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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 야영산행ㅣ장비선택] 몸집을 가볍게 해서 산릉을 훨훨 날아보자

김영인 2013. 4. 2. 11:45


옷가지, 잠자리, 먹거리 줄인 만큼 산행 즐거움 더해져

산행할 때 중량이 적이라는 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지침대로 짐을 최소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겨울 야영산행 때는 추위를 고려해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가져가고 싶은 게 일반적인 심리이고, 그렇게 맘껏 짐을 챙기다 보면 예상보다 짐이 많아지고 무거워져 계획한 스케줄에 맞춰 산행하기가 쉽지 않다. 짐이 무거울수록 걸음은 그만큼 더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밤의 풍족한 캠핑생활은 한낮의 고행 초래

최근 취재산행에서 커다란 텐트에서 난로까지 피우는 ‘호화 야영 생활’을 누릴 기회가 생겼다. 동행한 산악인들의 80리터 배낭에는 침낭과 우모복과 같은 개인장비에 8인용 인디언 텐트, 조립식 난로, 코펠, 휘발유버너 등 취사야영 장비 외에 찌개거리에 떡볶이 재료까지 넉넉히 담겨 있었다. 한겨울에 따뜻한 난롯가에서 고기를 굽고 찌개도 끓여 반주와 함께 저녁밥을 든든히 먹고, 이튿날에도 새로 지은 밥에 남은 찌개로 배를 불렸다. 텐트 밖에서는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는 데도 풍족한 캠핑 생활은 여유롭고 낭만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야영 전후는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크고 무거운 야영 장비와 먹을거리에 1인당 2리터들이 식수 한 통 이상의 무게가 더해졌고, 그에 따라 배낭 무게는 혼자 짊어지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다. 결국 5.5kg 무게의 조립식 난로를 책임진 사람은 첫날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말을 잃을 정도로 힘들어했고, 둘쨋날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바윗길을 오르고 좁은 바위틈을 빠져나가거나 턱을 뛰어내리려니 애를 먹고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더욱이 조립식 난로를 대신 짊어진 일행 중 한 사람은 깊은 눈을 헤치며 4시간쯤 걸어가자 무릎 통증으로 인해 끝내 완주하지 못한 채 도중에 하산해야 했다.

장비의 경량화는 가벼워진 만큼 몸을 가볍게 해줌으로써 그만큼 자유롭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걷는 거리도 늘릴 수 있고, 상체를 맘껏 움직일 수 있기에 조망의 즐거움도 더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경량 야영산행을 위해선 잠자리부터 먹을거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줄이고 또 줄여야 한다. 심지어 배낭도 가벼운 제품을 사용하고, 옷도 무게를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최근 캠핑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초경량 장비를 사용한다면 무게와 부피를 줄일 수 있으나 제품 가격이 만만찮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배낭은 내구성을 생각하면 두껍고 단단한 원단의 제품이 좋겠지만 그만큼 무겁다. 가벼운 소재에 단순한 디자인의 배낭이 비교적 무게가 가볍다. 꼭 필요한 장비만 챙긴다면 단순 도보산행일 경우 2박3일 산행도 용량이 50리터 이하인 배낭으로 가능하다.

또한 커다란 배낭은 운행 속도를 당연히 떨어뜨린다. 무게로 인한 부담도 있지만 숲길이나 바윗길 같은 구간에서 걸리적거리면서 신경 쓰이게 할 뿐만 아니라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하거나 심지어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배낭은 폭이 너무 넓거나 높은 제품은 피하고 소위 어택형이라 부르는 심플한 형태의 배낭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쓸 데 없는 옷을 많이 가지고 산행할 적이 많다. 속옷은 따뜻하되 땀을 빨리 배출하는 기능성 제품을 택하고 그 위에 신축성 좋은 집티 정도 입는다. 시종일관 깊은 눈을 헤쳐야 할 경우 신축성과 보온성 좋은 바지에 덧바지를 받쳐 입는 것으로 의류 선택을 끝내기도 한다. 우모복과 얇은 우모복인 패딩, 방수방풍 재킷이 있다면 이 중 하나 혹은 두 가지로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게 좋다. 우모복은 땀에 젖을 경우 잘 마르지 않는다.  따라서 방수방풍용 재킷은 운행 중에, 우모복은 휴식이나 캠핑생활할 때 입도록 한다.

