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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올해 20년차의 개원의사이다. 처음 개원 당시 180cm의 신장에 75kg으로 비교적 적당한 체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개원 10년차를 넘어서면서부터 어느 순간 체중이 무려 88kg으로 늘어나 있었고, 검진상 지방간에, 중성지방 230mg%, 체지방률 32%, 허리둘레는 96cm를 넘어서는 소위 둥글둥글한 ‘배둘레햄’ 비만체형의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하루 종일 진료실에 갇혀서 앉은 자세로 환자들과 상담하고, 저녁에는 모임에 나가 잦은 외식을 하다 보니 거의 운동부족과 과잉 음식섭취 등 반복적인 일상의 결과로 소위 전형적인 ‘대사증후군 체형’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의사회 내의 선배 권유로 서울시 의사산악회에 입문해, 10여 년 산악회 훈련팀과 함께 정기적인 국내산행과 때로 해외산행 등을 경험하면서 등산에 대한 다양한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한편으로는 부족한 운동량을 채워주는 빼놓을 수 없는 취미생활 중의 하나가 됐다. 등산준비를 위한 꾸준한 운동과 함께 체중 77kg, 체지방률 22%, 중성지방 78mg%, 허리둘레 86cm의 원래 체형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서두에 필자의 사례를 들었으나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즉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 속에 수면부족, 운동부족과 과잉 칼로리 섭취로 말미암아 복부비만과 함께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등 건강을 위협하는 다양한 생활습관병이 발생한다. 그 각각의 상태가 당장 약물치료를 할 기준치 이상의 수치는 아니지만, 어느 한 가지 질병으로 오기보다는 모두 동시다발적으로 정상을 벗어난 상태를 보인다. 이를 소위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 이라 한다.
예를 들면, 당뇨병 환자의 반수가량에서 각각 고혈압과 복부비만을 가지고 있고, 3분의 1 정도에서는 혈액 중에 중성지방이 높다는 통계가 있다. 다시 말해서 질병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개념을 말한다. 과거에는 그 원인을 정확히 몰라서 ‘X 징후군’ 혹은 인슐린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생긴다 하여 ‘인슐린 저항 징후군’이라고 불렀다.
대개 다음조건의 5가지 중에서 3가지 이상이면 대사징후군으로 진단한다.
1. 허리둘레 남자 90㎝(36인치), 여자 80㎝(32인치) 이상
2. 공복혈당 100㎎/dl 이상
3. 수축기 혈압 130㎜Hg, 이완기혈압 85㎜Hg 이상의 고혈압
4. 고(高)중성지방상태 150㎎/dl 이상
5. 고밀도(HDL) 콜레스테롤이 남자 40㎎/dl 미만, 여자 50㎎/dl 미만
발생빈도를 보면 국내에선 30대의 15?%, 40세 이상의 30?% 정도로, 즉 30세 이상에서 3명당 1명꼴의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고지방식 위주의 서구식 식습관에 익숙하며 폭탄주 등 회식문화 스트레스 등의 환경을 겪고 있는 지금의 젊은층들에서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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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량 섭취 줄었으나 활동 감소로 비만 늘어
통계를 참조하면 2008년도 한 해 동안 대사증후군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이 약 400만 명이고, 진료비 추계도 6,0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작년 우리나라 통계자료를 보면, 대사증후군과 관련된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 수가 사망원인 1위인 암에 의한 사망자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당뇨병의 경우는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는 35.3명으로 OECD 국가 평균 13.7명보다 두 배가 넘었다.
중요한 점은 일단 대사증후군으로 진단되면 일반인보다 심혈관질환 및 뇌졸중 발병위험이 2배 이상, 당뇨병 발병위험이 4~6배 이상 높고, 유방암, 대장암 등 각종 암이 발병할 위험도 증가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대사증후군을 소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오중주’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대사증후군은 어느 사이에 국민 대다수의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나라는 2년마다 공단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 검사 종목상에 이미 대사증후군 진단검사가 포함되어 있고, 보건소 및 일부 사회단체에서는 소위 ‘국민 뱃살 줄이기 운동’을 시작하는 등 대사증후군 예방과 관리에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은 이미 진행된 뒤에는 개인적으로나 아니면 국가적 차원의 의료비 지출 측면 등에서도 손실이 커서, 가능하면 발병 전이나 발병 초기의 사람들을 가려내 예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이같은 깨달음에 따라 국가가 만성질환에 대해 앞서서 예방차원의 공격을 의미하는 국민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벌써 2008년 4월부터 40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정부 차원의 대사증후군 관리에 들어갔다. 2008년과 비교해, 2015년까지 대사증후군 환자를 25% 감소시키는 목표를 세워, 이미 2009년 한 해에 1,000억 엔의 의료비 절감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적어도 한두 달에 1번 이상 산을 오르는 우리나라 등산인구도 약 1,500만 명을 넘어서서 전 국민 등산인 시대에 돌입한 듯한 기세다. 영국등산협회는 산을 오르는 타입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했다. 야유회 성격의 램블링(rambling 산책), 여유롭게 즐기며 산행하는 스크램블링(scrambling 산행), 정상을 목표로 산행하는 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 등산), 그리고 전문적인 등반형태의 클라이밍(climbling 등반)으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스크램블링 이상의 산행은 충분히 유산소 운동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꾸준히 즐기다 보면 유산소 운동은 우리 인체 내의 에너지 소비량을 증가시키고, 스트레스도 해소시켜 주며, 혈당, 혈압, 혈중 중성지방 및 저밀도(LDL)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고밀도(HDL)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주는 효과로 대사증후군, 즉 비만환자에게 흔히 동반되는 고지혈증,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등도 동시에 치료해 주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장수인들의 신체조건, 등산 즐기는 사람과 비슷
보고에 의하면 현대인들의 체중 증가는 섭취하는 식사량도 문제이나, 특히 신체활동의 감소가 더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의 증거자료로 미국의 경우 1900년에 비해 1990년대의 열량 섭취는 10% 줄었는데도 비만 인구는 두 배 증가했다고 한다. 비만한 고교생의 열량 섭취가 비만하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서 낮았다는 연구도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 최고의 의료시설 및 기술을 갖추고 있으나, 심혈관 질환 등 생활습관병 환자의 발생 예방과 사망률을 낮추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하버드 의대의 A.리프 교수는 전 세계의 장수마을을 방문하면서, 그 사람들이 오래 사는 이유를 조사했다.
요약하면 히말라야·안데스 등 고도가 비교적 높은 지역(해발 800~2,000m)에 거주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움직이며, 신체적인 노동을 하고 있었고, 또한 소식(小食)을 하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조건들은 등산을 자주하는 사람들의 조건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마모토 마사요시, <똑똑한 등산이> 중에서)
우리는 깊은 산에서 무예나 도를 터득하는 도인을 선인(仙人)이라고 한다. 여기서 한자 仙(선)자는 人(인)과 山(산)이 합쳐진 것으로, 의미상으로도 산과 사람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쉽게도 우리가 매일 등산할 수는 없지만 주중이나 주말에, 시간이 날 때가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꾸준한 운동과 함께 좋은 동료들과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이 또한 평생의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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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우
(전) 강남구의사회 회장
(현) 서울시의사산악회 자문위원
이관우내과의원 원장