며 7,000m까지 하산
밑을 내려다보니 파노라마가 멋있게 펼쳐져 있다. 이런 풍광을 보려고 산을 오르는 게 아닌가 싶어졌고, 너무 좋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려다보며 그동안 내 삶을 되돌아보니 내가 지금까지 산을 모르고 살았다면 경제적으로 더 안정되었겠지만 그렇다면 섬이나 여행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올라갈 때는 정신을 집중하느라 느끼지 못했지만 내려서며 바라보이는 히말라야 고봉의 풍광은 정말 환상적이다.


제3캠프에 도착하니 지치기 시작한다. 어제 이후 먹고 마신 게 과자 조금과 커피 1잔, 파워젤 1개, 물 1통밖에 없으니…. 힘을 내서 제2캠프로 내려가니 제2조가 올라와 있다. 좁은 캠프에 여러 명이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저기에 끼어 있었다면 어쨌을까 싶어졌다. 물을 조금 보충하고 해가 지기 전에 제1캠프까지 내려서기 위해 마지막 힘을 냈다.


제1캠프에 도착하니 대원이 있다. 먹을 것을 부탁하니 알파미를 끓여 준다. 한 그릇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하지만 다음날 일어나니 먹을 것이 없다고 그냥 내려가라 한다. 그렇지만 제1캠프에서 ABC까지는 금방 갈 수 있으니 문제없다.


ABC에 도착하니 모두 축하해 준다. 그런데 셰르파들은 나보다 우리와 함께 올랐던 셰르파에게 더 축하한다. 나이도 많고 너무 힘들어해 과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던 셰르파였다. 그 셰르파는 에베레스트 ‘등반ʼ은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등정했던 것이다.


다음날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같이 올라갔던 대원이 고소증세가 심해 헬기에 태워 카트만두로 후송했고, 도착 즉시 응급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위궤양과 같은 위병변으로 인해 위벽에 구멍이 난다는 위천공이었다. 2조 대원 중 2명이 정상에 올라 우리의 대장정은 20명 중 10명 등정이라는기록을 세우며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