부피가 많이 나가는 우모복 대신 패딩과 재킷을 휴대할 수도 있으나 날씨가 추울 때는 아무래도 우모복의 효율이 높다. 특히 취침 시에는 안락함을 더해 준다. 해빙기를 맞으면서 기온이 급속도로 올라가더라도 산중의 한밤 기온은 한겨울과 엇비슷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비에 젖지 않게만 대비할 수 있다면 의류는 입은 옷 그 자체로 해결하도록 한다. 갈아입을 생각에 여벌옷을 넣다 보면 짐은 그만큼 늘어난다. 땀에 흠뻑 젖었더라도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 취사하는 사이 대개 옷은 마르기 마련이다. 물론 여벌 양말 한 켤레 정도는 쾌적한 잠자리를 위해 챙기는 게 바람직하다.




우모복 활용으로 침낭 무게 줄이자

야영산행을 계획했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장비는 침낭, 텐트, 코펠, 버너 같은 무겁고 부피가 큰 취사야영장비다. 침낭은 동계용의 경우 일반적으로 1,300g 안팎 무게의 제품을 사용한다.

우모복을 잘 활용하면 우모침낭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매트리스 위에 침낭을 편 다음 우모복을 입고 들어가면 조금 답답한 감은 있지만 상체 보온에 큰 도움을 준다. 여기에 내용물을 모두 빼낸 빈 배낭을 허벅지 아래 깔아 준다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모복과 배낭을 잘 활용하면 800~1,000g 무게의 춘추용 침낭으로도 한겨울 밤을 지낼 수 있다.

야영장비 중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게 텐트일 것이다. 텐트는 천과 폴의 소재에 따라 무게 차이가 크게 난다. 대개 1인당 1kg 정도 무게가 늘어난다. 따라서 2~3인용은 2~3kg, 4~5인용 텐트의 경우 대개 5kg 안팎 무게가 나간다.

텐트는 인원수에 비해 한 명 정도 더 여유 있는 제품이 사용할 때에 쾌적하다. 그러나 경량화를 위해서는 공간이 넉넉한 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 오히려 짐 공간도 없을 정도로 좁은 제품이 무게나 부피 면에서 유리하다. 겨울에는 텐트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너무 좁지 않은 텐트가 필요하지만 날이 따뜻해지면 텐트 밖에서 지내다가 잠잘 때에만 텐트 안에 들어가면 된다. 이 경우 텐트 밖에 내놓은 짐을 비나 눈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덮을 수 있는 천이나 비닐을 준비하도록 한다.

짐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야영방법은 단연 비박이 최고다. 비박이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텐트 없이 산에서 밤을 지내는 것을 일컫지만 요즘은 비박전문산악회와 마니아층이 형성될 정도로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비박 산행객이 많아지자 국립공원에서는 비박 산행을 금지할 정도다.

비박 역시 준비를 철저히 해야 기대했던 호젓한 밤을 누릴 수 있다. 대개 침낭과 침낭 커버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만 눈이나 비에 대비해 ‘플라이’라고도 부르는 타프(tarp)를 설치하기도 한다. 타프는 오토캠핑용의 경우 무겁고 부피가 크지만 알파인용은 4인용이 800g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가볍고 작아 휴대하기에도 좋다. 경우에 따라 텐트 본체만 치고 그 위에 타프를 설치함으로써 좀더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다.

비박용 타프는 혼자일 때에는 당연히 1인용을 이용해야 하지만 두 명 이상 인원이 늘어날 때는 인원수보다 조금 넓은 타프 한 장을 이용하는 게 보온효과가 높다. 타프를 텐트 형태로 치거나 바위에 걸쳐 설치해 어느 정도 밀폐시키면 보온력을 높일 수 있다.

판초 한 장과 등산용 폴 한 자루로 해결할 수도 있다. 머리 부분에 폴을 끼우고 세운 다음 네 귀퉁이를 줄로 묶어 당겨놓는다면 그 아래서 두 명은 충분히 지낼 수 있다. 물론 비가 퍼붓거나 바람이 몰아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익스트림한 상황을 감수하는 초경량 비박 산행을 계획할 때에는 담뱃갑 크기만 한 은박 블랑킷을 이용하도록 한다. 보온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비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긴급상황 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단지 소재가 얇고 약해 날카로운 데에 닿으면 쉽게 찢어지는 게 단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뒤집어쓰는 용도 외에는 달리 사용하기가 어렵다.

마음먹기에 따라 가장 줄이기 쉬운 것은 식량이다. 야영산행객 대부분은 저녁은 당연히 밥을 먹어야 하고, 아침 또한 적어도 라면 정도는 끓여 먹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술과 안주가 더해지면 무게는 허리가 휘청할 정도로 늘어난다. 오순도순 술 한 잔 나누는 것도 좋지만 반면에 맑은 정신과 눈으로 밤하늘의 별과 바람과 벌레 울음소리를 즐긴다면 더욱 즐겁지 않을까. 굳이 술 한 잔의 낭만이 필요하다면 육포나 치즈처럼 가볍고 부피가 덜 나가며 열량 높은 안주를 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식량은 가급적 식수를 덜 사용하는 먹거리를 택하도록 한다. 점심은 가벼운 빵이나 비스킷, 초콜릿 같은 간식으로 해결하고, 저녁은 포만감을 주되 식수를 덜 필요로 하는 식품을 선택하도록 한다. 라면 같은 인스턴트 면 종류는 가볍지만 반면 적잖은 식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무거운 먹을거리일 수밖에 없다.

저녁은 햇반에 마른반찬으로 해결하고 아침 한 끼 정도는 빵과 수프나 차 한 잔으로 끝낸다면 식량의 무게를 많이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취사 시간이 짧아진 만큼 운행 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즉석식품 중 기호에 맞는 식품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집에서 물을 붓고 끓이기만 할 정도로 재료를 다듬어 가면 포장지 등의 무게를 줄일 수 있을뿐더러 재료가 남아 버리는 낭비도 줄일 수 있다.

초경량 캠핑장비로  2인 기준 2kg 이상 줄일 수 있어

초경량 야영산행을 위해 모든 장비를 가벼운 제품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제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결국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초경량 캠핑용품 생산업체인 제로그램(Zero Gram) 안진섭 매니저는 “2인용 장비의 경우 티타늄 소재의 식기를 선택하고, 같은 무게일지라도 내한온도 스펙이 높은 침낭에 경량 텐트나 타프를 사용한다면 2kg 이상 무게를 줄일 수 있다”며 “2kg이 2리터 들이 생수 한 통과 맞먹는 무게라고 생각하면 결코 적잖은 무게다”라고 말했다. 안 매니저는 “그러나 경량화를 위해 가장 앞서 해야 할 일은 불필요한 장비나 의류를 챙기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야영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샘이 가까이 있으면서 굴처럼 비바람을 피할 곳이 최상의 장소일 것이다. 물론 바람 한 점 없을 만큼 날씨가 좋을 경우 드러누울 터만 있다면 비박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겨울은 물론 이른 봄까지는 상황이 다르다. 해빙기에도 느닷없이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바람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한낮에는 바람이 계곡 쪽에서 산릉을 향해 불어대지만 한밤중에는 반대 방향으로 분다는 사실도 야영지를 선택할 때에는 잊지 말아야 한다. 능선 상은 바람을 피하기 어렵다. 때문에 등날을 벗어난 사면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우거진 숲속에 너른 터도 좋은 비박지로 꼽을 수 있다. 바람 반대 방향의 바위 기슭도 좋은 비박지로 꼽을 만하다.

해빙기에는 눈이 녹아 흘러내릴 만한 곳은 피하도록 한다. 바위 기슭 같은 곳도 물이 흘러내릴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위쪽이 바위지대를 이루고 있다면 피하도록 한다. 특히 해빙기에는 한낮의 따스한 햇살에 바위에 얹혀 있던 눈덩이가 쏟아져 내리거나 겨우내 땅과 얼어붙어 있던 바윗덩이가 굴러 떨어질 위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